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백구, 그리고 포비

내가 강아지를 키우게 된 것은 2년 전 부터이다.

강아지의 이름은 ‘포비’다. 포비가 3개월이 되던 때 우리 가족이 되었다. 하얀 털이 뭉게 뭉게 피어 난 솜뭉치 같은 포비가 처음 가족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는 탓에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돌아서면 엉망이 되는 집안 때문에 바쁜 일과에 더 바빠졌고 강아지가 이갈이를 하면서 식탁의 다리를 모두 갉아 놓았을때는 괜히 강아지를 키웠나 하는 후회가 스치기도 했다.

어느 날 거실 마루에 강아지 이빨이 듬성 듬성 빠져있는 것을 보며 기겁을 하기도 하고 강아지를 위한 살림살이가 조금씩 늘어가면서 집안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살고 싶었지만 포비는 협조를 하지 않았다. 어린 강아지의 장난기와 천진함 덕분인지 빨래감은 늘어갔고 내 옷과 남편의 옷 사이 사에 포비의 하얀 털이 붙여 늘 돌돌이를 손에 들고 청소를 해야만 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강아지 목욕하기, 강아지 산책하기, 강아지 병원가기, 강아지 양치질하기 등등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설날이 되면 친척들이 모인 집에서 포비는 늘 주인공이었다. 흰털이 솜털 같아서 귀엽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어찌나 좋아하는지 같은 자리를 뱅글 뱅글 돌면서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곤 했다. 반갑고 행복할 때마다 소위 '광란의 질주'라는 이름을 붙여준 포비의 달리기 행동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포비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집안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이끝에서 저끝으로 내달리는 행동인 광란의 질주는 같은 자리를 너댓번 왔다갔다 하고 나서야 잠잠해 졌다. 그렇게 쏜살같이 내달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포비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달리기의 이유를 묻고 싶지만 묻지 않더라도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행동 같아 보였다. ‘즐겁구나 즐거워’ 그렇게 말하는 듯 포비의 행동은 생동감이 넘쳤다.

평소엔 그토록 장난끼 넘치는 포비이지만 작년 설날에는 무엇을 잘 못먹었는지 저녁 내내 왕창 토하면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포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은 새배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포비를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포비가 왜 이러지? 어디가 아픈건가? 명절날 친척들도 모두 모였지만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명절에 문을 연 24시간 동물병원을 겨우 찾아서 응급실로 향하면서 손이 덜덜 떨렸다. 5kg도 안되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니 가슴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안고 응급실을 뛴 적이 언제였더라? 아이가 어릴 때 였지싶은데 강아지를 안고 뛰면서 내가 어미 개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아지가 아픈 것과 아이가 아픈 것을 비교하는 게 이상하겠지만 걱정되고 안타까운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며 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포비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놀이 하자는 표현, 나가서 산책하자는 표현, 졸립다는 표현, 반갑고 즐겁다는 표현, 배고프다는 표현, 간식달라는 표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강아지가 어떤 소리를 내는가에 따라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겠다. 개가 짖는 소리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루는 내가 남편에게 '난 포비 말을 알아 듣겠어...'라고 하였다. 포비는 자기가 원하는 게 있을 때 '정확하게 다르게 짖어. 알고 있었어?'라고 물으니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같이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가며 우리는 강아지의 언어를 익히게 된 것인지... 점점 잘 통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희안해요. 이젠 저희가 포비랑 말이 통해요'.라고 명절날 친척들이 모이면 우리 가족들은 농담을 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사랑하고 지켜보면 알게 되는 이치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강아지도 희노애락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고 성격이 있다는 점이다. 포비는 조심성이 많고 차분하며 찬찬히 지켜보다가 슬며시 나서는 순둥이다. 안전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한다. 순하고 착한 강아지. 이제는 서로가 잘 알게 된 것이다. 포비가 어떤 성격인지 낯선 환경에 가면 어떤 태세로 주변을 살피는지 보호자인 우리에겐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포비의 바디 랭귀지를 읽어낼 만큼 포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 옆집에 '해피'라는 개가 있었다. 70년대 말 이문동 좁은 골목집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방 2개 쪽마루가 있는 작은 주택에서 막다른 골목 끝에 위치한 북향집으로 이사를 했다.

