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살았다

by 저기요

독립 시절은 현재의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혼자만의 삶을 온전하게 즐겼던 그 시절은 30대의 자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서른 살에 결심하고 실행한 독립은 내가 살면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독립을 할 거다. 독립은 장점이 훨씬 많고 단점은 거의 없었다. 혼자 살면 여러 가지로 힘들지 않을까? 라는 건 기우였다. 적당히 부지런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독립 이후의 삶이 더 풍성하고 행복할 거다.


성인은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의식주를 부모님께 의존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돼 버렸다. 밥은 엄마가 차려줘야 먹고, 부모님이 여행 가셨을 때 외엔 세탁기를 돌리는 일도 드물었다. 월세도 안 내면서 집안일도 안 했으니 참 양심 없는 세입자였다.


독립 후 스스로 음식을 해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내 몸뚱이가 제때 일어나 제때 밥 먹고 제때 일하러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이 당연한 걸 서른 살에 처음 해 보다니...퇴근 후엔 장을 봐서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독립 후 집에 처음 와보신 부모님이 가장 놀란 게 이 부분이었다. 부모님과 살 땐 내 방이 개판이어도 다른 곳은 깨끗하니 어질러진 공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다. 독립을 하니 내 방이 곧 내 집이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머리카락과 먼지가 굴러다니는 방바닥을 보면 회사에서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방(집)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독립 한 달차에 한 결심이었다. 정전기 청소포와 돌돌이 덕에 7평짜리 원룸은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내가 혼자 사는 공간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하니 그렇게 재미있고 신 날 수가 없었다. 집안일에 대한 부담과 공포가 줄고 즐기게 된 것도 독립이 준 장점이다. 육아를 하는 지금도 나는 집안일이 재밌다(너무 혼자 할 때만 빼고).


혼자 살면 삶의 템포가 뒤죽박죽이 될까 봐 우려했었다. 막상 나가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주말엔 죽은 듯이 잠만 잤던 건 집주인(부모님) 눈치보느라 심적으로 억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려면 부모님 눈치를 봐야 했고, 주말에 침대에만 누워 있으면 잔소리에 시달렸다. 가끔 고삐가 풀린 날엔 아침 동이 터오도록 술을 마시거나 귀한 주말을 잠으로 빼곡히 채워버리곤 했다.


독립 후엔 모범 가장처럼 제때 집에 들어갔다. 나만의 공간이 있으니 굳이 밖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퇴근길엔 설레는 맘으로 맥주를 사서 집에 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고, 간단한 안주를 해 먹고,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세상 모든 행복이 나에게 몰려있는 것 같았다.


ㅋㅋㅋ 아저씨 여자의 혼술 일기 #2014년

혼자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매일매일 불광천을 산책했다. 아침 공기가 그렇게 상쾌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서른 살부터 서른 넷의 봄까지, 나 혼자 살았던 그때의 경험은 첫사랑보다 아련하다.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 경험에 감사한다. 서른에 한 독립은 결혼과 육아라는 내 인생의 시즌 2를 꿋꿋이 버텨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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