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으니 살림이 자꾸만 늘어난다. 육아용품 1개 새로 들이면 1개 되파는 식으로 부지런히 순환시켜도, 아이 장난감이며 옷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까진 아녀도 공간에 여유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집이 크지 않다 보니 물건에게 내 살 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다.
우리 식구는 19평 아파트에 산다. 방 한 개짜리 오래된 아파트다. 수납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테트리스처럼 요리조리 끼워 넣는 식으로 수납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찾을 때가 문제다(하나 꺼내다 와르르... 내 눈에선 눈물이 또르르...).
얼마 전 개월 수가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집에 놀러 갔다. 차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동네라 아기띠도 없이 택시 타고 슬렁슬렁 갔는데, 택시에서 내린 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단지 입구에서 초대받은 집(동)까지 거리가 상당했다. 새 아파트 단지였는데, 규모가 엄청 커서 단지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3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아기띠도 없이 맨 팔로 10킬로에 육박하는 아이를 안고 맥주를 사기 위해 상가로 향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팔이 저려왔다. 단지가 이렇게 광활할 줄이야! 그리고 단지 안에 편의점 하나 없을 줄이야! 그야말로 컬처쇼크였다.
단지 규모만 쇼크가 아니었다. 지상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우리 아파트는 주차장이 비좁아서 5중 주차가 기본인데, 지상 주차장 없는 아파트 단지 풍경이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북유럽 공원에 온 듯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했다.
집 내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집이 넓으니 아이 장난감이 키즈카페 저리 가라 수준으로 많았고, 이런저런 육아용품을 넉넉히 쟁여놓고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기저귀 한 팩만 더 사도 수납할 공간이 없어서 뭘 빼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집이 넓다 -> 새 아파트라 깨끗하다 -> 단지가 크다 -> 단지에 차도 없고 쾌적하다 -> 이 집 아이는 여기서 초중고 다 나오겠지 -> 우리 아이는 못 누리는 인프라를 다 누리겠구나 -> 엉엉! : 생각이 빠르게 가지를 뻗어나가며 추스르기 힘든 감정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그날 이후 나에겐 구체적인 욕망이 생겼다. 아이와 함께 새 아파트에 사는 것.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덜컹거리지지 않고, 비가 와도 우산 없이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지하 주차장이 있는, 5중 주차와 문콕이 없는 그런 아파트.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곳. 나에겐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새 아파트라는 대상을 강하게 욕망하게 되었다.
욕망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나는 오늘도 호갱노노를 들락거린다. 새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 그런 꿈이 실현되는 날이 올까? 내 것 아니라 여겼던 욕망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버렸다. 나의 것이 되어버린 내 욕망이 참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