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그리미, 새무, berry]
“전통시대의 마지막이자 현대의 시작, 매력적인 한국 근대미술을 비롯한 한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
2019년 7월 12일 느지막한 오후 E앙데팡당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 근대미술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김소연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인터뷰 장소에서의 첫 대화는 교수님의 책 소개로 시작되었다.
『한국 근대미술사』,『(국립중앙박물관)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내가 사랑한 미술관』총 3권의 책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미: 가볍게 책 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교수님: 『한국 근대미술사』는한국 근대미술을 공부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미술사 개론서예요. 대학원 수업교재로도 많이 쓰지요. 이 책 외에 여러분께 소개드리기에는 작품이 많이 수록된 책이 혹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 도록도 가져왔어요.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를 소개하시며) 올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전시가 열렸어요. 전통과 근대가 연결되어 있는 시대를 연구하는 제 전공과 딱 맞는 기획전시였죠. 저는 조선시대 이후,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을 때 화가들의 반응, 그러니까 무엇을 전통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변화해갔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대개 근대라고 하면 가장 ‘근대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고희동이 조선인으로서 처음 서양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했다는 사실을 근대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시작점으로 본다던지.. 우리는 현대적인 가치에 기준해 그 전근대를 서술하다 보니, 자꾸만 더 근대적이고 새로운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것 같아요. 근대기의 전근대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저는 좀 더 근대라는 시대의 진짜 모습에 가까이 접근해보고자 해 왔어요.
이번 <근대 서화> 전시에서도 어쩌면 ‘근대’와 ‘서화’라는 용어가 서로 안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제가 말씀드렸던 맥락으로 근대를 이해해본다면 그리 이질적인 개념은 아닐 거예요. 특히 올해는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근대미술 관련 전시가 많았어요. 사실 그동안 전통시대 미술의 마지막이자, 아니면 현대미술의 시작점이 되는 근대미술이 ‘끼어있는 시대 미술’로만 머물러 있는 게 아쉬웠죠.
마지막으로 준비한 책은 『내가 사랑한 미술관』이에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전시도록인데요, 출판되어 살 수 있는 책이에요. 한국 근대기의 대표적 미술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고, 동양화, 서양화, 조각을 모두 아우르고 있죠.
그리미: 『내가 사랑한 미술관』에서 교수님께서 특별히 좋아하시는 작가나 작품이 있으신 가요?
교수님: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요? 저는 근대기, 특히 여성화가들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거든요. 정찬영이나 백남순은 주목해 볼 만한 작가예요. 또 근대기 자수 미술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많은 여성작가들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근대기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화가, 이인성예요. 이 책에도 <카이유(kaiyu)>라는 작품이 수록되어있는데, 불투명한 수채물감을 사용해 그린 꽃정물화이죠. 저는 이 책에는 없지만 작가의 <해당화>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데,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요. 바닷가에 곱게 핀 해당화 옆에 소녀들을 그렸지요. 어떤 전시의 끝자락에서 이 작품을 직접 맞닥뜨렸을 때, 생각보다 훨씬 컸던 화면과 아름다운 색감에 한참이나 그 앞에 서있었던 생각이 나요.
아무래도 『내가 사랑한 미술관』은 한국 근대기에는 어떤 미술 작품들이 있을까?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미: 미술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교수님: 저는 본래 사학을 전공했어요. 당시에는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정보가 제게 전혀 없었어요. 고학년 때까지 미술사 수업도 수강해보지 못했고요. 오히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다 보니…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답니다. (일동 놀람) 우습죠? 연합동아리에서 열혈 활동을 했습니다. 견문을 넓히려 유학 준비도 하고,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어학연수 도다녀 오면서 제가 꿈꾸었던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 제가 졸업반이 됐을 때 IMF를 만났어요. (일동 탄식) 당시에는 유학을 갈 수 있던 형편이 아니었죠.. 이때 인생의 가장 쓴 고비를 맞았어요. 그런데 그때쯤 제가 계절학기로 ‘서양미술의 이해’라는 과목을 듣고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이상하게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외워지는 느낌?
그리미: 하.. 엄청난 양인데..
