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알려주시는 줄 알았어요
진로 사회인지이론을 중심으로
예은씨를 만난 것은 상담을 진행하는 한 기관에서였다. 예은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이스크림 판매, 아웃바운드 화장품 영업, 옷가게 판매직, 패스트푸드 매장 캐셔, 키즈카페 , 카페 홀서빙, 빵집 판매직 등 아르바이트 관련해서는 경험이 풍부한 서른 살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시작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3년을 일했고 이후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왔다.
큰 키에 동그란 얼굴은 친근한 인상이었다. 왠지 아르바이트 면접을 가면 늘 합격을 할 것 만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 작고 부드러운 말투는 그런 인상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상담신청서를 제출한 예은씨는 주저주저 하면서 상담실로 들어왔다. ‘혹시 진로상담 말고 다른 상담도 할 수 있어요?’
‘가능하죠 ’
‘그냥 아무말이나 하면 되나요?’
예은씨는 굉장히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상담 신청서 상에 아르바이트 경력을 몇 가지 적어두긴 했지만 간단한 학력사항과 현재 바리스타 직무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과 나이 정도 밖에는 알 수 없었다.
예은씨는 3년간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했다. 번화가에 위치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매장은 작았지만 출퇴근하기에도 편했고 무엇보다 하루에 5시간 씩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예은씨는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업무에도 잘 적응하여 몇 개월만 해야지 했던 일이 3년을 지속하게 되었다. 예은씨가 그 일을 그만두고 다음 일을 하기 시작한 시점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문을 닫고 난 뒤였다. 갑자기 일이 없어지자 ‘어디라도 취업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취업의 문턱은 무척 높았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하였지만 서류가 통과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학교 졸업 후에 이렇다 할 취업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탈락의 이유일 것 같았지만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흔한 영어성적이나 관련 경험이 전무한 자신을 뽑아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예은씨 스스로도 자주 했던 바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 성미는 아니었기 때문에 얼른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였다. 다행스런 것은 면접을 다녀오면 대부분 ‘내일부터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일을 구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방긋 웃는 얼굴도 호감형이었고 말투도 다소곳해서 사람들이 그녀를 만나면 안심하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가게가 사정이 생기거나 문을 닫게 되면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일을 다시 구해야 했지만 금방 또 다시 다른 일이 구해졌다. 예은씨가 그렇게 한 해 두해 지나면서 어느덧 아르바이트 경력만 8년 정도가 되었다.
‘옷 가게에서도 사장님이 처음엔 주말 아르바이트만 하는 걸로 말씀 하셨는데 제가 결근도 안하고 그러니까 계속 추가로 연락을 주셔서 일을 했어요’ 그런 점에선 예은씨의 장점이 득이 되었지만 ‘잠깐만 해야지’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한번 시작한 일들은 쉽게 그만두고 나올 수가 없었다. 사장님들이 부탁을 하거나 조금만 더 해주고 나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마음이 약해져 그러마 약속을 했고, 일을 많을때는 추가 근무도 하다보니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이었다. 그러니 그에 따라 예은씨의 생활도 이리저리 변경되기 일쑤였다. 계획대로라면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중에는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 보는 것이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제가 욕심을 갖고 명확하게 끊어내면 되는데 그게 또 어렵더라구요. 우선 사장님이 부탁도 하시고 거기서 만난 분들이 잘 대해 주시고 하니까 거절을 못하고요.
‘어떤 점이 가장 좋았어요?’ 라고 묻자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언제든 그만두고 쉴수도 있고 데이트 할 시간도 있고...’라고 하면서 예은씨는 살짝 머슥한 표정을 지었다.
예은씨에겐 꽤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최근 관계가 상당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듣자하니 얼마전엔 예은씨에게 2천만을 빌려가서 돈을 돌려주지 않는 상황이었다. 용기내어 돈을 돌려 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상대방은 건성으로 듣는 것처럼 하더니 돈이 준비되면 갚겠다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역성을 내었다는 것이다. 예은씨는 남자 친구에게 더는 돈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전에는 약속을 취소하거나 전화를 안받거나 그런적이 없었는데 요즘엔 이상하게 연락이 안되는 때가 많아요“ 예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침드라마의 전개처럼 뻔한 이야기로 귀결될까봐 오히려 내가 불안할 지경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남자 친구의 태도는 예은씨를 굉장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돈을 되돌려받기 위한 상담을 원하는 걸까?’ 혹시 ‘떠날지도 모를 남자친구가 그럴 리가 없을거라는 위로가 필요한 걸까?’
그녀의 구체적인 호소가 무엇인지 잘 알기 어려웠다.
