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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ul 08. 2021

모험을 떠나는 이들에게(1)_
헤르난 바스

[오리 8]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모험가의 용기를 동경하고, 그의 무용담에는 일상에 없는 활기가 있다. 제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모험은 이렇듯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행위이다. 하지만 모험의 초행길에 오른 자에게 대체로 모험은 걱정스럽고, 위태롭다. 정확한 경로를 알 수 없는 여정은 더더욱 그렇다. 불안, 방황, 권태, 두려움, 육체적 피로가 계속되는 모험에 능숙해질 수 있을까?




 스페이스 K에서 열린 헤르난 바스 개인전 [모험, 나의 선택]은 모험의 모든 순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은 막 모험을 떠나는 소년이 될 수도, 휘몰아치는 바다를 호기롭게 바라보는 청년이 될 수도 있다. 전시의 제목은 1980-199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책 시리즈의 제목에서 따왔다. 이 책은 독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되는 독특한 구조를 지녔다고 하는데, 선택에 따라 모험의 결말도 달라진다. 바스가 어린 시절 관심을 가지고 봤던 시리즈인 만큼 그가 그려내는 세계와 닮은 지점이 많다. 기묘한 것, 미지의 것, 유령이나 괴물, 바다, 신화, 종교, 고전 등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소품과 세밀한 배경 묘사로 완성되는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무한한 서사 구조를 구축한다. 관객은 그가 만들어 둔 거대한 모험의 판에서 바스의 모험 스토리를 동반자 삼아, 자신의 기억 속으로, 그리고 새로운 상상의 공간으로 모험을 떠난다. 


 (모험이랄 것이 없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두려움과 설렘을 만난 나는 전시장을 거닐며, 어린 모험가의 불안에 공감했고, 대담해진 모험가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으며,  그림이 품고 있는 모든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작품 속 공간은 대체로 낯설고,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음에도 소년의 내러티브에 공감하며 스스로를 기꺼이 서사 속에 대입시켰다. 아마 모험은 삶의 순간과 닮았고, 그의 이야기가 보편화될 수 있는 인간의 고뇌와 감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소년의 아우라는 무의식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자극시켜 또 다른 모험을 이끌어낸다.)



 

 헤르난 바스의 2010년 전후 작품을 보면, 풍경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흐트러져 있는 경우가 있다. <The lay of the land>에선 높이 세워져 있는 전봇대만이 형세를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표다. 전봇대가 있다는 건, 일상의 장소이거나 혹은 그것과 익숙하게 닮은 장소일 터이다. 그런 장소를 마치 태풍의 눈 속에서 보는 듯이 어지러이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모험은 낯선 곳에 도착해야만 시작되지 않는다. 걱정과 불안이 여정을 덮친다면, 이미 모험은 시작된 것이고, 그 끝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광활한 땅 위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선택해야 하는 소년에겐 아름다운 풍경도 넘어야 할 산이자 위험이다. 다시 돌아갈 수도, 모험을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The lay of The Land, 2009

  아래 두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은 무기력하고, 한없이 위축되어있다.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의 다른 구성 요소와 달리 소년만이 소외되어 겉돈다. 그의 불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시선이다. 자신과 닮은 것 하나 없는 공간 속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 끝엔 특정한 대상이 없다.  모험에는 보통 '목표'가 있고, 스스로 정복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렇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의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떠나야 하기에 떠나왔고, 누군가에 의해 내몰려 떠나왔는데, 도통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인가?'


 성장의 과정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내몰리듯 시작되고, 개인을 규정하는 수많은 기준에 대하여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도록 요구받는다. 하지만 개인은 돌이라기보다 물컹한 찰흙에 가깝다. 그렇기에 한번 깎아 형태를 만든다고 해서 변형 혹은 복원의 가능성을 잃지 않는다. 다양한 형태로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찰흙은 A에서 B로, B에서 F로, 그리고 F에서 다시 A로 모양을 바꾸어 돌아가기도 한다. 설령 일생의 대부분을 A+B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이 한 개인의 모든 것을 정의할 수 없으며, 자신이 A+B라는 것을 알아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헤르난 바스가 쿠바계 성소수자로서 미국에서 성장하고,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임을 고려해본다면, 두 그림에서 소년들이 떠난 모험은 흥미진진한 모험이라기보단, 고립감과 두려움이 가득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게임과도 같지 않았을까.   


  <A Landscape to Swallow You Whole(너의 전체를 집어삼킬 풍경)>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아래 그림 속 풍경은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다. 홀로 떨어진 소년은 어지러운 풍경 저 너머로 향해야 할 것인데,  망설임만 가득하다. '저 끝엔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발걸음을 옮기게 하기엔 아직 소년은 어리고, 밤은 어둡기만 하다.