교수님: 그렇죠? 제게 그 오래된 수업 노트가 아직도 있어요. 그다음 학기, 졸업을 앞두고서는 ‘동양 미술의 이해’ 수업도 들었죠.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없어서, 학과 사무실에 가서 ‘미술사학과는 무얼 공부하는 과예요?’라고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물어봤죠. 중앙도서관 700번대에서 슬라이드 필름(당시에는 슬라이드 사진으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을 형광등 빛에 비춰보는 언니들이 멋있게 보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졸업 후 필기시험을 봐서 굉장히 어렵게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제가 사실 학점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저는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여러분처럼 일찍이 관심을 가져보지도 못했고, 정말 멋모르고 시작한 것이 맞아요.
그리미: 그중에서도 특별히 동양미술을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교수님: 이건 솔직히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일동 웃음) 일단 동양과 서양 전공의 필기시험과목이 달랐는데, 서양 전공에는 불어 시험이 있었어요.
그리미: 진입장벽이 높았군요..
교수님: 불어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학원을 다닌 적은 있는데 시험을 볼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이게 1번! (웃음). 2번, 동양과 서양을 구분해야 하는 게 너무 큰 고민으로 느껴졌어요. ‘서양미술의 이해’, ‘동양미술의 이해’ 수업은 달랑 2개만 들었는데 두 과목 다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고민을 많이 하다 학과 사무실에 있는 조교 언니에게 어떤 과가 나을지 상담을 했죠.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 언니께서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동양미술이 더 나은 거 같아요” 그러는 거예요. 그 순간 제 인생이 결정된 거죠. (웃음) 제가 입학한 다음에, 그 조교 언니는 뭐하는 분인지 궁금해서 찾고 싶어 졌어요. 한참 뒤에야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언니는 서양 파트였던 거예요!
일동: 경험에서 나오는..(웃음)
교수님: 그땐 그랬지만, 이렇게 동양미술을 선택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실제 미술작품은 도판으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에 확연한 차이가 있거든요. 동양미술의 경우 우리 주변에서 느끼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죠. 작품을 만날 기회도 많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하며 작품과 교감할 수 있는 확률도 높죠. 또 일본과 중국은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가까우면서 같은 한자문화권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가 쉬워요. 서양이나 유럽 쪽을 공부하면 비행기 오래 타야 하니 돈도 많이 들고.. (웃음)
자국민의 예술품을 공부한다는 것에 자신감과 함께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저는 큐레이터 출신이기도 해서 작품을 실제로 다루며 호흡하고, 나아가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훈련된 눈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한국인이 한국미술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죠. 그렇다고 제가 동양미술만을 고집하는 건아니에요. 이제 점점 세계가 좁아지고 있거든요. 학계도 이제 범세계적이에요. 굳이 한국미술사를 어필하자면 이렇다는 거죠. 제가 지금 대놓고 홍보하고 있는 거 아시죠! (일동 웃음)
그리미: 예전에는 큐레이터셨지만 지금은 교수님이신데, 처음부터 교수직에 대한 생각이 있으셨나요?
교수님: 저는 미술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꼭 교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어요. 미술사를 공부한 후 처음엔 그동안 꿈꾸었던 큐레이터로서 근무했고, 그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퇴직하고서는 공부하면서 작가로서 어린이 미술사 도서를 출간하고, 사전이나 도록에 전공 관련 원고를 쓰는 일도 종종 했어요.
시간강사로서 강의도 오래 했지요.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학기 단위로 매번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게 되죠.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한 학기, 혹은 한 수업에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한 학생이 큐레이터로, 혹은 미술사 연구자로 자라나는 과정을 함께해 주고 싶다는 바람이었고, 감사하게도 기회가 닿은 거죠. 특히 모교에서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니, 저는 후배님들과 함께하는 이 과정에 더욱 애정이 가고 즐겁죠.
그리미: <한국 근대 사군자화 연구: 난죽을 중심으로>라는 석사 학위 논문을 쓰셨는데, 사군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 가요? 사군자 중 난죽에 집중한 이유가 있으신 가요?
교수님: 석사논문을 쓴 지 벌써 거의 20년이 되어가네요. (웃음)
우선은 제가 19세기 말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학부 사학과 졸업 논문도 명성황후에 대해 썼거든요. 논문에 대해서는 일단 제가 학기 중에 사군자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그게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당시엔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였는데 교수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요.
