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ost it

당신의 ‘언어’를 찾아서

[1권][A모]

by E 앙데팡당


우리는 언어로 소통한다. 관계에는 소통이 필수 불가결하므로 사회에 속한 인간이라면 언어의 습득과 응용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해당 사회의 분위기는 개인의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나아가 한 사회의 구조를 개인에게 각인시킨다. 이 과정에서 언어가 꼭 '말'만은 아니다. 눈짓 혹은 작은 제스처일 수도 있고, 노래나 그림, 영화 혹은 책이 될 수도 있다. 감각은 하나의 언어가 되어 인간의 삶에 개입한다.

(중략)

모나 하툼은 매체의 다양성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간의 감각을 작품에 적극 활용한다. 그녀는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작품에 활용하여 작품의 스펙타클을 강화시킨다. 예를 들어, <끝에 놓인 빛>은 시각 언어에 촉각을 가미한다. 수직으로 세워진 여섯 개의 조형물에 다가갈수록 관객은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이는 관객에게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조형물의 형태와 열기는 감옥과 고문을 연상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가갈수록 관객을 위협하는 열기는 위험한 유혹, 혹은 무서운 진실을 암시한다. 또한 다른 작품인 <낯선 몸>에서는 시각 언어에 소리를 결합한다. 원통형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확대되어 촬영된 인체 영상을 바라보고 소리를 들으며 친숙한 몸의 형태가 아닌 낯선 존재로서의 몸을 마주하게 된다. 해부학적이고 미화되지 않아 오히려 낯선 신체를 제시하여 몸의 위계를 허문다. 이처럼 하툼은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참신한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1. Mona Hatoum, The Light at the End, 1989 / 2. Mona Hatoum, Corps étranger, 1994

매체가 다양해지며 미술은 보다 다양한 발화를 시도한다. 현실의 재현과 감정의 표현에서 나아가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표현하는 것이다. 획일화된 가치가 있던 전통 사회에서 억압당한 다양성이 나타나며 수많은 이들의 언어를 대변하고 있다. 개개인은 성 정체성, 젠더, 인종 등 서로 다른 고유한 이슈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개인을 설명하는 요소가 된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하나의 고정된 해석을 가지지 않는다. 작가의 개성은 혼재된 정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중략)

소외된 정체성을 가시화하여 사회가 소수자들을 주목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술은 중요한 시각 언어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르네상스 미술과 인상주의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이 모두 다른 이야기를 말하며 새로운 조형 언어를 취하는 것처럼, 언어는 정체되지 않고 시대를 반영하며 꾸준히 변화한다. 미술 작품으로 하여금 우리는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또는 전혀 몰랐던 세계를 하나의 미술 작품을 통해 알 수도 있다.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은, 이제까지 그랬듯 진화된 언어를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를 대변하며 살아나갈 것이다.


*전문은 E 앙데팡당 브런치의 <A모의 아무나 읽는 미술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도판>

1. Mona Hatoum, The Light at the End, 1989, Metal frame and six electric heating elements, 166 x 142 x 5 cm. (65 1/4 x 56 x 2 in.), Installation view at The Showroom, London, © Mona Hatoum. Courtesy the artist (Photo: Edward Woodman)

2. Mona Hatoum, Corps étranger, 1994, Video installation with cylindrical wooden structure, video projector and player, amplifier and four speakers, 350 x 300 x 300 cm (137 3/4 x 118 x 118 in.), © Mona Hatoum. Courtesy Centre Pompidou,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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