막다른 골목집도 이상하지만 북향으로 난 대문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조건의 집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7평쯤 되는 마당이 있는 집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덜컥 계약을 하셨다.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던 아빠는 우리에게도 마당이 생겼다며 기뻐하셨고 그 이상한 방향의 집은 아빠에겐 최고의 집인 듯 보였다. 엄마는 북향집에 막다른 골목 집이라니 세상에 아무도 안 사갈 그런 이상한 집을 계약했다며 시도 때도 없이 아빠를 들볶아 댔지만 우리는 방이 3개나 있는 이층집이라는 사실에 흥분했다.

엄마는 끝까지 극렬한 반대를 했지만 결국 승복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신이 나셨는지 아침 저녁 마당을 손보시고 작은 마당 한 켠에 장미 5대를 심으면서 정비를 시작하였다. 마당 펌프가 있는 곳엔 신식 수돗가를 만들고 그 옆에 작은 대추나무 하나를 심었으며 정사각형 평상을 짜서 놓아두었다. 아버지는 원래 목수가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손재주가 비상했다. 평상을 놓으니 이젠 제법 마당 느낌이 나기도 하였다. 평상 위에 앉아 있으면 하늘의 별이 보이고 대추나무 아래서 대추를 딸 수 있을 것 같이 키가 커지는 느낌도 들었다.

골목 길 끝집, 북향인 우리집은 정남향 집인 박가네 아저씨 집과 담 하나를 두고 마주 앉은 모양새였다. 박가네 아저씨의 집은 그 인근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진 부잣집이었고 담을 넘겨다보면 우람한 자태의 집과 넓은 마당은 경이롭기 까지 했다. 정원은 우리 집의 10배는 되어 보였고 마당엔 다양한 나무가 있었으며 마당 가운데는 잔디처럼 보이는 뜰이 있었다.

평상 위에 서 가치발을 하면 박가네 아저씨가 마당에서 정원 손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였다.

어찌된 일인지 그 집에는 항상 박씨 아저씨만 보였을 뿐 다른 가족은 없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주 크고, 매우 조용한 그 아저씨네 마당은 인기척이 없어 괴괴한 느낌마저 전하는 그런 곳이었다. 아빠는 늘 그 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넓은 집을 가진 부자 아저씨. 아무튼 그 분은 ‘박씨’로 우리는 그분을 ‘박가네’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박가네 아저씨 마당에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염소보다는 작고 토끼보다는 큰 사이즈의 누렁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강아지는 정말 신기했다. 세상에 강아지라니...내 동생과 나는 옆집에 나타난 누렁이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 넓은 마당에서 강아지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학교 갔다 돌아오면 평상에 올라서 일부러 가치발을 하고 옆집의 마당을 슬쩍 바라보기도 하였다. 내동생은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해서 엄마에게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면 안되냐고 노래를 불렀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안돼' 였다.

우리집엔 강아지말고도 키워야 할 애들이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언니로서 점잖은 편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빠에게 그 강아지가 어떤 강아지냐고 짐짓 어른스럽게 물어보곤 하였다.

그럴때면 아빠는 아마도 진돗개 같은데 순종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진돗개라니...우리는 더욱 흥분했다. 진돗개는 정말 똑똑하데, 집도 지키고 도둑도 잡고, 엄청 충직하대라고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진돗개에 대한 상식을 겨루느라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저 누렁이가 진돗개라면...이건 정말 대사건이다.

