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야수파와 입체파는 현대미술의 첫출발이 된다. 앙드레 드렝과 앙리 마티스는 색채 혁명을 일으키며 야수파를 탄생시켰고 파블로 피카소는 형태 혁명을 일으키며 입체파를 탄생시켰다. 이들이 현대 미술을 탄생시킨 대표적인 화가지만 이들의 뒤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 화상이 있었다. 대표적인 화상으로 거트루드 스타인이 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오빠인 레오와 함께 상속받은 유산으로 미술품을 수집했다. 첫 번째 컬렉션으로 세잔의 풍경화를 구입했는데 이것은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왜냐하면 당시 세잔은 미술시장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명 화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인은 이에 멈추지 않고 앙브루아즈 볼라르1)의 도움을 받아 고갱과 르누아르의 작품을 구입했고 이후에는 대중의 비난을 받는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도 구매했다.
스타인이 구입한,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이 작품은 마티스의 변화된 기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마티스의 초기 작품에서는 절제된 붓질이 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과감하고 부자연스러운 색상과 강하고 거친 붓질이 보인다. 이렇게 변화된 기법은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스케치 단계에 머문 것처럼 정교하지 못한 화면은 당시 미술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은 1905년에 살롱 도톤느에 처음 전시되었고 새로운 미술사조인 야수파 용어를 등장시켰다. 기존의 그림 기법과 달리 간략화와 추상화된 이 작품은 초반에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입체파의 창시자인 피카소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이러한 스타인의 그림 수집은 그녀의 그림에 대한 투자이기도 했지만 친구로서의 우정이기도 했다. 스타인의 그림을 보는 뛰어난 안목 덕분에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화가들의 생활고가 덜어질 수 있었다. 마티스는 스타인에게 그림을 판 값으로 당장의 금전적인 위기를 모면했고 피카소는 잠을 잘 집을 얻을 수 있었다.
화상으로서 스타인의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예술운동에 강한 애정을 보인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스타인은 피카소, 마티스, 세잔, 마네, 후안 그리스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들의 작품을 수집했기 때문에 그녀의 집에는 박물관에는 전시되지 않는 중요한 작품이 많이 전시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타인의 집은 많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드나드는 곳이 되었고 파리에서 유명한 토요일 살롱이 되었다. 이곳은 단순한 모임의 공간을 넘어 예술가들이 새로운 영감을 얻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실제로, 여기서 피카소와 마티스가 만났고 이들은 20세기를 변화시킨 새로운 화풍에 대한 영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 냈다.
이렇게 마티스와 피카소는 서로를 항상 견제했다. 이 두 사람의 경쟁 덕분에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피카소는 마티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스타인의 초상화를 심혈을 기울여서 그렸다. 심지어 스타인이 피카소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피카소가 완성 전에는 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타인: 파블로, 이런 시간이 즐겁긴 하지만, 벌써 40번째 만남인데 한 번쯤은 제 초상화를 보면 안 되나요?
피카소: 완성 전에는 절대 안 돼요. 평범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어요. 반드시 마티스를 이겨야 하니까요. 전 지금 거트루드 씨의 ‘진짜 모습’을 담아낼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2)
또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은 피카소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 되었다. 단순하고 힘 있는 얼굴 선과 거칠고 대범한 표현이 이전의 피카소의 스타일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더 이상 원근법을 따르지 않았고 현실과 똑같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균형도 신경 쓰지 않았다. 피카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초상이 스타인을 전혀 닮지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피카소는 “거트루드가 결국은 이 그림을 닮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티스를 의식해 나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결심한 피카소는 1905년 11월에 시작해 1년이나 지난 1906년에야 완성을 시켜 나에게 주었다. 그들은 경쟁하면서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거트루드 스타인-
이렇듯 스타인의 통찰력 있는 안목은 당시 주목받지 못한 화가들이 주목받을 기회를 얻게 했다. 스타인의 뛰어난 사교는 많은 화가들이 그녀의 집에 모여들게 했고 이들이 서로 새로운 영감을 주고받았을 수 있게 도와줬다. 따라서 거트루드 스타인은 20세기 현대미술의 발돋움을 도운 숨은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인이 없었다면 야수파와 입체파를 선동한 화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 까? 스타인의 집이 없었다면 피카소와 마티스가 만날 수 있었을 까,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