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앞두고 나를 끝까지 괴롭힌 고민이 있었다. 하객 초대였다. 불편러 기질 때문에 결혼식 자체가 부담이다 보니 하객은 최대한 적게 부르고 싶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축의금 내고 날 구경하며 입방아를 찧어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불안했다(사실 좀 오바였다...).
결혼식엔 정말 최측근만 초대하고 싶었다. 그럼 회사 사람들이나 어설프게 아는 지인들, 과거 친했으나 지금은 연락이 뜸해진 사람들은 어쩌지? 나의 고질병인 '어쩌지병'이 도졌다. 그 고민의 중심엔 지난 15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볼 때 흑사병과 콜레라와 에볼라와 사스와 메르스를 합친 수준의 무시무시한 존재 S(새디스트의 S다)가 있었다.
S는 내가 결혼할 당시 나의 팀장이었다. 욕설과 여성 비하 표현은 가급적 쓰고 싶지 않지만 S는 역대급 상또라이 미친년이었다. S와 관련된 일화만 나열해도 아라비안 나이트 저리 가라다. S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을 인신공격하고 철저히 깔아뭉개며 희열을 느끼는 관종 소시오패스였다. S 밑에서 일한 2년 3개월 동안 내 멘탈은 가루가 됐다. 부정맥이 심해졌고, 나중엔 공황 증세까지 겪었다. 복지가 좋기로 소문난 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S 때문이었다.
S가 아무리 싫어도 결혼식에 팀장을 초대 안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S가 나의 결혼식에?? 결혼식에 와서 내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본다? 입장하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부정맥 도질 판이었다. 상상만 해도 손이 떨리고 입이 바짝 말랐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나마 생각한 게 같은 팀 동료들에게만 알리고, 회사 사람들에겐 알리지 않기로 한 거였다. 어차피 나중엔 다 알려질 거지만, 내 결혼식에 S가 샤넬 목걸이 주렁주렁하고 와서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만이라도 막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에게서 수집한 정보를 왜곡하고 확대해서 타인에게 말하는 버릇이 S에겐 있었는데, 그것만이라도 막고 싶었다. 그렇게 내 결혼식은 비공개 아닌 비공개 결혼식이 되었다.
이게 다 S 때문이었다. S가 내 결혼식에 오는 게 나는 정말 끔찍이도 싫고 무서웠다. 결혼식 당일 새벽, S 밑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로부터 이런 문자가 왔다.
"선배 너무 죄송한데 결혼식에서 S와 마주칠 자신이 없어요.
입을 옷이랑 가방도 골라놨는데...정말 죄송하고 결혼 축하드려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후배가 못 온다는 사실이 서운한 게 아니라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겠어서였다. 심지어 결혼식의 주인공은 난데, S가 내 결혼식에 온다면 불참 선언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후배에게 마음 쓰지 말라고 답장을 보내고 두려운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혼식 당일까지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든 S는 정말 어처구니없고 허무하게도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결혼식에 못 가게 됐다,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굳이 팀원들 참조까지 걸어서 보내고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허구한 날 단톡방에서 업무 지시하던 사람이 결혼식에 못 온다는 걸 회사 메일로 알리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튼 못 온다니 땡큐였다. 그날 결혼식에 온 팀원들은 쉬는 날까지 S 얼굴 안 봐서 너무 다행이라며 밝게 웃었다. S가 준 최고의 결혼 선물이었다.
S를 만나기 전, S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지만(그 정도로 S는 역대급 소시오패스였다.) 20대 시절 나를 무척 힘들게 했던 선배 A가 있었다. A의 주요 콘텐츠는 후배들의 외모 비하였다. 선배랍시고 타인의 외모를 함부로 지적하거나 평가할 권리는 없는데 A는 정말 무례하고 거침이 없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난 날은 "피부가 썩었다, 너"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체중이 조금 늘면 "살쪘지?"라는 비수가 어김없이 날아왔다. 유독 피곤한 날 "얼굴이 흘러내리겠다"라는 말을 듣는 것 정도는 애교였다.
외모 비하만 하면 그나마 참을만 했을 텐데 A는 결혼생활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모조리 후배들에게 풀었다. A의 남편이 단골 중국집 여주인과 썸 타는 문자를 주고받은 걸 A에게 들킨 날, 견디기 힘든 히스테리의 광풍이 몰아쳤다. 평소 같으면 한 번에 통과될 원고를 서너 번씩 고치라고 하고 전체 문장을 다 다시 쓰라는 식이었다. 빨간 펜으로 가득한 원고를 받아 들며 A의 결혼생활이 제발 평탄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A와 가끔 연락하며 지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기도 했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A에게 연락을 하고 싶진 않았다. A가 나를 친한 후배로 생각한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그와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A는 무척 화를 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내심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장 행복해야 하는 날,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아야 하는 날, 나를 함부로 평가하며 나에게 상처될 말을 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민낯으로 식장에 들어가도 박수를 쳐줄 사람들만 초대하고 싶었다.
결혼식 단체 사진을 보면 내 친구들은 열 명 남짓이다. 결혼식 사진을 찍어줄 친구가 적다는 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 열 명은 나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이고, 나 또한 그들의 경조사에 꼭 참석해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할 거니까. 결혼식에 초대할까 말까 꺼려지는 사람들은 걸러도 된다. 내 결혼식은 나를 위한 거니까. 내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권리는 나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