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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Sep 05. 2019

유부녀의 조언

오지라퍼 수다쟁이 아줌마가 못다 한 말들

회사에서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여자 동료들과 연애와 결혼을 주제로 대화를 할 땐 나도 모르게 친정 언니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나이 많은 거 티 내지 말아야지, 이게 꼰대지 뭐람? 아무리 다짐해도 소용이 없다. 내 입에서 MB 화법이 튀어나온다는 걸 눈치챘을 땐 이미 말을 마친 뒤다. 남는 건 후회뿐이다.


세상 비호감인 이 화법을 내가 쓰고 있다니


미혼일 때 회사에서 제일 듣기 싫은 주제는 1) 육아  2) 상사의 과거 연애담이었다. 1)은 나랑 아예 동떨어진 얘기라 노관심이었고, 2)는 국사 수업 듣는 기분이라 정말 재미가 없었다. 현재 진형형 아닌 연애 이야기, 그것도 나이 많은 상사의 과거 연애담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 오빠랑 연애한 사연부터 초등학교 동창인 남편이 열렬하게 구애했던 스토리까지, 틈만 나면 본인 연애사를 줄줄 읊는 여자 상사가 있었다. 지천명 앞두신 분이 과거 연애담 무한 반복 재생해서 뭐 어쩌자는 건지... 나도 한때는 인기 많았거든? 남자들이 날 정말 좋아했거든~? 이런 뉘앙스가 핵심이었는데 영혼 없는 리액션 하기도 괴로웠다.


혹시 나도 그들처럼 남들이 듣기 싫은 과거 연애담을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닐까? 발신량 줄이기에 실패한 날은 빠르게 자기 합리화를 한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나도 한 때는~" 하고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할 경험이 내겐 없다. 나의 과거 연애담은 대부분(이라고 쓰고 '전부 다'라고 읽는다) 찌질하다.


답 없는 연애에 매달려 허비한 시간이 얼마던가. 자그마치 12년이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내가 고른 나무들은 하나같이 썩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지막 잎새 떨어진 지 오래인데 하염없이 창 밖을 보며 헛된 희망을 품었었다. 달라질 거야, 날 사랑한다면, 달라질 거야. <-- 이런 기대는 진작에 버렸어야 했다. 나는 남자 보는 눈이 정말 없었다.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나요?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해줄 말이 없다. 하지만 어떤 남자를 피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해줄 말이 아~~~~~~~~~~~~주 많다. 회사에선 수다스럽고 오지랖 넓은 아줌마로 보일까 봐 꾹꾹 눌러 담아 삼키고야 마는 이야기를 여기엔 솔직히 적어야겠다.


개인의 경험에 입각해 적어본 피해야 할 남자 유형 10


1) 착하기만 한 남자 : 착한 것은 메리트가 아니다.

2) 제 밥벌이 못하는 남자 : 잉여인간 아니뫼?!!

3) 허세가 과한 남자 : 허세는 삼겹살의 비계 같은 것

4) 약자에게 강한 남자 : 강자에게도 강한지 보자

5) 우리 가족들과 있을 때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뻗대는 남자 : 사회성 결여인가?!

6) 지나친 과거형 or 미래형 화법을 구사하는 남자 : 나도 옛날엔 ~ / 난 이다음에~  -> 현실은?

7) 업소 출입 혹은 노래방 도우미 부르는 취미가 있는 친구가 많은 남자 : 친구는 그 사람의 거울^^

8) 비속어 남발하고 맞춤법 심하게 틀리는 남자 : 정규 교육받았는지 의심스럽...

9) 마통 & 대출 많은 남자 : 남자가 필요한 거지 빚이 필요한 건 아니므로

10) 일베하는 남자 : 잘 가라-!


=> 100개 채우라면 채우겠으나 여기까지만 쓰겠다. 위 내용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저런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어야 저런 유형의 남자를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나는 주로 1)과 2)를 만났다. 착하고 무능한 남자들. "그래도 착해요."라며 남친과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그랬다. 착하기만 한 것은 결코 메리트가 될 수 없다. 선한 마음과 올곧은 가치관을 지닌 것과, 우유부단하며 본인 취향이 없어서 나에게 잘 맞춰주는 것은 분간할 필요가 있다. 착한 남자는 전자고, 착하기만 한 남자는 후자다.


5) 6) 7) 8)도 경험이 있다. 10)은 다행히 없었고 9)도 있었구나 참... 4)는 많은 남자들이 해당한다. 3)도 흔하다. 삼겹살에 비계가 적당히 있어야 맛있는 것처럼, 남자의 허세도 적당하면 귀엽다. 하지만 삼겹살에 비계가 너무 많으면 아무 영양가도 없을뿐더러 맛이 없어서 못 먹는다.


허세가 무르익으면 허언증이다. 30대 중반에 대학원 다니면서 곧 교수될 거라고 큰소리치던 남자가 있었다. 현실은 반 백수였다. 희망사항과 인생 계획은 엄연히 다르거늘, 몸치에 음치인데 장래희망에 '아이돌'이라 적는 초딩을 보는 것 같았다. 저기요, 정신 좀 차리세요. 교수는 아무나 하나요?


나도 그랬고, 대다수의 여자들은 순진해서 사랑의 힘으로 상대를 바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틀린 건 아니다. 사람은 바꿀 수 있다. 양말을 뒤집어 벗거나 설거지하고 싱크대 물기 안 닦거나 맥주 마시고 양치 안 하고 자는 것 정도는 가르치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본성은 안 바뀐다. 착하기만 한 것, 어른들 앞에서 심하게 긴장하거나 쭈뼛거리는 것, 업소 가는 친구가 있는 것,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 생활력이 부족한 것, 일베를 하는 것 등은 쉽사리 고치기 힘들다.


연애를 끝까지 해보면 1~10) 유형의 남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길이 아닌 걸 알면서도 계속 걷는 이유는 길이 끝나지 않아서다. 헤어짐이라는 절벽에서 곤두박질 쳐봐야 정신을 차린다.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어라라? 상처는 금방 나았고 절벽 아래엔 좋은 남자들이 훨씬 많았다.

헤어지기 직전의 심경 ༼;´༎ຶ ۝༎ຶ`༽

나에게 잘 맞춰주진 않아도, 내 지랄 맞은 성격을 적당히 눌러가며 자기 밥벌이하고(나까지 먹여 살려 달라고 하지 않는단 말이다! 제발 너의 밥벌이만은 yourself!) 우리 부모님과도 잘 지내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지금 나의 남편이라고 결말을 내면 너무 오글거릴 것 같지만 문장을 뭐라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냥 그런 것으로 하자...


여튼 이전 연애를 통해 느낀 게 너무 많아서 지금도 어린 동료들의 연애 고민을 들으면 내 얘기인양 감정 이입이 된다. 1)과 2) 유형의 남자와 연애 중이라면 더더욱 더. 말리고 싶은 마음이 태산 같지만 유경험자로서 안다. 말린다고 헤어질 거면 아예 시작도 안 했을 연애라는 걸. 연애 고민은 그냥 잘 들어주기만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저기 나도 그랬는데~"라며 슬그머니 내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곤 한다. 오늘도 주어가 1인칭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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