진돗개 답게 사납고 무서운 개가 아닐까? 진돗개는 아무곳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개라던데 유명한 혈통을 보유한 저 개는 어디서 왔을까? 그야말로 누렁이 진돗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자매에겐 가장 큰 화제거리였다. 우리는 강아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엄마의 마음을 혹시라도 돌릴 수 있을까 싶어 엄마가 기분이 좋을때면 우리도 강아지를 잘 키울 수있으니 한 마리만 데리고 오자고 해도 엄마는 늘 완강했다. 엄마 왈 엄마는 개한테 물린 적이 있어서 아주 작은 강아지 조차 무섭다는게 그 이유였다.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확률이 희박해 질수록 옆집의 누렁이는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누렁이는 털이 누래서 우리끼리 붙여준 이름이지만 아빠에게 듣자하니 그 개의 이름은 '해피'라는 것 같았다. ‘해피’가 무슨 단어인지 몰랐던 나는 아빠에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행복'이라고 알려주셨다. '해피'라니... 꽤 근사한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도 멋지다. '해피'라니..누가 지었을까? 왠지 촌스럽게 생긴 누렁이의 외모와는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이라는 뜻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렁이가 온 날 누렁이는 제 집이 하나 생겼고 그 집은 현관에서 난 쪽문 앞에 놓여졌다. 그리곤 목줄이 채워졌다.

나는 학교에 오며가며 누렁이를 곁눈질로 슬쩍 슬쩍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집 마당 평상 위에 한번 올라갔다 내려가면서 옆집을 넘겨다 보았다. 누렁이는 거의 매일 엎드려 있거나 밥그릇에 코를 박고 밥을 먹거나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면서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드는게 다였다.

매일이 똑 같았다.

개집 옆에 현관문 그리고 쪽문이 난 곳에 묶인 누렁이의 생활공간은 1.5m 정도 될까? 누렁이가 마당을 뛰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사이었지만 나는 마당에 아무도 없다 싶으면 가끔 큰 소리로 '해피 해피' 하고 그 누렁이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 목소리를 듣는지 어쩐지 처음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가끔식 '껑껑' 하고 짖어서 화답을 하기도 하였다. '아...너 이름은 해피가 맞나보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박씨 아저씨네는 미스테리했다. 누렁이는 왔는데 박씨 아저씨를 제외하곤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사는지 알고 싶었지만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그 북향집에서 만 4년을 살았으나 아이를 본 적도 없었고 그 집의 아줌마도 본 적이 없으니 참으로 외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향 막다른 골목인 우리집에서 그 남향집을 찾아가려면 동네를 크게 크게 한바퀴 돌아야 하는 길이라서 한번도 그 집의 대문을 본 적도 없었고 해피가 대문 밖을 나가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해피는 늘 그 집 현관 옆 쪽 문앞에 목줄이 묶여 있었고 가끔 개 밥그릇에 밥이 담겨 있는게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누렁이는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수놈인지 암놈인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누렁이의 자리는 늘 그 자리었고 혼자 외롭게 밥을 먹었고 가끔식 의미없는 왔다 갔다를 하다가 밥이 채워지면 밥을 먹었고 졸다 깨다 그게 전부였다. 하루는 해피의 밥그릇 주변에 날아다니는 파리떼를 보면서 밥그릇이 너무 더러워 라고 했지만 어른들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누렁이의 집에 깔린 담요도 무척 더러워보였다. 게다가 박가네 아저씨네 누렁이는 늘 혼자였다.

친구도 없이 가족도 없이 1.5 m 길이의 목줄에 묶인 채 그냥 매일 현관 옆 쪽문 근처를 맴맴 돌거나 가끔 컹컹 짖거나 얌전히 엎드려 있곤 하였다.

누렁이가 처음 그 집에 오던 날 우리는 그 누렁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집은 강아지가 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했는데 누렁이는 점점 외로워보였다.

