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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며

상담실을 찾아갔던 날

# 프롤로그


혜선, 소영, 영선, 향숙 네 사람은 모두 내 앞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나의 삶속으로 들어와서 묘하게 중첩되었다. 30대, 40대, 50, 60대인 그녀들의 이야기 속 어딘가에 나의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20대를 건너와 성숙한 30대를 꿈꾸었지만 일상에 찌들어 버린 30대가 되었을 때 화가 났었고 원숙한 40대를 꿈꾸었지만 늘 마음이 불안하고 방황했던 처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50대가 되어 평화로운 장년을 꿈꾸지만 육체의 고통 앞에 힘겨워하고 남은 여생을 채워갈 무엇가를 찾느라 달려가는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노을이 지는 듯 아름다운 황혼을 그렸지만 매일 악을 쓰고 동시에 지나버린 것들이 그리워 통곡을 하는 것도 내 안의 어떤 모습이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가 그랬구나. 그녀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담아 공감하려 애썼다.


나는 진로상담자라는 내 일을 좋아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펼쳐놓는 개인의 역사를 듣는 일은 그들의 세계 속으로 나를 초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삶이 웅덩이에 빠졌다.

일상은 숨이 막혔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믿었는데 어찌된일인지 전혀 열정을 느낄 수 없었다. 삶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소용돌이 처럼 나를 몰아세웠다. 무언가를 잡으려 허우적대지만 마치 깊은 우물속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넝쿨장미가 아름다웠던 초여름 그래서 난 상담실을 찾아갔다.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거야’


‘엉망진창이군…’


내 마음 속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무기력했고 사는 일이 재미없었고 하고 있는 일이 무가치해 보였다. 전화기에 저장된 500명의 연락처에 내가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잔인한 현실이기도 하였다. 상담실에 앉아서 상담자를 멍 하니 쳐다보았다.


이상한 꼴이군 싶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나 혼자 50분을 이야기했다.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라도 있었던 걸까? 자꾸 자꾸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흑흑흑 울다가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러다가. 제가 잘하면 되죠 그러다가, 제가 원래 좀 그래요 그러다가, 그런 일은 제가 잘하거든요하며 자화자찬을 했다가, 너무 자신이 없어요 했다가…

이렇게만 보면 그냥 딱 정신나간 여자였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말을 주의깊게 듣고 이해가 안되면 질문을 하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어떤순간에도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 같았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가정도 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욕심 많은 나를 받아주었고 잘하려고 하지만 잘 안되는 마음을 알아주었다.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어도 불안한 내마음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선생님의 작은 동의가 따뜻한 담요처럼 느껴졌다.


‘다 잘못된 것 같아요. 아마도 원하는 대학을 못갔을 때겠죠? 아이를 낳고 좋은 엄마로 살자고 다짐했을 때일까요? 힘들지만 일을 포기할 수 없었을 때요? 지적하고 비교하던 담임에게 반항한다고 공부를 안하게 되었을 때인지도 몰라요. 직장 상사의 고함소리에 놀라 손을 덜덜 떨면 화장실에 가서 울었을 때도요? 그 모든 순간이었을까요?’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을꺼라고 생각했고 원인을 밝혀내려고 애를 썼다. 고백하지만 나는 ‘매사에 늘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또한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대상을 찾아 올바르게 고치고 싶어했다. 과도하게 통제하는 편이었다. 지나가 버린 시간마저도 통제하고 싶어했고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꺼라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과거의 시계를 한 손에 들고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어떤 부담감도 지우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겠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일에 직장일에 아이육아와 교육에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늘 제자리 걸음 같은 기분이 될 때마다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벗어날 문이 없는 사각 방안에 갇혀 버린 기분이죠. 어떤 날은 절벽 앞에 선 기분도 들고요. 아니~ 아니예요.  그 보다는 아직 덜 채워진 기분…… 마치 늘 허기진 마음 그런 거예요.


내가 깊은 무력감으로 상담을 받으면서 내 안 어딘가에 억눌렸던 말들이 가슴에서 튀어나와 목구멍을 거쳐 쏱아지는 것을 느꼈다. 꾸역꾸역 억눌러왔던 이야기를 우르르 토해냈다.


