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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언제   왜 진로상담을 하는가?

진로상담의 효과

늦은 밤에 모르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낯선 번호였지만 운이 좋았던 탓에 나는 그 전화를 바로 받았다. 저편의 음성은 꽤 매끄럽고 차분하였다. 불필요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말투는 사회생활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혹시, 성인 진로상담도 하시나요?' 다짜고짜 어른도 진로상담을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친절하게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럼, 직장인도 진로상담을 하시나요? 라고 이어서 묻는다. 나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아마도 전화를 건 사람은 어른도 진로상담을 하는지 알고 싶고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도 진로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것 같다.


진로상담은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모든 발달단계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 하다.

많은 이들이 위의 사례처럼 어른들도 진로상담을 하느냐? 라며 의아해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상담하며 만나는 사람들 중 1/3이상은 30대 이상의 성인이고 나머지 1/3도 20대 이상이다.

그리고 나머지 1/3이 청소년과 학부모이다.

퇴직이후의 경력이나 이전직의 문제, 신규입직의 문제, 대학전공이나 진학의 문제 등 진로상담에서 다루는 내용은 진로와 관련된 모든 주제들이다. 성인들은 대개 실질적인 경력관련 정보를 얻고 싶어하고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직장 적응이나 직무 스트레스, 업무에서의 소진이나 직무(전공) 불만족 등도 진로상담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영역들이다.


진로는 개인의 생애 동안 일과 관련하여 경험하게 되는 모든 생애사건들을 의미하는 과거적인 의미뿐 아니라 앞으로 인생에서 만들어가야 할 ‘행로’라는 의미도 들어있는 미래지향적인 용어이기도 하다(진미석,2000).

최근 들어 급격한 과학 기술의 발달, 다양하고 세분화되는 직업세계, 사회적 가치와 질서의 변화는 개인에게 있어서 진로란 단순히 직업의 선택이라는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 전 생애 발달의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어른들도 진로상담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진로상담자를 찾아 올 수 있다.  

성인기는 Erikson에 따르면 정체감을 성공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발달 과업의 시기이다.  이러한 발달과업을 달성하지 못할 때 맞게 되는 위기는 ‘자아정체감 대 정체감 혼미’라고 지칭된다. 여기에서 진로의 선택과 한 직업에의 헌신이 정체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김봉환, 정철영, 김병석, 2006)

진로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잘하는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러 갈등적인 기대와 인식 때문에 진로탐색을 위한 과정이 쉽지 않게 되며 정체감 혼란의 시기에 처하기도 한다.

일이 힘들어 지고 일상이 무의미하며 삶이 권태롭다. 단순히 중년기의 생물학적 변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돈을 벌긴 하지만 재미가 없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노력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밀려든다. 그야말로 정체성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진로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로 이어진다.

진로문제로 어려움이 생길 때 주변의 친구나 선배 혹은 직상 상사 등에게 고민을 상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도움을 두루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답하기만 할 때 진로상담이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성인들은 과도한 학력 경쟁과 학벌주의로 인해 학창시절에 주어졌어야하는 충분한 진로탐색은 거치지 못하였다. 게다가 부모의 기대와 교육열, 격심한 입시경쟁 등으로 인해 대부분은 적절한 진로지도를 받지 못했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 등을 생각할 기회도 없이 직업을 선택하였다(신종임, 2010). 따라서 이러한 빈약한 진로 교육의 현실은 성인기에 이르러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따른 정보 탐색을 하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진로문제는 삶에서 무시하고 배제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압박하기도 한다. 진로 상담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더라도 상담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진로상담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진로상담은 청소년들이나 받는 것으로 오해하여 자신의 진로문제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경우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른들도 진로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며 극단적으로는 진로상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진로 고민 없이도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나 진로상담 없이도 돈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그 누군가가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선택한 그 길이 최적의 길이었고 행복한 길이었다면 다행이고 행운이다.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였다면 진로상담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매일 매일이 답답하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가슴 한 켠에서 충분하지 않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진로상담을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 자기 사랑의 방식이다. 만약, 일상의 불만족 정도의 수준을 넘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확신하기 어렵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든다면 진로상담은 필요하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구성해 갈 창조적인 동력을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진로상담을 꼭 받길 바란다.


그런데도 여전히 진로상담이 과연 무슨 쓸모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상담을 받으면 당장 실업상태를 벗어나 담달에 출근할 회사라도 찾아주는 건가? 더 연봉이 많은 직장으로 이직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주는 건가? 그런것도 아니라면 돈 내고 상담을 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진로상담과정에서 구직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채용정보를 안내할 수도 있다. 경력 기술서를 점검하고 직무역량향상을 위한 교육과정이나 관련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깊은 자기 탐색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자기 명확성을 높일 수 있고 높아진 자기 명확성은 자신의 진로선택에 좀더 나은 감각을 제공할 수 있다.


진로상담이 어떤 효용이 있는가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나 투지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자주 보게된다. 희망 또는 주도사고(agency, Snyder et al.,1991)가 더 확실해지고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경로(pathway)에 대한 설명이 더 분명해졌다고 한다. 여기에서의 목표는 우리가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들이다.

덧붙여 진로상담은 심리상담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위한 시간을 통해 정보도 활용한다.  진로상담 과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상담자로부터 느끼는 지지와 이해, 격려, 그리고 상담자와의 신뢰로운 관계경험 (Fuller & Hill, 1985; Heppner & Hendricks, 1995)이다.  진로상담으로부터 얻어지는 새로운 발견과 통찰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새로운 기회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관계 경험 속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진다.


진로상담의 결과에 대한 연구에서 (Holland, Magoon, & Spokane, 1981) 내담자들은 자신과 세상의 기회를 보는 방식이 변화하였다고  다수 보고하었다.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다음, 직업세계에 대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다음에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로상담이 자신의 삶을 위한 좋은 계획을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자신의 진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데는 다양한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직관적인고 우연적인 방식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나 기억할 한 가지는 진로상담도 하나의 열린 대안이며 그 대안을 충분히 고려해 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귀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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