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앙데팡당X아트렉처/수풀]
아담과 하와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아마 기독교를 믿지 않더라도 그들과 그들의 탄생 신화는 예수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성경에서 신은 7일 만에 세상을 만들어 낸 후, 그 세계를 관리하는 자로서 그와 닮은 아담을 흙으로부터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담에게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본 신은 그의 갈비뼈로부터 최초의 여성인 하와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인간 탄생의 순간에서도 미술의 원리를 통해 해석할 여지가 숨어져 있다. 바로 조형 미술의 한 부문인 조소의 원리이다.
“Yahweh God formed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신이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어,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
-창세기 2장 7절
조소란 3차원의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조형 예술로 조각과 소조를 합한 말이다. 조각은 나무나 돌, 상아처럼 딱딱한 재료를 외부에서 내부로 깎아서 표현하는 반면, 소조는 흙이나 밀랍 같이 가소성 있는 재료를 내부에서 외부로 붙여서 표현한다. 다시금 아담과 하와의 탄생을 되짚어 보자. 아담은 가소성 있는 재료인 흙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 즉 딱딱한 재료로부터 그 탄생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는 그 재료에서부터 소조와 조각 작품으로서의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먼저 아담은 소조 작품으로서 어떤 과정을 걸쳐 제작되었을까?
소조 작품은 우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성경에서는 신이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였다고 하니, 아마 신의 관찰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 대상을 잘 관찰 후, 재료를 덧붙이기 위한 뼈대를 세운다. 신이 아담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뼈대의 재료는 알 수 없으나, 인간 세상에서 소조 작품을 만들 때에는 주로 나무나 철사 등을 사용한다. 그 후 뼈대 위에 찰흙을 붙여 대강의 형태를 잡는다. 그 후, 모델의 크기와 비슷하게 기본형을 만들어 눈, 코, 입 등의 위치를 그려 넣는다. 그다음 세부적인 형태를 잡은 후 그 형태의 양감과 질감을 표현하면 소조 작품이 완성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조 중에서도 사방에서 감상이 가능한 환조 작품으로서의 아담이 탄생한 것이다.
반면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각은 딱딱한 재료를 외부에서 내부로 깎아서 표현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하와의 탄생의 조각의 방식과 그 결을 같이 한다. 하와 역시 아담과 마찬가지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탄생이 시작한다. 따라서 하와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신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충분한 관찰이 이루어졌다면, 그를 바탕으로 재료의 사방에 스케치를 해 놓는다. 이에 맞추어 재료를 큰 덩어리를 깎아낸 후, 대략적으로 그 형태와 비례를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세부적인 형태를 표현하면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감상이 가능한 조각 작품이 완성된다.
아담과 하와가 조형 예술의 과정으로부터 만들어진 것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들의 탄생 과정 자체가 그들의 삶과 연관이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하다. 뼈대에 흙을 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아담 그 스스로도 삶에서 더함(+)을 행한다.
…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What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creature became its name.
그래서 신은 그가 만든 동물들과 새를 남자에게 데려가 그가 그들을 어떻게 이름 짓는지 보았다.
남자가 각각의 생물들을 이름 붙이는 그대로 그것은 생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창세기 2장 20절
가령 아담은 만들어낸 모든 생물의 이름을 붙인다. 아담이 이름을 붙임으로써 존재에 그쳤던 에덴동산의 생물들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아담은 에덴동산의 생물뿐만 아니라 그의 동반자인 여자에게도 이름을 붙인다. 그 이름이 바로 하와 (혹은 이브)이며, 이는 히브리어로 생명을 의미한다. 그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그가 더해짐(+)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그는 타인의 삶에 무언가를 더하는 형식으로 영향을 끼친다.
The man called his wife Eve
because she would be the mother of all the living.
남자는 그의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지었다.
그가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어머니였기에.
-창세기 3장 20절
반면 하와의 삶에서는 조각과 마찬가지로 제거, 혹은 덜어냄의 과정이 나타난다. 하와가 세상 모든 존재의 “어머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아담의 파트너이기 앞서,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그의 삶에서 출산은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 반드시 출산을 통해서만 여성이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성경이 편찬된 시기를 감안해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하와는 한 때는 그의 일부로서 존재했던 아이를 자신의 몸속에서 빼내는, 즉 출산의 과정을 통해서만 그 존재의 의미가 완성된다. 또한 이는 그의 존재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완결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경에서 그는 자식인 카인과 아벨을 낳은 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아담은 카인과 아벨이 탄생 후에도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는 (창세기 5장 5절), 즉 그 개인의 삶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어머니로서 역할을 다한 하와는 성경에서 그 존재가 완결된다.
그러나 탄생의 방식이 어떤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서 이를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SF 소설가 어슐러 k. 르 귄 (Ursula K. Le Guin)의 단편 소설 「She unnames them」에서는 아담이 선언한 하와라는 이름을 거부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여자는 자기 이름에 수반된 의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써 자신이 선택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응당 주어진 방향 혹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기대되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결국 그 삶의 마무리는 오직 당사자의 몫인 듯하다. 성경에서조차 우리는 하와의 남은 삶이 어떠했을지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어슐러 k. 르 귄이 써 내려간 이야기처럼 그도 종내엔 그가 바라지 않았던 의무에서부터 벗어났을 수도 있다. 적히지 않은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도 상상될 수 있기에.
참고
성경 인용: World English Bible https://ebible.org/web/GEN01.htm
인용된 성경은 저작권의 문제로 한글 번역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영어 성경을 인용한 후 자체적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