현재 예은씨는 현재 국비로 운영되는 직무교육을 받고 있었고 바리스타 과정도 수료 시점에 있었다. 곧 수료고 취업도 해야 하니 바삐 지내야 할 시점이었는데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형식적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챙겨오긴 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질문은 한마디도 하지 않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경제적인 곤란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직무교육마저 그만두고 싶다는 말에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금 몹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예은씨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지난 8년간의 아르바이트도 그녀의 말을 빌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투었고 남자친구와의 돈 문제에서도 자기 주장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상황에서 자격증 취득과 수료증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듯이 보였다. 이런 일관된 패턴은 삶 뿐만 아니라 진로의사결정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개인의 자율성이나 주체성의 측면은 중요한 요소인데 다소 의존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손한 태도는 어느 곳에서든 예쁨받는 모습이긴 하지만 예은씨 자신이 정작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명확한 의사표현은 거의 없었다.
‘예은씨 혹시 오늘 어떤 기대를 갖고 상담실에 오셨어요?“ 라고 묻자 그녀는 ” 아무런 기대는 없구요’라며 웃는다.
‘그럼 오늘 이 시간이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는 알고 계세요?’ 라고 하자 그녀는 ‘전 답을 알려주실 줄 알고 왔는데.....제가 잘못알았나봐요. 죄송해요’ 라며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예은씨에게 도움을 주려고 여기 있는 거예요’. 라고 하자 작은 목소리가 더 작아지면 ‘선생님, 제 이야기 들어보시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좀 말씀 해 주세요’ 라는 것인 아닌가?
순간 나는 후끈 더워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만나는 10번의 만남에서 내가 하라고 하면 그녀는 그대로 따를 생각이었단 말인가?
상담시간의 대부분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재 배우고 있는 취업 교육이나 교육 수료 등의 현실적인 준비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과업이었다..
예은씨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어디로 이끌고 나아가려고 하는 걸까? 이 상황을 명석하게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그녀 자신 뿐이었다.
진로계획에서 연인의 변심이나 가족의 죽음, 얘기치 않는 사고나 결별 등은 큰장애물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때로는 이런 일들이 진로 문제 자체에 장벽이 되어 중요한 기회를 잃게 만들거나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큰 상실을 경험했을 때는 커리어에 심각한 손실이 있었고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5분의 1도 수행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상실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인 일들도 매우 많다. 그렇다면 그럴때는 좀 쉬면서 천천히 준비해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관계에서 오는 상실감을 견디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녀와의 이야기를 여러 번 곱씹고 그녀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예은씨는 지금 그동안 노력해 온 일의 마무리에 서 있는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교육 막마지에 다다른 교육과정마저 포기하려고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다면 나에게 이런 교육이 무슨 의미인가? 80% 가까이 이수한 과정을 여기서 그만둔다면 정말 현명한 선택일까?
’교육이 이제 거의 마무리 되지요?‘ 라고 하니 그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취업준비를 하셔야 한다고 들었는데 예은씨 마음은 어떠세요? 라고 묻자 그녀는 시큰둥하다. 풀죽은 얼굴을 보니 이번에는 내 마음이 급해졌다. 대화를하면 할수록 예은씨가 불러일으키는 묘한 의존성을 나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은씨 속상한 마음 알 것 같아요. 돈도 돈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변심하면 걱정되고 불안하고 힘들죠. ‘ 라고 하자 어깨를 들썩 하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사람도 잘 믿어요. 그냥 좋으면 다 좋아요. 사실 나이는 있지만 꼭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것도 없고, 욕심도 많지 않거든요. 전 부자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솔직히 남들처럼 꼭 취업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없어요‘
예은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저는 그냥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놀러도 가고 큰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일을 안한다는 건 아니구요’ 결코 그녀가 불성실한 사람은 아니었다.
“예은씨 제가 질문 하나를 해 볼 께요. 만약 남자친구분과 예전처럼 잘 지내게 된다면 그때는 어떠실 것 같아요? 라고 묻자 그녀는 얼굴을 순식간에 환하게 빛내면서 ‘그럼 다 괜찮을 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어두웠던 얼굴이 환히 빛나는게 마치 머리위에 태양이 뜬 것 같았다.
해맑은 그녀 모습을 보자 이번엔 내가 문제였다. 공감을 해야 되는데 공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순진함이 나를 자극했다.
이것은 내 문제였다.
나는 평소 걱정도 많고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라 예은씨와의 상담은 상당히 어려웠다. 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을 만났을 때의 생경스러움일까? 뭔가 난해한 암호를 쥐어준 것 처럼 막막한 느낌이었다. 이제 말문이 막힌 사람은 내 쪽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나에게 예은씨는 투명한 유리잔처럼 느껴졌다. 어떤 말을 해도 상처를 주게 될 것 같아 쉽게 입을 열기 어려웠다.
예은씨가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방식이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어떤 작업을 해 나가야 할까?
이제 불안한 사람은 나였다. 할 말도 없고 난감하고 묘한 거리감에 머리는 복잡했다.
