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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Sep 03. 2019

결혼의 복병  

주말에 남편과 함께 있으면 못마땅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 왜 집안일을 시켜야만 하는지, 화장실만 가면 함흥차사인지, 핸드폰은 왜 손에서 놓질 못하는 건지, 내 얘기가 재미없는 건지... 주로 "왜 저럴까?"로 시작해서 포기와 체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은 고울 때 보다 미울 때가 많지만, 남편과 처음 만나 결혼 준비를 시작했던 3년 전을 떠올리면 뭉클한 감정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난다.


살면서 가장 뜨겁게 사랑한 이성은? 라는 질문을 누가 던진다면 남편이 객관식 보기에 포함은 돼 있겠으나 정답은 아닐 것이다. 여러 이성을 사랑했고 뜨거운 연애도 있었다. 남편과의 연애는 뜨겁기는커녕 외롭고 쓸쓸했다. 내 자존감은 먼지가 될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과 결혼이 너~~~무 하고 싶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농담이야 #여보사랑해


남편과의 결혼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 크니까, 결혼에 이르는 과정도 순탄할 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빌런급 복병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복병은 우리 아빠였다. 10대 시절엔 서로 죽일 듯이 싸웠고, 20대 중반까지도 그닥 사이좋은 부녀는 아녔는데 서른이 되던 즈음에 갑자기 아빠가 딸바보로 돌변했다. 이유를 분석해보면 20대 시절보다는 덜 망나니 같아졌고, 사회생활 짬이 생기며 아빠를 좀 더 이해하게 되어서였다. 아빠는 좀 유별나고 이기적이긴 해도 선량하고 성실한 분이었다. 나도 그런 아빠와 닮았다는 걸 30대가 되어서 깨달았다.


아빠가 날 좋아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인데, 결혼을 앞둔 시점엔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아빠는 당신 딸의 객관적 지표 따위는 안물안궁이었다. 뭐 하나 특출 날 게 없는데, 아빠는 어떤 남자와도 나를 견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아빠와 대면한 자리에서 압박 면접을 치러야 했다. 아빠는 멘탈을 탈곡기에 넣고 탈탈 터는 수준으로 딸의 남자 친구를 취조했다. 남편의 약점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아빠의 태도는 흡사 악질 고문관 같았다.


남편을 취조할 때 아빠의 무논리가 얼마나 심했냐 하면,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했던 히틀러의 심복 괴벨스처럼 모든 걸 부정적으로 확대 해석하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그걸 갚느라 여유가 없었다"라고 하면 코웃음을 치며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노오력을 해서 4년 장학금을 받았어야지!"라고 비난의 매질을 하는 식이었다.


아빠의 독선 때문에 결혼 준비를 하며 참 많이 울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울고, 빈 회의실에서 울고, 길에서 통화를 하며 울었다. 남편이 상처 받는 게 정말 싫은데, 폭주기관차처럼 돌진하는 아빠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허탈했다. 아빠 때문에 미치겠다며 엄마에게 원망의 감정을 쏟아냈다. 함께 울먹이며 나를 달래던 엄마가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르셨다. "나영아, 넌 왜 그 사람 생각만 하니? 아빠 감정도 좀 이해해드려. 아빠도 쏟아내실 권리가 있어!"


그 모진 과정을 남편은 묵묵하게 견뎌냈다. 아빠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사람이 나약하지 않다"라는 총평을 남기며 취조를 끝내셨다. 나는 그때 똑똑히 봤다. 아빠의 입가에 씩 드리워진 미소를. 아빠는 당신에게 주어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야당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셨다. 그리고 수 번의 청문회 끝에  딸의 보호자가 될 남자가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으셨다.



아빠 이후에도 결혼의 복병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사소한 부분에서 가치관의 다름을 발견할 때가 있었고, 서로의 재정 상태를 낱낱이 공개하며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기도 했었다.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결혼인데, 심란함에 잠 못 이뤘던 날들이었다. 모든 게 지나간 지금은 '추억'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고 괴로웠었다.  


결혼은 정말 고된 과정이었다. 식장 들어가 봐야 안다는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식장 나와서부터가 본격 결혼생활의 시작인데 식장까지 들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서로를, 결혼이라는 사회적 울타리를, 우리는 원했었다. 지금은 옷장에 걸린 옷이 입고 싶어 안달 나지 않는 것처럼 서로를 무심히 바라볼 때도 있다. 잊지 말아야겠다. 옷장에 걸린 저 비싼 옷을 갖기 위해 서로가 얼마나 노력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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