A Landscape to Swallow You Whole, 2011 

   헤르난 바스의 작품에선 플라밍고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의 성장 배경과 더불어 플라밍고가 의미하는 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플로리다는 미국 내 플라밍고 서식지로 알려져 있고, 플라밍고는 동성애를 하는 대표적인 동물들 중 하나로 퀴어 축제의 상징물로 자주 등장한다.* 아래의 그림 속에서 소년은 수많은 플라밍고들 속에 있다. 소년은 고립된 것일까? 아니면 무리 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플라밍고에 포옥 둘러싸여 안정감을 느끼고 있을까?

In The Company of Gentlemen, 2010

  해를 거듭할수록 헤르난 바스의 풍경은 더욱 기묘하지만 선명해지고, 다양한 오브제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더욱 층층이 쌓인 서사 속에서 소년들은 자신의 모험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풍경 속에 파묻혀 있던 소년들은 화면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관객을 응시하거나 보다 뚜렷한 방향성을 지니고 무언가를 바라본다.  2007년 초기 작품에서는 모험으로 짊어지게 되는 불안과 혼란, 두려움이 지배적이었다면, 2010년대 중반부터는 모험이 선사하는 황홀함과 성취감, 그리고 오히려 판을 주도하는 소년의 대담함이 그것들을 압도한다. 

 <팝콘 목걸이(The Necklace)>에서는 힘차게 날아오는 갈매기 떼로부터 바닷새 특유의 자유롭고 빠른 속도감과 그들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결을 느낄 수 있다. 타는 듯한 노을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한 폭의 장대한 풍경을 빚어낸다. 관객들에겐 매우 낯설고, 환상적이기만 한 이 풍경은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그런 공간이다. 하지만 소년은 이런 풍경이 익숙하다는 듯, 동적인 풍경과 새들을 배경으로 삼은 채, 나무에 무심히 기대어있다. 길게 엮어진 팝콘 목걸이는 서있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액세서리지만, 오히려 소년만의 무언가를 당당히 내어놓음으로써 공간의 정복자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이기도하다. 

The Popcorn Necklace 2020

 <분홍색 플라스틱 미끼들(Pink Plastic Lures(2016))> 속 남자는 녹슨 분홍색 캐딜락**에 기대어 모조품 플라밍고 사이를 유유히 걷는 '진짜 플라밍고'를 관찰한다. 배경이 되는 곳은 플로리다인데, 흔히 떠올리는 플로리다의 여유로움과 따사로움은 사라지고 없다. 부서진 가구와 철망, 더 이상 가동되지 않을 자동차, 모두 비슷한 모양새와 빛깔을 가진 플라스틱 플라밍고가 가득한 마당에서 플라밍고만이 유일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남자는 플라밍고에 매료되어 손에 쥐고 있던 것마저 놓치고 있다.  살아있는 것과 그것을 모방한 모조품이 같이 있는 공간은 인간이 자연과 살아가는 세계 그 자체를 은유하고 있다.*** 이 남자의 모험자적 기질은 공간에 씌워진 환상을 벗겨내 그 진상 속에 거침없이 녹아든다는 것이며, 폐허 속에서도 스스로를 충족시켜줄 무언가를 찾아내 몰입한다는 점일 것이다. 모험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는 모험자 본인에게 달려있다. 

과연 당신은 모험의 여정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Pink Plastic Lures>, 2016 

 아래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신작 중 하나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노인은 상어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상어와 긴 겨루기를 이어나간다. 이 청년은 <노인과 바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어린 소년이 성장한 것으로, 노인과는 달리 그렇게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상어를 제압한 듯 보인다. 패기 가득한 소년은 지친 기색도 없고, 매섭게 몰아치는 파도에도 겁먹지 않는다.  소년은 다음 항해지를 고민하는 듯 먼바다를 의연하게 응시하고 있다.

The Young Man & The Sea, 2020

  헤르난 바스는 모험 서사라는 큰 틀 안에서 자신이 애정을 가지는 대상, 이를테면 미국의 역사와 문화, 괴물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관객은 헤르난 바스의 작품에서 헤르난 바스식의 모험을 경험하고, 동시에 관객 본인이 만들어갈 모험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도, 그 속에서 숨 쉬는 모든 존재를 파악할 수도 없기에 위험천만 하지만 매력적인 모험담의 배경이다. 바다 위에선 어떠한 억압 없이, 햇빛만을 동반자 삼아 나아갈 수 있고, 그것이 내어주는 광활함과 아름다움은 모험자를 위로한다. 헤르난 바스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바다가 되어주며, 관객을 항해자로 만든다. 시작은 목적지 없이 헤매는 초보 모험자 일지 모르지만, 더 재밌는 것을 시도하도록 자극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관객은 어느새 대담한 모험자가 될 것이고, 자신을 성장시킬 모험의 판을 짜는 주체가 될 지도 모른다. 



*헤르난 바스 '모험, 나의 선택전' 도록, 스페이스k, 이장욱, p.5.

**위의 책, 애나 스토사트, p.11. / 부서진 캐딜락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 혹은 실패'를 의미한다. 

*** 애나 스토사트는 이를 두고 산업화와 세계화의 결과로 풍경이 인간 거주자와 경합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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