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의 잠 못 드는 밤

부정맥은 내리고

by 저기요

2014년 삼일절에 독립을 했다. 벌써 5년 전이다. 3년의 독립 기간 중 1년을 응암동에서 살았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참 아련하다. 결혼하고 애엄마가 된 지금, 응암동에서의 1년은 가끔 꺼내어 어루만져 보는 귀한 추억이다.


혼자 살며 겪는 외로움마저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멘탈이 건강할 땐 적적함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가만히 멍 때리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였다.


독립 후 한 달이 지났을 때, 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해 나는 2년 차 신입 편집자였다. 잡지 기자를 하다가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구직활동을 했고, 운 좋게도 나에겐 정말 과분한 회사에 들어갔다. 그 후 편집자가 내 적성과 정말 안 맞는 일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관심사는 너무 얕고, 깊게 파고드는 열정과 집요함도 부족했다. 기획은 번번이 미끄러졌고 내가 무슨 책을 만들고 싶은지 나도 몰랐다. 나는 회사에 민폐만 끼치는 존재였다.


회사에서 넋 놓고 있는 시간이 절반이니 사고 치기 딱 좋았다. 편집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인쇄 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갓 출간된 책은 이제 막 엄마 몸에서 나온 아이처럼 '완벽한 새 것'의 상태여야 하는데, 바코드 찍는 ISBN을 틀리게 입력해서(왜 틀려도 하필...) 책 뒷면에 스티커를 붙였다. 내가 만든 책은 나오자마자 중고가 됐다. 초판으로 찍은 2천 부가 다 그 꼴이었다.


죽고 싶었다. 저자 분에게 너무 죄송하고, 회사에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때 아주 혼쭐이 났었어야 했는데. 내가 다니던 출판사는 전래동화에나 나올 법한 인자하고 마음씨 착한 분들만 계신 곳이었다. "김대리, 괜찮아"가 내가 들은 유일한 말이었다. 나를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엉 왜죠 ㅠㅠ).


자괴감의 밑바닥을 찍은 실수 때문인지 그즈음 잠을 잘 못 잤다. 하루는 자려고 누웠는데 가슴이 타는 듯 간지러우면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요동을 쳤다. 벽에 등을 대고 앉으니 괜찮아졌다. 누우려고 하면 다시 디스코팡팡을 탄 것 같았다.


졸려 죽겠는데 누우면 심장이 요동치고 계속 앉아 있자니 졸려 죽을 것 같고. 아침 7시까지 그 상태였다. 잠을 1분도 못 잤다. 너무 무섭고 괴롭고 짜증이 나서 엉엉 울었다. 내 심장 왜 이러냐고! 왜 갑자기 이렇게 뛰냐고오!!

심신 안정에 좋은 엔야의 음악까지 들었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던...


다음날 아침 서부병원 응급실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부정맥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갑자기 큰 스트레스를 받거나 알코올 혹은 카페인 섭취가 과하면 일시적으로 그런 증상이 올 수 있다고. 부정맥은 강도 같아서 증상이 있을 때 현행범으로 체포해야지, 증상이 지나간 뒤에 병원에 오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하루를 꼴딱 지새운 그날 밤. 집을 나온 걸 처음으로 후회했다. 안방에 엄마가 있으면 뛰어가서 청심환이라도 달라고 했을 텐데. 혼자인 게 참 슬프고 처량한 밤이었다.


부정맥은 이후 1년에 한두 번씩 재발했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열린 문틈으로 침입하는 강도 같았다. 하지만 응암동에서의 그날처럼 심하진 않았다. 그날 밤 악몽은 지금도 생생하다. 앞으로를 예견하는 불안한 프롤로그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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