그 때 문득 이승욱 선생님이 쓰신 <포기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에는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다. 예은씨는 과연 무엇에 불안했던 걸까?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아르바이트 일들, 뭔가 애써 노력한 것 같지 않은데 잘 이루어진 일들, 편안하게 살자고 생각하면서 지내왔던 그 모든 경험 뒤에는 예은씨 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을텐데 어떤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타당화 하면서도 새로운 생각의 확장을 열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문제를 규정하지 않고 그녀가 문제를 규정해야 하면 그 작업은 자기 인식에 좋은 단초가 될 것 같았다.
예은씨의 경우로 적용해 보자면 그녀에게 중요한 것들을 그대로 존중하지만 동시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녀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선택들이 그 방향을 돕는데 도움을 주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명료해 보였다.
진로분야에서는 사회인지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효능감과 결과기대, 그리고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중 자기효능감은 특정한 일에 대해서 느끼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심리학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변인이기도 한데 진로 연구에서도 자기효능감은 목표와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관련된다.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어려운 일을 끈기 있게 하지 못하거나 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쉽게 압도되고 좌절감을 느끼기 쉽다.
또 다른 요인은 결과기대인데 결과기대란 행위의 결과로 내가 얻게 된 이득에 대한 가치판단이다. 목표가 얼마나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인가를 가늠해 보는 작업이다. 예컨대 내가 대학교에 편입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가 정규직에 지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추천서를 부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와 같은 것이다. 결과기대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요인인 목표는 특정활동에 참가하거나 혹은 특정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결정하는 것 즉,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실행하고 성취를 추구하는 것이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동기화하고 목표를 성취하는데서 오는 만족감을 안겨준다.
이 세 요인이 사회인지진로이론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요인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적 요인도 중요하다. 우리의 진로 발달을 어렵게 하는 개인의 내적이거나 환경적인 사건 또는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진로선택, 동기, 포부, 목표 실현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해하게 되며 진로 장벽이 되거나 사회적 지지요인이 될 수도 있다.
예은씨와는 그녀 자신에 대한 낮거나 부정확한 자기효능감을 살펴보고 대안들에 대한 결과를 기대해 보고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것이 짧은회기의 상담의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녀의 자기효능감을 확인하고 앞으로 하게 될 일과 직업에 대한 개인의 기대를 점검하면서 목표지향적 활동에 대한 참여와 진전을 독려하는 것은 전반적인 삶의 만족과도 관련이 된다. 그녀가 갖고 있는 성실한 태도는 어떤 일을 하든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바리스타로 취업을 하게 된다면 더 나은 기술을 숙련해 나가면서 관리자까지도 승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녀의 커리어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만족까지도 도모할 수 있다.
특히 특히 진로 인지 이론에서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메타인지, 즉 의사결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강조하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로부터 살짝 거리를 두고 삶을 조망을 해 본다면 자신이 해왔던 일들의 문제점을 분석, 통합, 평가 하면서 더 나은 대안을 발견해 낼 수 있 수 있다.
내 핸드폰 이모티콘 중에 ‘그냥 놀고 싶습니다’라고 씌여진 이모티 콘이 있다. 볼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문구라서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평소 일을 과하게 많이 하는 축에 들어가는 내게 어쩌면 이것은 욕망충족의 단어가 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일(노동)이라는 단어가 라틴어 ‘라보르(labor)’에서 왔고 라보르는 ‘고역’이나 ‘고생’을 의미한다. 또한 프랑스어에서 일을 뜻하는 트라바일(travail)은 고대 로마시대의 고문 기구를 뜻하는 라틴어 트리팔리움(tripalium)에서 왔다. 일이란 태생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인 나는 상담이 막힐 때마다 이것이 내가 지닌 열등의식은 아닐까 싶었다. 예은씨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마음 무겁지 않게 사는 것이었다. 그런 이상을 갖지 못한 나는 성실이라는 갑옷을 입고 그녀와의 상담이 무척 어려웠다.
‘공감을 못하는 상담자’로서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녀가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더라도 최소한의 안전판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녀가 자신의 삶을 모니터닝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돕는 것에 집중하기도 했다. 투철한 목표를 향해 싸워 이겨야만 가치로운 삶은 아니지만 그녀가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삶이 되려면 현실과 미래를 모두 조망할 시야가 겸비되어 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예은씨는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그녀의 우유부단한 의사결정 스타일과 관계에서의 수동성 그리고 착한 태도가 방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다. 연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위한 중심을 잡고 목표를 완수해 내었다는 성취 경험을 맛본다면 그 또한 예은씨의 성장 기록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에 써나가면 된다.
우리의 상담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예은씨에게 미래를 비춰주었지만 예은씨는 나에게 현재를 알려주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선생님이었다.
나같은 류의 사람은 열심히 사는 일에 목을 매고 전전긍긍하지만 어떤 결과에도 충분히 기뻐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자고 아무리 외쳐도 매일 매일 숙제 하느라 낑낑대고 한꺼번에 탈진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그녀와의 만남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예은씨에게 배운 것들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다른 것을 배운 것 같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 분명히 있다.
‘내가 원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열심히 추구하면서 동시에 내 삶을 존중하는 방법을 아는 것’,
우리 두 사람은 그런 면에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