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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May 08. 2019

[크리스 조던展] 아름다움 너머의 관찰과 기록

[보배03]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Chris Jordan: Intorlerable Beauty)

성곡미술관

2019.2.22.-2019.5.5.   


 크리스 조던은 배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찬 알바트로스 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나 또한 작가를 몰랐던 때 알바트로스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사진은 내가 하루에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또 그 사실에 얼마나 둔감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전시 소식을 듣고 알바트로스 사진을 보러 꼭 가고 싶어 전시가 끝나기 이틀 전에 짬을 내어 다녀왔다. 알바트로스 외에도 다양한 사진, 영상 작품들이 있었다. 개별 작품마다 주제가 뚜렷했고 전시 전반의 메시지도 뚜렷했다. 언뜻 보기에 크리스 조던의 작품은 익숙하고, 보기에 편하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고 또 제목을 읽으면 아름다움 너머 작가의 치열한 작업 정신과 현대 세계의 실상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2006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숫자를 따라서>를 보자. 이 시리즈는 다시 <미국인의 자화상>, <대중문화의 초상> 두 개의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이 작품들은 현대인들의 소비 실상을 각각 미국 통계자료와 전세계젹 통계에 나타난 수치 만큼의 작은 이미지들로 구성된다. <바비 인형>은 32,000개의 바비 인형으로 여성의 유방을 표현했다. 이 숫자는 2006년 기준 미국에서 매월 시행되는 유방확대술의 횟수와 같다.

 전시에서 가장 처음 마주친 작품이 이 작품이었는데, 처음에는 가까이에서 바비 인형들을 관찰하다 뒤로 물러서자 보이는 가슴의 형상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진 조각을 붙여 만들었지만 굉장히 회화적이다.

Chris Jordan, <Barbie Dolls>, 2008

 아예 명화를 차용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캡 쇠라>는 40만개의 페트병 뚜껑으로 표현한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이다. 이 숫자는 미국에서 1분마다 소비되는 페트병 수와 같다. 이 외에도 비닐봉지, 플라스틱 생수병, 일회용 숟가락, 담배 라이터, 일회용 플라스틱 컵, 꿀벌 등을 통계에 입각하여 수백만 개씩 붙여 작품을 만듦었다. 관람자는 전 세계 해양 1평방 마일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의 예상 개수, 안전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는 세계 인구,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소비되는 비닐봉투의 추정치, 매일 미국에서 농약으로 죽는 새의 수, 인간이 화석 연료로 매초마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예상 파운드 수 등을 시각적으로 마주한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자각과 성찰로 이어진다.

 그리고 필자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드웨이> 시리즈.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는 작가가 태평양의 섬 ‘미드웨이’에서 하늘을 날지 못하고 죽은 알바트로스들의 배를 갈라 찍은 사진이다. 배 속에는 미세 플라스틱들이 가득 차 있다. 배를 가르기 전, 날개를 늘어뜨린 채 죽은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담은 <전조>, 알바트로스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 등 작가는 알바트로스를 통해 섬과 주변의 바다 생태계가 죽어가는 모습을 꾸밈 없이 보여 준다.

Chris Jordan, Midway: Messege from the Gyre, 2009-현재

 다시 한 번 예술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뜻 보기에 예술은 비생산적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영역같다. 그러나 어떤 분야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로 인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두 주자가 예술이 아닐까.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는 지구 환경에 대해 객관적으로 고발함으로써 관람객들 스스로 본인과 환경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그물망처럼 얽힌 생태계이기에 각자의 삶의 자리를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너머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앞으로 만들어 갈 너머의 것들도 인간의 산물일 것이기에 이제 우리는 어떻게 상보적, 생태적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자이어Gyre: 북태평양 환류. 현재는 이 환류에 의해 모여든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거대한 섬을 이룬 '태평양 플라스틱 섬'의 별칭으로 자주 쓰임. (출처: <크리스 조던:아름다움 너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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