한 해 두 해 누렁이는 조금씩 몸집은 커졌지만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아 들개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몸집은 커졌는데 묶인 목줄의 길이는 그대로였다. 현관 쪽문에 거의 닿을 것 같아 보였고 한번씩 몸을 털면서 컹컹 짖을 때면 입에서 거품같은 게 보였다.

나는 누렁이가 어느덧 무섭고 싫어서 평상 위에 올라가 가끔씩 넘겨다 보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누렁이가 사라진 건 그 즈음 이었다.

조용하던 박씨 아저씨네 마당이 시끄러워졌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해피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해피가 목줄을 끊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미친 개’가 목줄을 끊고 도망을 쳤다고도 했고 어느 개장수가 와서 해피를 끌고 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모두 무서운 이야기였다.

해피가 사라지고 나는 해피를 생각 했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로 목줄을 끊고 도망을 친거야’? 아니면 ‘어떤 나쁜 개 도둑이 해피를 데리고 간걸까?’

나는 심란했지만 해피의 행방을 알 수는 없었다. 아빠는 우리가 학교를 가려고 나서면 동네에서 '미친 개'를 만날 수 있으니 '미친 개'를 만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우선 개가 달려오면 '등을 보이면 안된다', '우산이나 가방을 던져라'라는 등의 이야기를 주억거리면서 정말로 미친 개가 나타나면 그렇게 해야 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떨었다.

박씨 아저씨네 해피는 미쳐서 도망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난 것 같았다.

우리가 미친 개 퇴치법을 익히고 골목길을 다니면서 조심했지만 영영 '해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깜쪽 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곤 모두 해피를 잊었다.

해피가 있던 현관 옆 쪽문에는 더러운 밥그릇이 굴러다닐 뿐이었다.

나는 내심 '해피'의 탈출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봐도 해피의 탈출은 (탈출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멋진 일 같다. 평생 묶인 채로 사느니 그 편이 낫지. 가끔 해피가 생각나면 그렇게 위로하면서 해피를 잊으려 했다.

그 단단한 목줄을 끊어낼 만큼 힘들었던 걸까? 죽을 만큼의 힘으로 목줄을 끊어냈다면 대체 얼마나 자유롭고 싶었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해피'가 종적을 감춘 것은 다행스런 일인지도 몰랐다.

며칠의 소란이 끝나자 동네는 다시 조용해 졌다. 박가네 아저씨네 마당에 그런 개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박가네 아저씨네에 또 다른 강아지가 한 마리가 등장했다. 박가네 아저씨가 어디선가 흰 진돗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이다. 듣자하니 암놈인데 새하얀 강아지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강아지인지 너무 보고 싶어 평상에 뛰어 올라가 보니 이번에 데려온 강아지는 지난번 해피보다 컸고 털은 눈처럼 하앴다. 멀리서 봐도 그 강아지는 진돗개처럼 생겼다. 어쩜 저렇게 하얐지? 이쁘게 생겼다. 그 아저씨는 이번에도 어디선가? 강아지를 데려왔고 우리 자매는 그 강아지를 백구라고 불렀다. 그냥 하얀 강아지라서 우리 마음대로 백구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구는 또 다시 현관 옆 쪽문 앞에 묶이게 되었다.

나는 너무 불안해서 어른들에게 물었다. ‘백구는 해피 보다는 큰데 저기가 좁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해보았지만 엄마나 아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건 박가네 아저씨의 일이지 우리 일은 아니었으니까....

백구는 덩치가 커서 그 자리는 좁아 보였다. 백구가 저렇게 묶여서 또 다시 해피처럼 사라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백구는 해피보다 좀더 조용하고 얌전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불러도 별반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내가 평상에 올라 '백구야' 라고 불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그 개는 '백구'가 아니었을테니까...그건 그냥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니까.

백구는 아무리 불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뻔히 쳐다만 보다가 자기 자리를 빙빙 돌고 제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내가 어른들에게 '백구, 저렇게 매일 앉아만 있어요. 강아지가 좀 이상해요. 안 움직여요. 하루 종일 엎드려 있는데 .....' 라고 말을 해도 그 말에 신경을 써주는 가족도 없었고 신경을 쓴 다고 해도 백구는 우리집 강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엇을 해볼 수도 없었다.

