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미12]
최근 필자의 머릿속을 어지럽힌 생각은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해 100억이 넘는 가치를 가진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을 보며 점점 더 짙어지는 예술의 상업성에 거북함을 느끼는 동시에 대중들에게 가까워진 현대 미술의 모습을 보면 이를 부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지고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현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9세기 말부터 서서히 붕괴되던 재현의 원리가 사라지고 난 후 작가 스스로가 예술성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예술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겪은 뒤 예술은 국가적인 정치적 움직임과 자본주의 시대의 상업적인 움직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순수하고 우리 사회와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현대 미술의 중심인 미국,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 모두 현대 정치와 시장 원리와 맥을 같이한다. 본고에서는 영상에서 나온 예술의 정치성과 상업성을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이라는 현대 미술의 아이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나가고자 한다.
예술과 정치,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잭슨 폴록
잭슨 폴록은 가장 미국적인 현대 미술가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가지게 된 이유를 조금 쉽게 말하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잭슨 폴록의 등장은 뉴욕이 파리를 제치고 예술의 중심지가 된 과정 속에 있다. 특히 뉴욕의 현대미술의 정점인 뉴욕 현대미술관의 위상과 밀접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유럽의 현대 회화를 소개하기 위한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설립된 이후 1939~40년 대규모 피카소 회고전을 통해 뉴욕 현대미술관은 국제적으로 위상을 드높였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미국 현대 미술가는 없었다.
이처럼 미국 예술계는 유럽의 아류라는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폴록의 이미지와 대표 기법을 담은 작품은 미국적인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위의 작품 <NO.1>에서 볼 수 있듯이 서부의 개척자들처럼 광활한 자연을 누비듯 펼쳐지는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전통적인 유럽 미술과의 단절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정한 미국 미술의 탄생을 의미했다. 또한 이러한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당대 국민 배우 말론 브란도를 연상시키는 남성성이 강한 마초적 이미지를 가졌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이후 폴록은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정부의 후원 속에 수차례에 걸친 유럽 순회 전시를 개최하 며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게 되었고 그가 활동하는 뉴욕은 비로소 진정한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폴록이 등장한 서사를 바라보며, 과연 폴록이 조금 더 일찍 태어났거나 조금 더 후에 태어났어도 지금처럼 대가가 되어있을까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그 답은‘아니오.’일 것이다. 물론 전근대에도 시대와 사조를 대표하는 천재가 있었고 그들의 명성에는 종교 또는 가문 나아가 왕조가 지금의 국가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나라 안 또는 이웃 나라 정도에 명성을 떨치는 것이었지 지금처럼 세계적인 예술가의 탄생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된 미국과 이러한 미국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의 필요성이 만들어낸 폴록을 단지 개인의 천재성이 아닌 현실 정치와 예술이 맞닿아 나은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보다 현대 미술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미술에 있어 뉴욕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미술이 여전히 중심을 이루고 그 이외에 동양, 제3세계는 주변부에 머물러있다. 예술 안에서의 정치는 현실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만큼, 어쩌면 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이지만 비주류인 한국인이라서, 아프리카인이라서 조명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맥락에서 탄생한 현대 예술들을 조금은 더 경계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예술과 상업, 팝아트의 아이콘 CEO 앤디 워홀
세계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뉴욕의 예술 경매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이 뭘까 생각한다면 두 말 없이 팝아트의 아이콘 앤디 워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렌지 마를린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의 실크 스크린으로 유명한 앤디 워홀은 대중과 가까운 예술을 했다. 그는 일상생활, 소비자 문화를 비롯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호의 인식을 변형시킨 팝아트의 선두주자였다. 그리고 이번 영상을 통해 다양한 마케팅과 그 자신이 브랜드가 되어 상업적 가치를 드높인 워홀의 CEO적인 진가를 알게 되었다. 앤디 워홀 이후 더욱더 두드러지고 있는 예술의 상업화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는 핫도그, 케찹,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소비재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고 나아가 팩토리라는 공장식 대량생산 작업실에서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예술품을 만들었다. 너무나 진부하고 세속적이어서 오히려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품들로 정통 화단에 이름을 알리며 상업 예술가의 한계에서 벗어났다. 그는 이 시기 현대 미술의 이단아로서 숱한 화제를 이끌어내고 그러한 이슈와 스포트라이트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예술에서는 소외된 상업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가 남긴 업적은 뚜렷했다. 평범한 것들로 특별한 것을 만들고, 특별하게 보이게 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던 순수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물었다. 하지만 현재 예술시장이 어떠한가? 영상 초반에도 나왔지만 하나의 저축과 투자의 개념으로 예술을 바라보며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함의보다는 자신의 개성과 어울리는 작품,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작품 등 0의 개수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고 있진 않은가 돌아봐야 할 때이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유의미한 현대 예술가들은 예술적 재능과 상업적인 계산이 점철된 제프 쿤스 같은 작가만이 남았다. 또한 대형 갤러리들도 또 다른 스타작가를 만들기 위해 어린 미대생들을 마치 엔터테이너처럼 전속시켜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묻고 싶다. 0의 개수가 상관없는 순수 예술이 앞으로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상업성과 동떨어지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는 작품들이 점점 갈 곳을 잃지는 않는지 말이다. 실제로 현재 대중들은 미술 시장에서 백억을 호가하는 유명 작가가 아니면 관심을 가지지 않고 현대 미술을 단순히 어렵고 난해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상업성이 예술의 절대적인 가치척도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앤디 워홀과 같이 획기적이고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나갈 시대의 아이콘을 만나기 위해 예술의 상업성이 아닌 또 다른 의미에 집중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현 시대의 예술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크게 정치와 상업을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세계가 하나가 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예술은 멀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술이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과 같은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유명 작가들을 무비판적으로 단지 유명해서, 작품이 비싸다는 것에 집중해 그들의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습이 과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소외되는 다른 작품들과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예술성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다양한 예술을 즐기고, 예술이 예술로서 조금은 현실과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길 바라는 애호가의 입장에서 본고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예술가들의 위치에서 부터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전하고 싶다. 우리의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과 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반세기 또는 한 세기 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본고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