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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Aug 23. 2020

무의식적 욕망의 세계,  꿈의 세계를 그리다

[새무 10]

현실도 꿈처럼 재미있는 일만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꿈속에서는 하늘을 날기도 하고, 거대한 괴물을 무찌르기도 하며,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꿈에 관심이 많았다. 기이한 꿈을 꾼 사람들은 그 꿈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걱정이나 기대를 하며 해몽을 찾아보기도 하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각자 태몽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예지몽을 꾼다고 한다. 이처럼 꿈은 실제의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이다. 


꿈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은 소설이나 미술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과연 꿈은 왜 꾸는 것이며, 꿈이란 무엇일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가 바로 꿈이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꿈 연구를 하며 꿈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미술가들이 있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 미술사조를 초현실주의라고 한다. 그래서 ‘초현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시계가 흘러내리는 그림이 떠오르곤 한다. 초현실주의 그림들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마치 꿈의 세계처럼. 그러나 꿈의 세계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점은 초현실=비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현실은 비현실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꿈의 표상은 현실에서 좌절된 무의식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꿈은 무의식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 무의식의 세계는 인간의 의식이라는 가면이 벗겨진, 보다 순수한 내면의 모습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현실보다 무의식의 세계, 즉 초현실의 세계에 집착한 것은 무의식의 세계야말로 현실의 가식이 제거된 본래의 모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를 만든 앙드레 브르통은 현실을 지배하는 모든 이성적인 관습이나 도덕을 붕괴시키고 인간의 욕망이 자유롭게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사회의 합리적 논리에 반기를 들고 인간 의식의 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초현실주의 예술이다. 이 글에서는 초현실주의의 여러 특징 중에서 무의식에 대한 탐구에 초점을 맞추어 그림을 보겠다. 


 그동안 억압되어 온 본능적인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면 에로스적이거나 원시적이기도 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광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남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에서는 여성들이 욕망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앙드레 마송,  <에로틱한 영역>, 1939

앙드레 마송(Andre Masson)의 <에로틱한 영역>은 대지와 일체가 된 누워있는 여성의 몸을 탐험하는 남성을 보여준다. 여성=자연, 남성=문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따르면 이것은 문명이 자연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즉, 남성이 여성을 탐험과 소유, 착취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다. 한편 남성이 탐험을 위해 들어가려고 하는 여성의 성기가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의 성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과 동시에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폴 델보,  <도시의 입구>, 1940

폴 델보(Paul Delvaux)의 <도시의 입구>는 고대 신전이 있는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공간에 몽환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몽롱한 표정으로 고대의 도시를 유영하는데, 머리에 꽃이나 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실의 여성은 아니다. 이 여성들은 자연과 동일시되는 존재이거나 신화적인 존재일 것이다. 신화 속에는 ‘뮤즈’라는 여신이 등장하는데, 뮤즈는 오늘날 주로 남성들에게 영감이 되는 여성들을 의미한다. 한편 이 그림에는 고대 신전과 어울리지 않는 의상을 한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모두 남성으로 그려졌다. 왼쪽 하단의 있는 남성은 상의를 탈의하기는 했지만 분명 양복을 입고 신문을 읽고 있다. 또 뒷모습을 한 서있는 남성도 양복 차림을 하고 신문을 읽고 있다. 이 그림 또한 여성은 자연적, 비현실적인 존재이자 고대의 비문명적인 존재로, 남성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중산층의 신사로 그리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  (좌)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 1936 / (우)불타는 기린, 1936-37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는 고전적 조각인 ‘밀로의 비너스’의 이곳저곳에 서랍이 달려 있다. 달리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달리는 무의식적인 마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열 수 있는 비밀 서랍이 있는 것에 비유했다. 즉, ‘인간의 몸은 정신분석에 의해서만 열 수 있는 비밀 서랍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서랍은 열고 닫을 수 있고, 안을 들여다보거나 안에 물건을 넣었다 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비너스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관능적인 존재였다. 비너스의 서랍에는 과연 어떤 욕망이 들어있을까.


서랍이 달린 모티프는 <불타는 기린>에도 등장한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서랍이 달린 여성들의 이미지는 기괴하다. 여성의 얼굴은 표정이 없이 몰개성적이며 특징이 없다. 이들은 악몽 같은 무력감, 죽음, 파괴를 의미한다. 뒤에 작게 불타고 있는 기린은  달리의 말에 의하면 ‘남성적인 우주 종말론적 괴물’로 전쟁의 예감을 의미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 속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 미술가들의 정신적 해방을 구현하기 위해 소재로 사용되고 대상화되었다. 여성은 문명을 상징하는 남성이 탐험을 하는 자연이나 대지가 되기도 하며 남성을 위협하는 그로테스크한 존재로 등장하였다. 그렇다면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그린 여성의 모습은 어떻게 등장할까?


캐링턴, <자화상>, 1936-37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은 영국의 화가로 고전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자화상>은 현실에 없을 법한 기이한 동물을 주술적으로 보이는 강력한 자신을 그렸다. 그가 있는 공간은 목마가 공중에 떠 있는 것으로 보아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창문에는 목마와 비슷하게 생긴 하얀 말이 뛰놀고 있다. 이를 보아 창문은 현실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창문이 만일 ‘그림’이라면 이것 역시 비현실의 공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레오노르 피니, <세계의 끝>, 1949

레오노르 피니(Leonor Fini)는 아르헨티나의 작가로 초현실주의의 조형성은 수용하였지만 지나치게 남성중심주의였던 초현실주의 미학에는 반대했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해방 이론은 여성을 배제한 해방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린 <세계의 끝>은 작가 자신과 닮은 여성이 동물의 사체와 함께 늪에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수면에 비친 어두운 그림자는 알 수 없는 신비롭고 다소 두려운 느낌을 준다. 그는 비현실적인 공간 속의 여성이 내면에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로, 고고학적인 존재로 그렸다. 


도로시아 태닝, <생일>, 1942 / <소야곡>, 1944 / <친구의 방>, 1950-52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의 그림에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또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 자주 등장한다. ‘문’이라는 소재는 초현실 즉, 자신의 무의식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적인 존재와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화면에 공존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어린 소녀들은 어떠한 상황 때문에 화가 나 있거나 두려움, 혐오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알 수 없는 낯선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존재를 만나 당혹스러운 소녀들을 주로 그린 태닝의 그림은 소재적인 부분에서 기존의 남성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다르다. 


레메디오스 바로, <다시 태어남>, 1960

마지막으로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는 신비주의와 점성술, 연금술 등에 관심이 많았다. <다시 태어남>에서는 한 신비로운 여성이 벽을 찢고 등장한다. 벽을 찢고 나오는 것은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의식적인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잔에는 달이 비추고 있다. 이 달이 떠있는 물 잔은 이 여성을 이끈 힘일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은 작가 자신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전통적이고 현실적인 구속에서 해방되어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해방과 회복이다. 꿈을 통해 드러나는 무의식인 이성적인 의식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보고이다. 남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그동안 억압되어 온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특히 에로스적 욕망을 자각하며 표출했다. 그로 인해 여성은 남성 작가들의 해방을 위한 소재로 전락하기도 했다. 반면 여성 작가들은 기존의 초현실주의 미학을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풀어내거나 재해석하였다.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본인 스스로의 모습을 신비롭고 힘을 가진 존대로 그린 경우가 많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남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에 대적하여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남성을 대상화한 그림을 찾기가 어려운 점이 흥미롭다. 이들은 그림을 통해 현실적인 공간과 비현실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더 깊고 넓은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끝없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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