아빠는 짐짓 '강아지 이야기는 그만하라' 고 했고 그말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왠지 백구도 '해피'처럼 미친 개가 될까봐 두렵기 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빠가 박씨 아저씨네 백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백구가 죽어?’ ‘왜? 이렇게 갑자기 죽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백구가 어디 아팠던거야?' ‘병이 났대?’ ‘ 왜 그랬대?’ 나는 무수히 질문을 쏟아내었지만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백구는 사라졌고 그 후로 그 집엔 아무런 강아지도 오지 않았다.

백구는 그 집에 온 지 몇 개월도 안되어 죽고만 것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배우 배정남씨의 도베르만 강아지 벨이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랑하는 우리딸 벨이 하늘의 별이 됐다'는 짧은 제목이 달린 기사였다. 나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뉴스였기에 꼼꼼히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간간히 TV에서 벨이 목디스크 수술을 하고 전신 마비의 위기를 극복하였다는 것과 이후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벨과 1년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재활치료를 함께한 배정남 배우의 헌신적인 재활치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해 온 벨이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이 먹먹했다. 나도 막 2살이 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강아지와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벨의 재활과 치료과정 동안 배정남 배우가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가족의 사랑 그 자체였기에 벨의 죽음은 나에게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니 배우 배정남 씨가 벨을 떠나보낸 심정이 오죽할까?


나도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개를 키우는 건 개인의 취향 정도라며 가볍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포비는 우리의 가족이고 나는 포비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돌보고 사랑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 배정남씨가 벨의 죽음 앞에서 목놓아 우는 모습이 방송으로 비춰졌다. 그의 슬픔이 전해졌다. 가족의 죽음 앞에 아파하는 한 사람으로 보였고 그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작은 강아지 포비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방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꼬리를 살랑살랑 거린다. 나의 글쓰기가 끝나면 놀자는 태세다. 하지만 지금은 보호자가 바쁘니 인내심 있게 기다리겠다는 자세같다.

가만히 앉아 턱을 괴고 있다. 졸 듯 말 듯 앉아 있는 포비 녀석이 갑자기 고무공처럼 튀어오르네....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포비는 흥겨움을 담아 뱅글뱅글 돌면서 반가움의 춤을 추려고 준비를 한 것이다. 매일 만나도 그렇게 좋니?

포비가 우리 가족이 된 후 퇴근 시간엔 그야말로 반가움의 댄스가 펼쳐진다. 가족이 왔으니 행복하다는 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포비에게 우리는 정말 특별한 존재 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렇게 환영하고 환대해주는 포비가 있어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 된다.

어린 시절 담 너머로 바라보던 해피와 백구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언어로 말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5m 목줄에 묶여 빙글빙글 돌던 그 몸짓이, 현관 앞에 엎드려 있던 그 침묵이, 어쩌면 나를 향한 간절한 외침이었을지도. 지금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기다리는 포비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그때의 해피에게 미안하다고, 백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된 벨에게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끝까지 싸웠던 너의 용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안다고.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라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포비에게 말한다.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자유롭게 뛰어놀 권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라고.

포비가 다시 한 번 뱅글뱅글 돈다. 주차장에 남편의 차가 도착한 것 같다.

아마도 아빠의 나타나면 온몸으로 행복을 표현하겠지? 포비의 움직임은 사랑의 몸짓이다.

‘아빠 다녀 오셨어요? 전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솜뭉치 같은 포비가 발재간을 한다. 사랑스런 생명체...우리에게 와 줘서 감사해.

.

나도 온 몸으로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만나 행복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펄쩍 펄쩍 뛰어올라 너를 향해 말해 주고 싶다. ‘사랑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신입생 모집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