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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Aug 20. 2019

사주와 궁합을 맹신하진 않지만

"사주와 궁합을 맹신하진 않지만" 사주 궁합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다. 맹신까진 아니지만 살면서 사주를 열 번도 넘게 봤다. 연애가 잘 안 풀릴 때, 회사 때려치우고 싶을 때, 심리 상담받는 기분으로 5만 원을 쾌히 투자했다. 길 가다 만난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긴데도 "35살 이후에 잘 풀린다", "결혼은 늦게 할수록 좋다" 같은 말에 잔잔한 위로를 받았다.


 

우리 엄마도 종종 사주를 보신다. 당신 인생은 별 궁금한 게 없는데 자식 앞날이 어찌 풀릴지 궁금해서다. 특히 하나뿐인 딸의 배우자 집중 탐색 기간에 엄마의 사주 의존도가 높았다. 31살이 되던 해, 엄마는 용하다는 선생님을 찾아가 내 사주를 보셨다. 그분이 강조한 사주풀이는 세 가지였다.


1) 34살에 결혼하면 좋다

2) 분당 판교 쪽으로 가면 커리어가 잘 풀린다

3) 분당 판교 남자를 만나면 좋다


엄마는 34살에 결혼하는 건 너무 늦다며 강한 불만을 표하셨다(...결국 34살에 갔다). 영화와 출판계에만 있었던 내가 분당 판교에 가서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분당 판교 남자는 어디 가서 만나나. 당시엔 "동쪽으로 가면 기인을 만난다"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사주와 궁합을 맹신하진 않지만” 그다음 해 판교에 있는 게임 회사로 이직을 했다. 도스 시절 이후 게임이라곤 해본 적 없는 내가 게임 회사에 들어가다니. 하는 일은 비슷해도 완전히 새로운 업계였다. 그 회사에 다닐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엄마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남편은 분당에서 학교를 나온 분당 남자였다. 전형적인 분당 느낌과는 거리가 있지만(그 느낌이 뭔지는 패스) 여튼 분당에 사는 남자였다.


사주 선생님 말대로 나는 판교에 있는 회사로 옮겼고, 지금도 게임 업계에 있다. 커리어가 잘 풀린 건진 모르겠지만 그때의 결정에 만족한다. 그리고 분당에 살던 남자와 34살에 결혼했다. 결혼해서 좋은지는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그때 사주풀이가 얼추 맞았다는 게 신기하다.


딸이 좋아서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는 사실에 엄마는 밤잠을 설치셨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때 문제의 사주 선생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엄마가 건넨 남편의 생년월일시를 보고, 사주와 궁합을 보시더니 쿨하게 한 말씀하셨다고 한다. “걱정 마세요. 웬만큼 살 거예요. 어렵게 살지 않아요.”


웬만큼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안은 어찌나 큰지. 남편 사주가 나보다 좋다는 말에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우리 집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인데, 이렇게나 사주 의존도가 높다니 웃긴 일이다. 어쨌거나 사주 덕에(?)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부모님은 누구보다 남편을 아끼고 사랑하신다. 집을 살 때처럼 꼼꼼하게 따지는 두 분의 태도는 결혼 전까지였다. 우리는 한가족이 됐고,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그럭저럭 맞춰가며 살고 있다. 이렇게나 다른 두 남녀가 아이를 낳고 함께 살고 있다니. 결혼을 한 것보다 지지고 볶으며 같이 사는 게 더 신기한 요즘이다.

 



이 글이 어디에 노출되었는지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본문 이미지는 글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제 개인 브런치에 작성한 글이고 홍보 목적도 아니라서, 관련 문의에 답변드리기 힘든 점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릴게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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