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 07]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현대 불교미술전 : 공’에 다녀왔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던 장소로, 천주교의 성지이며 현재에도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당이다. 천주교 성지에서 열리는 현대 불교미술이라니!
이번 전시는 종교의 화합을 보여주는 세련된 표현이었다.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철학을 미술로 해석한 작품들과 최근에 보존 작업을 마친 '화엄사 영산화 괘불'을 만날 수 있었다. 괘불은 부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으로 주로 야외에서 열리는 불교 의식에 사용된다. '화엄사 영산화 괘불'도 야외에서 사용되었던 만큼 길이 약 11m로 2층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동근 얼굴과 어깨의 석가모니불과 사천왕과 보살님들이 은은한 녹색속에 마귀를 물리치는 손동작을 하며 앉아있다. 조선 효종 시대에 제작된 영산화 괘불은 불교 현대미술과 공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선 불교의 공 개념에 대해 설명하겠다.
공이란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에 고정 불변한 본래 성질이 없다는 불교의 근본 원리로,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을 떠올리게 했다. 마찬가지로 실존주의 철학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문장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에서 불교의 공 개념을 찾을 수 있었다. 철학에서 본질이란 어떤 것이 바로 그것일 수 있게 하는 성질이다. 예를 들어 우리 눈앞에 있는 세모 모양을 우리는 삼각형이라고 인식하는데, 세모가 삼각형일 수 있는 이유는 삼각형의 정의인 세 각의 합은 180도이다라는 삼각형의 본질을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 각의 합이 180도이지 않은 세모 모양도 삼각형으로 인식한다. 삼각형의 본질보다는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실존을 우선한 것이다.
불교의 공 개념도 유사하다. 어떠한 것의 본래적 성질이란 존재하지 않고 인연에 따라 성질이 잠시 정해진다는 개념이다. 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중론>에 따르면 "여러 인과 연이 다 갖추어져서 화합하면 비로소 사물이 생겨난다. 따라서 사물은 여러 인과 연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사물 자체에는 고정된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으로 공에 대해 설명한다. 이렇게 인연에 따라 결정되는 공을 노상균 작가의 <Particles on Horizen> 작품을 통해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커튼을 열어 캄캄한 공간에 들어가면 1분마다 그림을 향한 조명과 사운드가 바뀐다. 당시의 조명, 그림, 사운드의 인연이 변화하면 관람객과 <Particles over Horizen>의 인연도 변화하고, 따라서 작품에 대한 감상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환한 조명이 비췄을 때는 새파란 바다 같은 배경이 눈에 들어온다면, 조명이 꺼진 후에는 점들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맥락과 상황이 변하자 동일한 그림도 나에게 다른 물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실존 철학에 의하면 종교도 실존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본질을 설파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나를 초월하는 영적인 존재와 나와의 인연 속에서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작품에 담긴 정답의 해석, 본질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관람객이 누구인지, 작품을 감상하던 때의 시간, 공간, 그날 먹은 음식 등등에 인과 연에 다라 미술작품의 감상과 해석은 달라진다. 이러한 연유로 이번 전시는 본질에 우선하는 실존이란 무엇인지, 내가 맞닿뜨린 실존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참고문헌
중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