사군자화는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근대기 사군자는 중요한 문제와 얽혀 있어요. 근대기에 서화를 대체하는 용어로 미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외부에서 유입되면서, “서예는 미술인가 아닌가?”라는 논의가 생겨나게 되죠. 여기에 사군자도 해당돼요.
또, 제가 연구를 하며 주목했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근대기 여성들이 그린 사군자였어요. 이들 대부분이 기생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흔히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사군자를 많이 그렸죠. 기생들의 유명세 때문에 그들이 그린 사군자가 전시회장에서 더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전문화가들은 조선 미술전람회라는 관설 전람회(오늘날 국전의 전신)에서 기생이나 아마추어들과 경쟁하는 것에 자존심 상하기도 했죠. 그래서 근대기 사군자는 미술과 화가라는 개념의 형성과 관련해 많은 담론이 생성되어 흥미로워요.
사군자는 충절과 같은 의미뿐만 아니라 길상적인 의미까지 더해져서 병풍으로도 많이 그려졌어요. 논문을 쓰는데 관련 자료가 너무 많아서 힘들 정도였죠. 그중에서도 난과 대나무는 ‘난죽을 그렸다’가 사군자를 그린다라는 말을 대신할 만큼, 매화나 국화에 비해 훨씬 많이 그려졌어요. 이러한 점들을 논문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난죽을 중심으로’라는 부제를 가진 제 첫 번째 논문이 나왔어요.
그리미: 교수님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근대 한국 회화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시기만의 매력포인트가 있을까요?
교수님: 근대는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가교같은 역할을 하기에 제게 더욱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지로서 힘든 시기를 견뎌냈어야 했지만, 전통과 모던이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이 혼란스러운 아름다움이 제 취향에 맞았나 봐요. 매번 관심이 가고요. 그래서 지금도 이 시기를 공부하고 있나 봅니다. 우리 국민들의 박수근, 이중섭 같은 근대기 화가들에 대한 애정을 떠올려 본다면,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닐까요?
그리미 : 교수님의 강의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현재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인 <한국 미술의 이해>는 한글 강의와 영어 강의로 진행하시잖아요. 두 강의 간의 차이 (수업 구성 면이나 학생들의 반응 등)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교수님: 맞아요, 실은 동일한 과목이지만 차이가 많아요.
일단 저는 대학원 학생들을 주로 지도하기 때문에 학부 수업이 많지 않아요. 학부 미술사 수업은 대개 교양수업으로, 모두 다른 전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부담도 큽니다. <한국미술의 이해>는 오랫동안 강의해왔지만, 특히 한국에서 한국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저에게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 <Introduction to Korean Traditional Art>는 더욱 쉽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누군가는 한국미술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었죠. 대형 강의인 기존의 수업은 피드백이 오고 가기 힘들다는 데 비해, 영어강의 수업은 소규모로 진행되어 질문도 활발하고 학생들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에요.
일단, 한국 학생과 외국 학생들을 비교해 볼 때, 한국미술에 있어 관심 있는 분야나 이해도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한국 학생들은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외국 학생들에 겐 처음부터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제 첫 영어강의에서 고구려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연가 칠년명 금동불 입상>을 설명했을 때가 기억이 나요. 연가 7년 기미년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했죠. 기미년은 매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해라고 얘기했을 때, 동양권 학생들과 달리 서구권 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갸우뚱하더군요. 강의 언어를 단지 한국어에서 영어로만 바꾸어 동일하게 진행하면 될 것이라는 건, 너무 안일한 제 생각이었던 거죠.
‘고구려’와 ‘고려’를 같은 나라로 쓴 어떤 외국 학생의 답안지를 보고, 특히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학생들의 어려움을 조금씩 이해하게도 되었죠.
영어 강의는 소형강의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요. 한 번은 수업 중에 관련 비디오 클립을 틀어드렸는데, 연결된 광고에 BTS가 나왔어요. 그러자 외국 학생들이 너무 신나 하면서 앉은자리에서 춤을 따라 하더군요.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 개개인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달라 어려운 점도 크지만, 소형강의를 통해 수강생들과 보다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극이 되고 재미있어요.
