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날
그림책 작가인 모리스 샌닥의 대표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말썽쟁이 주인공 <맥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다녀온 후 눈에 뛰게 성장한다. 괴팍한 장난꾸러기였던 맥스는 엄마의 꾸지람을 들은 후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괴물들과 어울려 신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떠났던 방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혼란스럽고 거친 존재였던 맥스가(그야말로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 맘껏 모험을 하고 난 뒤에는 키도 자라고 한층 성숙해져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게 된다. 맥스는 자신만의 방황과 엄마로 부터의 분리를 통해 성장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림책의 주인공 맥스를 소개하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난 15년간 자신의 길을 찾고 싶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방황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을 해 왔다. 진로교육자로써 길을 찾는 이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에 함께해 왔다.
물론 나 역시 힘겨운 젊은 날, 되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는 막연함의 혼돈을 겪으며 20와 30대를 통과해 왔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막막하기만 했던 젊은 날.
세상 속에 혼자 버려 진 것 같은 절망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원하는 대로 살아본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지구의 심연까지 가라앉던 심정으로 불안했던 시간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청춘들 혹은 진로를 찾는 이들에게 조금 더 공감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작은 바람은 그들이 충분히 자기다운 방식으로 지금의 상황을 통과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진짜 누군인지, 추구하고 싶어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소망은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해 나가길 바랄뿐이다. 내 역할은 그 과정에서 함께 있어 주는 것 뿐이다.
같이 있어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던 중 실존주의 치료자인 어빈 얄롬의 글에서 마음에 쏙드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담자로써의 자세와 자각과 관련하여 [치료의 선물] p189에 내 마음을 적절히 표현해주고 있는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 문제는 지적(知的)인 귀중한 발견물의 내용이 아니라 탐색이다. 탐색과정 자체는 각각의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것을 제공하며 완벽한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과업이다. 중략) 이러한 설명 중 어떤 것이 진실인가? 정확한가? 하나인가? 몇 개인가? 모든 것인가? 중략) 그 어떤 것이 그때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설명에 대한 탐색은 우리를 관여하게 해 주었고 그런 관여는 그(그녀)에게 영향을 끼쳤다. ‘ 결국 이러한 탐색과정을 통해서 각자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탐색하며 자기다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문장은 고뇌하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상담자로써의 나는 그 탐색의 과정에 함께 해주는 사람으로 존재할 뿐이다. 커리어카운슬러는 심리내적인 갈등과 무의식적 욕구 , 인생 전반의 트라우마나 결핍을 다루고 내면적인 성장을 통해 자아기능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둔다. 커리어 문제를 가지고 있는 내담자들은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심리적 문제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커리어 카운슬러는 심리학적인 지식과 전문훈련을 토대로 카운슬링을 하게 되며 이론적인 지식에 기반하여 개입방법을 설정하게 된다. 내담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심리적인 핵심문제와 관련하여 의사결정에 반복적인 문제를 일으키거나 직장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기 때문에 심리학적 지식과 상담심리학적 접근을 갖춘 상담자라면 내담자를 폭넓게 도울 수 있게 된다.
한편 우리는 늘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의 개념은 변화와 가장 동일시된다. 발달은‘ 개인 또는 유전과 환경적인 영향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야기된 개인들의 집단과 개인들 내부에서의 체계적인 변화’ 로 정의되어 왔다. 발달에서는 안정성과 변화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달의 과정은 어쩔 수 없는 균형과 불균형의 반복이다. 지금 혼란스럽다면 우리는 발달의 여정에 놓여있고 균형과 불균형의 반복을 경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내 자신도 변화하고 주변 환경도 변화하고 사회의 모든 가치와 조건도 변화한다. 그래서 더더욱 진로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한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창피한가? 그러나 나도 때때로 내 자신과 내 진로에 대해서 잘 모를 때가 너무도 많다. 자신에 대해서 온전히 안다는 것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요즘 같이 정신을 차리기 힘들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더 그렇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 노력할 수 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여행이나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멘토를 만나거나 전문적인 진로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고전읽기나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실력을 기르는 대신, 공방의 견습생으로서, 그리고 주위에서 접하는 사물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과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는 한 개인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경험들이, 교육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성된 환경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 획득과 축적은 개인의 전 생애발달 과정에서 있어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동시에 개인이 사회적으로 처할 수 있는 모든 삶의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삶의 무대가 배움의 장이자 나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실험실이다. 아마도 경험은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다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도움이 되는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될 것이다.
일이 우리 인생의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삶의 만족이나 삶의 안녕감도 자신에게 맞는 일을 통해 구현되는 경우가 많다. 소명(calling of vocation)이라는 개념도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알고 목적에 맞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우리에게는 ‘일’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의 성공이라는 명확한 과제가 있다.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할 때 누리는 행복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즉, 일을 통한 행복은 우리 삶을 이루는 큰 축복이다.
스티브잡스는 자기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고 했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는 일을 하겠는가?“ 여기에 ” 아니“ 라고 답하는 날이 너무 오래 이어진다면 그는 변화할 때가 됐음을 안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의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한 확고한 자신이나 전망이 없어 크게 불안하다. 과거에는 인정 받았던 가치, 지식, 스킬도 순식간에 진부해지고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이대로 나는 괜찮은가', "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 ’ ‘ 새로운 지식, 스킬, 자격 등을 익혀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과제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무엇에 가치를 두고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로 탐색은 자기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올바른 자기이해 없이는 커리어를 디자인할 수 없고 커리어 목표도 설정할 수 없다.
길 위에서 무엇인가 불만족스럽고 주어진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탐색을 시작할 때란 것이 분명하다. 때로 고독과 자기회의로 힘이들기도 하겠지만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이 항해를 이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