‘그래, 그럴 수 있었겠다’


다시 담요가 내 마음 위로 덮이는 느낌이 들었다. 명확한 해결책이나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앉아 주의깊게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상담 선생님은 나를 보고 있었고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와 함께 해 주었다.


서서히 내 속에서 일어났던 흙탕물들이 잠잠해지고 모래진흙과 그 안의 맑은 물들이 분리되었다.

조금씩 내 마음의 빗장을 열 힌트를 찾은 느낌이었다. 상담은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나아갔다. 진척이 되기도 했다가 뒤로 훅 물러나기도 하였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몇 달간 쉬기도 하였고 선생님이 일정이 바빠 그냥 시간이 흐르기도 하였다.


첫눈이 오던 날 나는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떤 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제 꿈은 커서 아나운서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제 꿈은 커서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엔 더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슬펐던 것 같다. 지나버린 과거의 나를 이제는 보낼 때가 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 질문의 해답은 여전히 빈칸이었다.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른채 달려가야 한다고 느끼는 그런 기분이예요. 파도의 역방향으로 가까스로 헤엄치는 기분이랄까? 모르겠어요’ 어렵게 그 말을 내뱉곤 나는 의자에 털썩 파묻혔다.


한참을 침묵했다. 침묵속에서 과거의 순간들과 현재의 나를 둘러싼 사건들이 영화처럼 흘러갔다.그 때의 나는 그대로 거기 있었다. 하지만 모두 지난 일이다. 이제는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현재의 나를 돌볼 때였다. 보이지 않는 꿈을 위해 계속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나는 심신이 너무 지쳐있었지만 내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뭔가 보여줘야지? 과거의 네가 꿈꾸던 미래의 너와 지금의 네가 다르다는 것을 해명해 봐. “


참으로 가혹한 질책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몹시 지쳐있었던 것이다.  

다시 진로 고민이었다.  

 



서점에는 ‘이것만 알면 완벽 해결’, ‘이렇게만 하면 성공보장’ 이런 책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진로상담자로서 내가 내 마음에 얹혀 있는 맷돌 하나를 치우는데에 그런 글들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문제는 당신에게만 있지.’ 훈계를 일삼는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것처럼’힘내…’’힘내라’ ‘’잘 될꺼야’와 같이 마치 똑깥은 문장으로 인쇄된 크리스마스 카드와 같은 인사말도 싫기는 매한한가지였다.  


상담을 배웠지만 일상에서 내 삶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버텨내느라 힘들었고 세상살이 속에는 잔꾀가 통하지 않아 얻어맞을 만큼 맞아야 하는 일들도 즐비하였다. 단순한 해결책, 완벽한 비법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특히 진로문제는 늘 수수께끼였다.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말들조차 소음처럼 들리던 날 …결국은 나 스스로 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함께’ 라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도 분명했다.  


나도 그랬고 나를 찾아와서 상담했던 사람들도 그랬다. 난 주로 진로와 관련된 상담을 하지만 결국은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삶의 여러 영역과 다양한 생애사건이 진로라는 좌표 위에 교차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로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각자의 삶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려고 몸부림치고 있기에 여기저기 채이고 멍들고 아파할 때, ‘제발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라고 간청하고 싶을 때, 당신에게 귀 기울이는 ‘한 사람이 여기 있어요’ 라고 토닥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의 힘을 나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나무 그늘같이 시원하고 말없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다시 힘을 내지 않을까?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조곤조곤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면 포근한 담요가 덮이는 따뜻함에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상황이라면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찰은 안전해야 가능하다는 말이 옳다고 믿는다. 안전한 환경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을 때 일상의 잔 균열을 메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정녕 그랬으면 좋겠다.


그간 돌보지 못한 나의 욕구, 말하지 못했던 갈망, 잊어버린 과거의 꿈과 미뤄둔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다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안다고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문제 혹은 당신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잘 조율된 공감은 비로소 인간적인 만남이자 나의 맨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시작점이다.


이 책이 당신과 내가 더 깊이 알아가는 만남에 함께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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