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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길로 가야 할까

진로 미결정 

인도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마리의 쥐가 살고 있었는데 이 쥐는 고양이가 무서워 꼼짝도  못 하였다. 이를 본 신이 쥐를 가엽게 여겨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된 쥐는  또다시 개가 무서워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 이에 신이 다시 한번 자비를 베풀어서 이번에는 고양이를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냥꾼이 무서워 꼼짝도  못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신이 “ 너는 다시 쥐가 되어라 무엇으로 만들어도 쥐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고 하며 다시 쥐로 되돌려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아  변화하려는 마음과 변화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진자 운동을 하는 추처럼 종일 왔다 갔다 한다.      


변화는 새로운 위험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두렵다.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만일 잘못된다면? 이 선택이 옳지 않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진로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이 많다. 변화하고 싶지만 정작 변화에 수반되는 모호함 때문에 결국은 제 자리 걸음을 한다.  심사숙고가 지나쳐 만성적인 미결정 상태에서 괴로워한다.  생소한 환경에 저항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고 변화는 도전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의 저항을 넘어서 지속적인 의사결정의 미루기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 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칠 때  많은 이들이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다. 

주 호소 문제들은 단순한 의사결정부터 복잡한 이슈들까지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상담 과정에서는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려는 구성원들의 혼란을 공감하고 그들의 망설임을 존중하며 걱정되는 미래와 불안감을 다룬다.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진다면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자극 주기도 하고 변화의 주체로써 선택 불안을 다룰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집중한다.  


상담을 신청하는 분들은  “ 상담자가 나를 위해서 올바른 결정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상담자는 도사가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상담과정이 잘  이루어진다면 내담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게 된다. 상담자는 대신 결정을 내려주지도 않고 확실한 충고를 하지도 않는다. (확실한 답변을 요구하는 분들에게는 적절한 좌절감을 드리기도 한다. 가끔씩 필요하다면 정보를 제공한다) 

진로 뿐 아니라 인생사는 선택의 연속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스스로 걸어나 올 수 있는 사람도 자신 뿐이고, 선택의 책임을 지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살기 마련이다. 상담자는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면서 함께 노력할 뿐이다. 상담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 명확성이 생기게 되면 결정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진로 미결정의 문제는 진로 정체감과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James Marcia(1966, 1991, 1994)는 Erikson의 정체감 형성 이론에서 두 가지 차원, 즉 위기(crisis)와 관여(commitment)을 중요한 구성요소로 보고, 이 두 차원의 조합을 통해 자아정체감을 네 범주로 나누었다. 여기서 위기(crisis) 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재평가하는 기간을 의미하고, 관여(commitment)는 계획, 가치, 신념 등에 대해 능동적 의사결정을 내린 상태를 의미한다. Marcia 의 정체감 이론에서는 개인의 정체감을  위기(crisis)와 관여(commitment)의 메트릭스인 4개의 지위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각각을 살펴보면 첫째, 정체감 혼미(Identity diffusion)의 상태는 정체성을 개발할 필요도 못 느끼고 자신에 대한 탐색을 하지 않아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네 가지 상태 중 가장 덜 정상적이고 미성숙한 상태이다. 혼미의 상태는 인생을 정의할 때 자신에 대해서 분석하지도 실행하지도 않는 상태임을 말한다. 이들 중 일부는 거의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와 관련된  문제에 흥미를 갖지 않고, 다른 일부는 망설임을 반복한다. 

두 번째는 정체감 유실(Foreclosure)로 유실은 다른 대안을 탐색하지 않고 관여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의 청소년들은 주로 부모의 생각이나 신념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 행동한다. 어떤 일에 대해 생각을 조금 혹은 거의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긴 하나 주체성을 가지고 "이루어낸"것은 아니다. 

 대학생들 중 상담실에 와서 울고 가는 학생들은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부모님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했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주변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해 포기했다거나 주위 사람들이 그건 안될 거야 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게 되어 꿈을 접었을때이다.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의사결정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는 것이다. 한가지 이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은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다른 반대의 정체성을 받아들일 때 자신에 대한 분노를 동반한 "부정적 정체성"이 나타난 다는 데 있다. 과거에 장남이나 장녀로 태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채 가족이 원하는 일을 선택하여 진로를 개척한 분들과 상담을 할 때면 그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없어진  것’에 대한 한(恨)을 경험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는 모범생으로 반항 한번 한 적 없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격렬하게 부모와 싸우고 제 2의 사춘기를 경험하는 사례에서도 자신이 탐색할 사이도 없이 주어져버린 진로정체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세번째 정체감 유예(Moratorium)는 위기 때문에 행동을 하지 않거나 행동을 한다해도 행동의 속성이 분명치 않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유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상태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불안해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예측 가능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예측하기 위해 매우 심각하게 몸부림치게 된다. 간혹 불안으로 인한 중독의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의미 없는 잡담이나 게임을 하기도 한다. 불안하여 무엇이라도 찾고 싶지만 위기에 압도되어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현장에서는 동기강화 상담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현재 우리나의 청춘들은 유예 상태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런 현상에 대해 Gail Sheehy는 임시 성인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ment)이다. 정체감 성취를 이룩한 사람들은 탐색과 위기의 과정을 겪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정체감 문제를 해결하였다. 탐색에 대한 해결의 결과로써 청년은 직업. 종교적 신념, 개인적 가치체계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정의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진로 목표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가치를 결정한 상태가 된다. 

다만 진로의 결정이 정체감 성취와 동일한 말은 아니라는 것은 기억하면 좋겠다. 자신의 목표가 명확한 이들 중에서도 부적절한 목표를 설정하고 고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분법적으로 진로 결정은 좋은 것이고 진로 미결정은 나쁜 것은 아니다. 진로 미결정이든 진로 결정이든 맥락과 상황 속에서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달 전 상담실에 찾아와서 진로문제를 꺼내놓고 한참을 울고 갔던 여학생이 있다. 원하는 삶은 출판미디어 관련 분야인데 준비하고 있는 시험은 임용고사였던 학생이었다.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고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그 학생은 취업이 어려운 막막한 현실과 국어교육을 전공했다는 이유, 그리고 절대적으로 교사를 희망하시는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다는 효심에서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무척이나 열심히 하고 있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을 해 주시면 제가 그대로 해 볼 텐데요?” 

나는 조용히 그 여학생에게 말해주었다.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있고 그것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런 방식으로 만난 거죠. 어떤 것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 나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싱거웠고 그 학생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대대로 살지 못할 까 봐  두려워하는 그 학생에겐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의 아주 작은 변화나 긍정의 강화 혹은 부정의 반응에도 민감할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빠른 결정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린 결정이 좋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너무 자학하지 말고 불안한 것은 무엇인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움직일 수 없는지 그대로 머물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큰 파도를 스스로 넘어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좀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평가에 대한 민감함, 타인이 바라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변화하려고 애쓰는 것 , 스스로 내리는 내적인 평가, 그리고 과도한 처벌적 초자아는 과감한 탐색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보고 타인의 기대에 충족되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는 - 충족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이 너무나 만연하기에 [미움받을 용기]가 초베스트셀러가 된것 아닐까 짐작해 본다. 


쥐가 고양이가 되었다가 다시 호랑이가 되고 그 후에 결국은 쥐가 된다는 이야기는 내면의 마음이 변화해야 좀 더 나은 존재로 변모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만큼 변화가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옳은 방향을 찾기 바란다. 

자기를 찾는 일련이 경험들이 모여 한층 성숙한 자기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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