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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진로를 찾기 위한 첫 번째 질문

나는 종종 강의 중 학생들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개인 상담을 할 때에도 꽤 많은 학생들이 상담실에서 눈물을 쏟고 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싶은데 그걸 모르겠어서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데 목표가 없는 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하소연은 비단 대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이나 중장년을 만나서 상담을 할 때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전직이나 이직을 하기 전에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곤 하지만 대부분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먹고살기에 바빠서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 이 없었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애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고 주어진 환경에서 해야만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였노라는 고백을 듣기도 한다.  먹고사는 게 바빴던 시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그 길로 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현실을 감내한  그분들의 역사가 놀랍고 존경스럽고 그 마음은 전달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깊은 한숨, 후회의 눈빛,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회한의 고백을 들으면 지금까지의 삶은 그래 왔지만 지금부터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에 연민이 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20대 대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첫 번째로 아직 많은 일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선명해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는데 경험 자체가 적다 보니 아무것도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압박 속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던 청소년기를 막 지나온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험의 빈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두 번째는 앞으로 자신이 몸답게 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에 맞는 일은 저절로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공부와 일이 직접 관련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명문대를 나왔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시절도 아니다. 일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관련 경험을 얼마나 했는가가 중요하다. 공부만큼이나 일 관련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커리어 설계에 좀 더 도움이 되었을 법한데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세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기대대로 사는 삶, 현실이 아닌 미디어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삶, 누군가의 불안이 투사한 집단의 욕망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는 젊은이들은 소수의 진로목표에 올인하는 경우가 있다.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지만 많은 청춘들은 부모님이 원하는 삶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      


다시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활동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  두 가지 활동을 금세 떠올린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아한다면 어떤 과정을 좋아하는지 싫어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에 싫어하는지,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은 무엇인지, 즐거움을 주고 기쁨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지 꼼꼼히 물어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늘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대답이 거의 비슷하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어떤 활동이나 대상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로 과연 어느 정도 좋아하는 것인지 그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지, 왜 좋아하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싫어한다고 느끼는 활동이라도 머리를 많이 써야 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때문인지 다른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상세히 들여다본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 탐색의 과정인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한다. 상담자 입장에서 그런 대답을 듣고 각자의 희망과 욕구를 패턴을 보려고 노력한다. 어려운 점은 부모나 다른 역할 모델들이 좋아하는 것, 부모가 자기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또래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 범주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열정을 온전히 쏟아 부어 헌신할 일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상담에서 일어나는 이 과정은 진로 정체감과 관련된 부분의 탐색이다. 진로 정체감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현재와 미래 목표의 확실성과 안정성을 의미하는데 진로 정체감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직업에 대한 개인의 목표가 뚜렷하고 자신의 흥미, 능력 가치에 대한 명확하고 안정된 상을 가지게 된다(Sharf, 2006).  

반면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성공 비결을 물으면 아마도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조언할 것이다. 더불어 훌륭한 커리어를 추구할 때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열정을 지니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열정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평생 직업과 연결시키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은 자신의 열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시간을 지나쳐 왔고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미 한참 다른 길로 접어든 마당에 다시 어딘가를 향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담 과정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대상자들은 자신이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놀라운 사실은 중학생들도 자신이 뭔가 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성적이 대단치 않아서 늦었고 이미 고등학생이 되어서 늦었고 전공을 결정하여서 늦었고 졸업반이라서 늦었고 20대 후반이라서 늦었고 30대이기 때문에 늦었다고 대답한다. 40대 이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정기적으로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이 이 일 말고 다른 길을 추구할 수도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놓아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으로 깊은 후회에 빠질 수도 있다. 


약 9년  전쯤 당시 38세이던 직장인을 만나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은 IT분야의 전공을 했고 당시 벤처 붐이 일던 시기에 벤처 기업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자녀도 있는 분이었다.  그분의 이력서를 보니 총 11년의 재직기간 동안 무려 7번의 직장을 옮겨 다닌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력서 상의 직장 변화만 보아도 이 분이 왜 커리어 카운슬링을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반복된 이직의 이유는 당장은 열심히 일하고 있고 배운 것을 활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 이 길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기 때문에다. 38세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좇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체념하면서도 부적절한 감정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상담을 해 보니 그분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고 이렇게 계속 지내면 더욱 힘들어지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게다가 자기보다 훨씬 연봉이 적은 사람들도 종종 자신보다 일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받아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분은 상담 과정에서 자신의 적성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명확히 하고 새롭게 획득해야 할 것들을 분류하기 시작하였다. 상담을 통해서 내린 결론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긴 하되 개발자라는 직무보다는 좀 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직무로의 이동이었다.  


나는 거의 매주 사람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고민을 듣는다. 상담과정에서는 바로 당신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몇 가지 질문을 기본 전제로 한다.      

◦당신이 직업을 선택할 때 열정을 어떻게 혹은 어느 정도까지 감안해야 할까? 

◦본 업 외에 당신을 만족시킬 만한 일이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뒤의 시점에서 뒤돌아본다면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길 원하는가? 

◦만약 가슴이 이끄는 일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이런 것을 고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들 모두 어떻게 하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사는 동안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상담과정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열정을 확인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새로운 영역의 일을 모색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조력한다. 이 과정은 절대로 상담자 혼자만의 유능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 과정을 통해 한 번도  조명받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탐색하면서 빛나는 눈빛을 목격하게 될 때 상담자로서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모두 일하는 존재이다. 일을 통해 행복할 때 우리의 삶이 행복하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면서 우리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즉, 진로상담 과정을 통해 꿈을 꾸고 도전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의 희열과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를 즐겨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쿵후 판다’이다. 이 영화는 용의 전사로 거듭난 판다 ‘포’의 무용담을 그린 영화이다. 아버지의 가업인 식당에서 면발을 뽑던 포는 얼떨결에 쿵후 고수들의 전당에서 ‘용의 전사’로 간택이 된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무시무시한 악당을 무찌르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임을 알고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하자 대사부가 이런 충고를 하게 된다. ‘ 어제는 사라진 과거(history)이고 내일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야(mystery). 오늘은 선물(gift)이지. 그래서 오늘을 PRESENT(현재, 선물)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판다 포를 인생역전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한 계기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었다. 다음을 기다리지 말자.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할 늦은 때란 없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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