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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Aug 12. 2019

공포의 스드메

결혼 준비가 대체 뭐기에. 20대 시절 회사 선배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청첩장 문구는 그렇다 쳐도 종이 재질까지 고민하는 게 나와는 다른 별세상 얘기 같았다. 혼수니 예단이니 꾸밈비니 하는 단어도 너무 낯설었다.


서른넷이 되어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그동안 반면교사로 삼아온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리스트부터 만들었다. 일단 예단이 가장 싫었다. 예단에 대한 내 감정은 혐오 수준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고 전통도 없는 억지 짬뽕 같은 풍습이었다. 예단부터 빠르게 패스하고, 폐백도 안 하기로 했다. 사실 폐백을 제대로 본 적 없어서 폐백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냥 막연한 거부감에 안 한다고 했다. 예단, 폐백, 마지막은 예물이었다.


당시의 남친, 현 남편이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종종 해본다. 남편네 집안이 부유해서 예단, 폐백, 예물, 혼수까지 당연하게 요구했다면? 부잣집에 시집간다는 설렘에 젖을 새도 없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부자랍시고 그런 걸 당연하게 요구했다면 파혼했을 거다.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녔기에 어쩌면 그 상황을 핑계로(?) 우리는 우리 뜻대로 결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예물은 각각 한 돈 짜리 금반지로 끝냈다. 특별히 미니멀리즘을 추구했거나 대단히 올바른 가치관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결혼이라는 의식을 앞두고 평소 소비하지 않을 것을 과하게 소비하거나 허세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돈도 없었고).


어린 나이에 친오빠 결혼을 보며 느낀 게 많아서기도 했다. 오빠는 내 기준에 나름 호화 결혼식을 했는데, 그때 산 예물이며 혼수가 얼마 안 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걸 보며 결혼할 때 뭘 많이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나의 결혼 반지. 되팔기 좋은 금이다.


식장 계약하고, 이젠 대망의 스드메를 계약할 차례였다. 스드메라니...오랜만에 써도 소름이다. 결혼과 관련된 약자는 다 소름 돋는다. 예신, 예랑, 스드메, 신행....이 거부감은 왜일까.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경험을 너무 프로처럼 표현해서? 잘 모르겠다. 저 단어들이 주는 선수 같은 느낌이 왠지 싫다.

 

결혼 준비는 레몬테라스, 임신 출산 준비는 맘스홀릭. 이것은 불문율이다. 스드메 정보를 얻기 위해 레몬테라스에 접속했다. 그곳엔 '결혼 준비'가 직업인 것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정보의 홍수였다. 주말에 스튜디오와 드레스샵과 헤어메이크업샵을 투어하며 가격과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공유하는 사람들이 평일엔 학교 선생님이고 은행원이고 나처럼 평범한 회사원일 거라 생각하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에 '스드메'를 쳐 봤더니.... #뭐야이게 #무서워


스튜디오 촬영은 예단만큼 싫었다. 바로 패스. 드레스와 메이크업은 결혼식을 하기로 한 이상 안 할 수가 없었다. 맞춤형 셀프 웨딩을 도와주는 업체를 찾아서 미팅하고 바로 계약을 했는데 이때 만난 플래너 분과의 대화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표정이었다. 남친이 같이 가는 것도 싫어서 혼자 갔다. 내 표정이 너무 썩어 있어서 플래너 분이 조심스레 "신랑 분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세요?" 하고 물어보기까지 했다(신랑을 공개하기 꺼려지는 결혼이라 생각하신 걸까?).


그냥요, 저는요, 이런 게 다 싫어요. 해야 하니까 하는 건데요. 드레스샵은 최대한 사람 없는 곳이면 좋겠어요. 세 벌만 입어보면 돼요. 드레스 입고 나올 때 짠! 하면서 커튼 걷고 앞에서 박수 치고 이러는 거 너무 싫어요. 헤어메이크업은 공장 같은 곳만 아니면 돼요. 신부님이라 불리는 것도 싫어요. 그냥 조용한 곳이면 좋겠어요. 아 그런데 비싼 데는 안 돼요.


불편러도 이런 불편러가 없었다. 나는 기쁨과 설렘이라곤 없는 예비 신부였다. 결혼을 하고 싶긴 한데 결혼식은 울며 겨자 먹기로 준비하다 보니 싫은 것을 피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내가 꿈꾸는 그런 이상적인 결혼식은 없었다. 결혼식은 그저 얼른 해치우고픈 숙제였다.


신부님, 저는 신부님보다 나이가 많아요. 그런데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커요. 결혼식이 얼마나 설레는 행사인데요. 신부님 요구사항 잘 알겠어요. 불편하시지 않게 최대한 맞춰드릴게요.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플래너 분이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그분의 음성과 말씨는 지금도 생생하다. 말을 참 예쁘게 하시는 분이었다. 남들 결혼식 준비해주는 게 일인데 본인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다는 말도 진심으로 와 닿았다.


헤어메이크업샵은 적당히 사무적이고 친절했다. 우려했던 드레스 투어도 나름 할 만 했다. 지나고 보니 뭘 그렇게 날이 서 있었나 싶다. 결혼식은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형식적이지 않았고, 돈지랄도 아니었다. 합당한 금액을 썼고 쓴 만큼 만족했다.


예단, 예물, 폐백 3종 세트 안 한 건 잘한 일이었다. 아무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스튜디오 촬영도 안 하길 잘했다. 결혼 앨범은 결혼식 장소였던 성당에 연계된 스튜디오가 있어서 했는데, 가격이 충격과 공포긴 했지만 결과물에 만족했다. 남들 다 하는 것 중에서도 안 해야 하는 것은 안 해야 할 이유가 있고, 해도 괜찮은 것들은 해도 괜찮은 이유가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온갖 걱정에 불안해했던 나에게 결혼식은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누가 결혼식을 안 하겠다고 하면 진심으로 그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할 거다. 예단 예물 폐백 스드메 같은 것들이 필수인 결혼식은 점차 축소되고 사라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공포의 단어였던 스드메도 언젠간 삐삐처럼 추억의 단어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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