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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an 17. 2022

사랑에 관하여

[오리12]

 사랑 없이 살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지켜지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내 현실에는 사랑이 없었을지언정 윤슬 같은 사랑이 흘러넘치는 작품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오늘은 이 작품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고백해 보려 한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untitled(Portrait of Ross in L.A.>를 처음 봤을 때, 작품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있다. 직접 관람했거나 영상으로 본 것도 아니었다. 단행본에 실린 작은 작품 사진을 봤을 뿐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펠릭스에겐 연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스 레이콕(Ross Laycock, 1959-1991)으로 펠릭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에이즈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로스. 그런 로스를 곁에서 지켜본 펠릭스의 작품에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사랑, 그리고 죽음이 은유되었다. 로스는 죽음을 맞이했으나, 펠릭스의 작품에서 계속 살아 숨 쉬었다고 생각하니 이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기꺼이 눈물을 흘리고 싶어 진다. 

 펠릭스의 작품 중에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품은 <untitled(Portrait of Ross in L.A.)>일 것이다. 알록달록한 셀로판지로 포장된 사탕들은 밟기만 해도 행복한 기운이 솟을 것 같은 어느 꿈속의 산처럼 보인다. 동화의 환상이 실현된 듯한 이 사탕 더미의 무게는 175 파운드로 로스의 몸무게와 동일하다. 관람객들은 전시 기간 동안 자유롭게 사탕을 가져갈 수 있으며, 전시 운영자는 매일 다시금 175파운드의 사탕 더미를 채워야 한다.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은 관객들은 로스와 펠릭스의 사랑을 천천히 음미하고, 로스의 죽음을 애도하게 된다. 로스는 전시 기간 동안 무게를 잃어도 새로운 날이 밝으면 다시 제 모습을 찾고, 수많은 관객의 몸속에 살아 움직인다. 사탕을 잃은 셀로판지는 무척이나 가볍고 나약해지지만, 그 빛깔만은 잃지 않는다. 서로를 떠나보냈지만, 그들이 생전 빚었던 사랑만은 여전히 반짝거림을 유지하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1991, 출처 : THE FELIX GONZALEZ-TORRES  FOUNDATION

  이중섭의 편지화와 그림엽서도 내게 사랑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작년 어느 날 봤던 책에서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이중섭은 편지에서 줄곧 자신의 연인이자 아내였던  '남덕'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다.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남덕'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나의 귀여운, 나의 소중한 남덕'

[출처 : 『아트 비하인드』]


1954년 11월 10일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언제나 내 가슴 한가운데서 나를 따듯하게 해주는 나의 귀중하고 유일한 천사 남덕 군.

 건강하고? 아고리(이중섭)도 건강한 데다 제작이 더욱더 순조로워 쭉쭉 작품을 진행하고 있소. (중략)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멋진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고.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요.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 버린다오. 

[출처 : 해피 디자인 하우스 매거진 http://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005/4906 ]

  

 어여쁘고도 예쁜 사랑이 편지에서 흘러넘친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편지를 한 번도 아니고, 100장 이상을 써 보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생활하며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수차례 보낸 그림 편지 중 하나다.* 글에서 작가는 자신의 근황과 아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함께 그려진 그림이 참으로 희망차고 사랑스럽다. 두 아들과 아내의 모습, 작품을 열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 가족 4명이 둥글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작가의 글씨체와 편안히 어우러진다. 

 작가의 사랑은 아내뿐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를 관통하여 흐른다. 아래의 편지는 2015년 현대 화랑에서 열렸던 <이중섭의 사랑, 가족>에서 전시된 것으로 아들 태현에게 보냈던 편지다. 편지에는 건강, 날씨 등과 관련된 사사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그림과 설명은 이중섭이 감기를 앓았던 일,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돈을 더 많이 벌어 선물을 잔뜩 사 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고 좋아했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의 사랑은 노란빛일 터다. 따뜻하게 흘러내리는 노란 폭포수에 황금 가루가 두둥실 떠오르는 장면은 왠지 내가 이중섭의 사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혼자 떨어져 지내면서 외롭고 쓸쓸할 때도 많았겠지만,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만큼은 그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지 않았을까. 


출처: 현대화랑


 두 작품 모두 내가 사랑을 잊어갈 때 즈음 꺼내보는 작품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랑이 내게 다시금 사랑을 알려주면, 나는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이든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때로는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그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상기시켜보자. 사랑에 무뎌질 때면 찾게 되는 당신의 '사랑 선생님'은 무엇인가?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https://blog.hanabank.com/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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