그리미: 수업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교수님: 보통 대형강의(한글 강의)에서 말로 이야기만 하다 보니, 완벽히 전달되지 못한 부분들에 서 종종 문제가 생기기도 하죠.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보고서 혼자 웃기도 하죠. (물론 자기반성도 합니다.) 한 번은 수월관음도를 설명하면서 구도자로서의 선재동자를 얘기했어요. 구도자라는 용어를 풀어주며 ‘도를 구함’이라 설명한 적이 있는데, 어떤 학생이 답안지에 ‘돌을 구함’이라고 쓴 거예요. (웃음) 돌을 구하러 다니는 선재동자가 된 거죠. 특히 한문투의 말들은 요즘 학생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영어강의에서는 한 독일 학생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 연락이 왔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독일 현지의 박물관에서 한국관 설립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제 학생이 귀국 후 인턴쉽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 학생이 메일을 보내 제게 묻기를, 박물관에 현재 중국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이 있는데 혹시나 한국 작품일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왔어요. 이메일에 첨부된 사진을 보니 많은 부분에서 한국 작품으로 추정되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답변을 해주었고, 그 분야를 전공하시는 또 다른 교수님을 연결해 드렸어요. 그 교수님께서도 기꺼이 조언을 주셨죠. 이렇게 우리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고국에 돌아가 한국문화의 대변자로 활동하는 걸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먼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면 느끼는 바가 많아요.
그리미: 한국 미술사 연구를 하시면서 한국 미술을 볼 수 있는 여러 곳을 직접 가 보셨을 텐데 저희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이 있을까요?
교수님: 가까운 서울이라고 생각하면, 일단은 서울시내의 주요한 미술관이죠.
근대미술은 국립 현대 미술관(주로 덕수궁관), 전통미술은 국립 중앙 박물관이 대표적 소장, 전시 기관입니다. 사립미술관으로 고미술은 리움미술관,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이 잘 알려져 있죠.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지 한국 미술은 가까이 있어요. 주요 도시(공주, 부여, 광주, 전주, 춘천 등)의 국립 중앙 박물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터넷으로, 예를 들면 김달진 미술연구소 사이트와 같은 곳에는 주요 기획 전시의 스케줄이 소개되고 있으니, 이런 걸 참고해서 방문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국외로 나아가면 저는 아시아 미술도 많이 보러 다녀요. 일본에서는 동경에서 주로 대형 전시가 많이 열립니다. 책이나 도록을 살 때는 가까운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에 가기도 해요. 중국은 아무래도 대만에 많이 가게 되고요. 지난 여름에는 회화사 일본 오사카, 교토의 박물관, 미술관 답사를 갔었고, 겨울에는 저희 과 불교미술 전공 교수님과 함께 학과에서 중국 둔황을 답사했어요. 회화사 전시가 열렸을 때는 전국적으로 다니는 편이에요. 제가 실제로 본 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했을 때, 학생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도 느껴요.
또 가끔 옥션을 통해 작품을 만나볼 수도 있지요. 서울옥션, K옥션과 같은 메이저 경매회사들은 경매 전에, 작품 프리뷰를 합니다. 개인에서 개인으로 소장처가 바뀌게 되는 작품들은 이때 아니면 실제로 보기가 정말 힘들어요. 탐나는 작품이 있으면 눈으로 담으러 가요. 일반인도 누구나 갈 수 있는데, 작품을 살 것 같은 사람이라면 더 친절하게 해 줄지는 모르겠어요. (일동 웃음)
대형 경매회사의 프리뷰는 전시를 보러 가는 기분이에요. 보통은 어떤 작품이 나오는지 인터넷으로 모두 확인해 볼 수 있어요. 물론 미술사와 미술시장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분야예요. 그래서 저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가요. 제가 공부하는 작품 가격도 보러 가고요. (웃음)
그리미: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교수님: 요즘에는 전통회화보다는 근현대 작품이 가격이 높아요. 요즘 한국미술로는 김환기 작가 작품이 매번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죠. 전통미술로는 최근 궁중장식화, 병풍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어요. 해외에서도 전시가 열리곤 했고요. 국내에서도 예술의 전당에서 민화병풍 전시가 있었는데, 개막하고 전시를 조금 늦게 관람했더니 전시 도록이 이미 다 팔려 버려서 못 살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그리미: 이번 근대 서화전에서도 <기명절지도> 같은 작품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교수님: 지금 얘기 나눈 대부분의 작품들이 19세기에 제작되었어요. 장식적인 화풍이 지배적이지요.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집안을 아름다운 미술품들로 꾸미고 싶어 했어요. 작가들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기존 미술사의 흐름에서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요즘은 연구자들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기도 하지요.
그리미: 시대가 변하면서 기존의 양식사에 대한 관심에서 미술사 속 개인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교수님: 맞아요. 요즘에는 미술품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생산자와 수요자의 관계, 후원자와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등 분야가 훨씬 넓어졌어요. 예전에는 양식사가 주류였다면, 요즘에는 관심사가 확대되며 다른 분야와 협업도 많이 하고, 연구자들도 다양한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추세이지요.
그리미: 이제 인터뷰의 막바지가 다가오네요. 교수님께선 앞으로의 한국미술이 어떤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라세요?
교수님: 외국 학생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제게다가왔을 때, 내 주위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 그 가치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한국 미술에 대한 진가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지요. 한국미술을 일차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능통한 자국민들일 거예요. 그렇다고 한국인이니까 한국미술만을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무작정 한국미술이 좋다고 하기보다는, 선입견 없는 열린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보기를 권하고 싶어요.
요즘 학생들은 서양 미술을 더 선호하고, 오히려 한국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제 수업이 작지만, 좋은 기회가 되었음 싶어요.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 학생들의 한자 해독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점점 더 한국미술을 어렵게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학생들에게는 근대미술을 더 추천해요. 근대는 한국의 전통과 서양의 신문화가 섞여 있는 시대이니까요.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동안 우리 학생들의 초, 중, 고 교과과정에 있어서, 한국미술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해요. 교육과정을 검토해 볼 때, 한국미술에 대한 서술은 풍속화가 위주를 이루지요. 많은 분들에게 전통시대 대표적인 예술가를 떠올려보시라 여쭤보면, 대부분 김홍도, 다음에 신윤복을 말씀하세요. 아마도 풍속화가 학습 교과와 접점이 많아서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수업이나 전시를 통해서 더 다양한 종류와 의미의 한국 미술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생각해요.
그리미: 그렇다면 교수님에게 있어서 한국미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교수님: 그동안 큐레이터로, 연구자로, 작가로 한국미술을 공부하면서 그 과정이 쉬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행복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문학 연구자로서는 이제 막 발걸음을 떼었지만, 한국미술을 서술하는 데 한 줄이나마 기여한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고요. 언제까지 공부를 해야 할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재미가 없어지면 그때 그만 두자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아직 그런 날은 오지 않았고요 (웃음)
미술품이라는 게 조형적 언어잖아요? 조형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미술에 다가가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미술사학자는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에서 조형언어들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사학은 사학에서 가졌던 관심과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더 예술적인 접근이고요. 시각적이다 보니 임팩트도 강하죠. 그래서 제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흥미가 떨어지기보다는, 더공부할 것도 더 보고 싶은 것도 많아진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미술사라는 학문 안에 다 녹아있거든요. 제 경험이 풍부해졌을 때 이해도 더 풍부해지고, 사료들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도 내 삶과 연결되는 느낌이 있죠.
그리미: 저희가 보기에는 교수님은 이미 많은 것을 이루신 분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 가요?
교수님: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많이 쓰고 싶어요. 그런 의미로 장기적으로는 한국미술을 해외에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책을 준비해보고자 해요. 교수로서는 좋은 제자들을 만나서 공부도 많이 했으면 좋겠고요. 끝으로 한국 근대미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았음 하는 바람이 있어요. 또 한국 근대미술관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그리미: 교수님은 저희 E앙데팡당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켜봐 주셨잖아요. 창간호를 앞둔 저희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교수님: 우선 너무 대견하고 감사하지요. 오늘의 이 열정을 절대 잊지 말고, 계속 잘해 줬으면 좋겠어요. 1권에서 무너지면 안 돼요! 어렵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옮기거나 작품 도판들을 사용할 때 주의하셔야 할 것이고요. 되도록 전시를 통해 실물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걸 추천해요. 전직 큐레이터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책으로만 하는 미술사는 아니기를!
그리미: 마지막으로 저희 첫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2호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