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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ost it

가장 흥미로운, 죽음과 성

[1권][A모]

by E 앙데팡당

‘죽음’ 만큼 일상적인 동시에 비일상적인 일이 있을까?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가게 되는 장례식은 이제 낯선 사건이 아니게 되었고 온갖 미디어 속 캐릭터의 죽음은 단어가 가진 무게와 거리를 경감시켰다. 그러나 삶에서 죽음은 여전히 비일상적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나 역시 나의 생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이게 살아있다. 생과 사,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양면성을 지닌 죽음과 성. 죽음과 예술을 연관시켜 연구한 자료는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죽음과 관련된 수많은 도상을 지칭하는 전문용어도 구글링 한 번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전문용어와 자세한 연구 결과는 남에게 맡기고, 오늘은 성姓과 관련된 죽음의 이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생은 죽음을 동반하니 태초의 생명은 태초의 죽음 역시 가진 셈이다. 인간은 영원을 갈망했으나 탄생부터 끝이 정해져 있었기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허구의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역사 속에서 오아시스는 아크 Akh, 윤회, 천국, 낙원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극단적인 방향으로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억누르는 시대까지 등장한다. 중세 유럽인들은 사후 천국에 가기 위해 극단적으로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이들은 살아 숨 쉬면서 ‘Memento mori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되뇌었다고 한다. 생이 지속되는 동안 생의 덧없음을 되새기는 게 동정심이 들기까지 한다만, 교육의 효과는 대단했던지 중세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오히려 일종의 통과의례로 여기며 차분하게 죽음을 맞았고, ‘Ars moriendi아르스 모리엔디(죽음의 기술)’라는 임종의 방법론까지 등장한다. 신의 축복을 기대하며 신부를 불러 회개하고, 가족과 작별의 시간을 가진 뒤 죽음을 맞는 게 중세인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두려워한 건 ‘Mors repentina모르스 레펜티나(갑작스러운 죽음)’밖에 없었다. 회개하지 못하고 죽은 자는 신의 은총도 받을 수 없었으니, 타지에서 갑작스레 맞는 죽음을 저주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중세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지점은 ‘페스트’의 확산과 맞물린다*. 당시 유럽의 3명 중 1명이 페스트로 죽었으며, 발병 후 하루도 되지 않아 갑자기 몸이 까맣게 변하며 죽었으니 회개와 작별은커녕 본능적인 두려움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들이 두려워했던 지점을 정확히 짚었던 페스트의 확산은 세상의 종말로 여겨졌다.

본인은 극한에 몰린 중세인들이 미쳐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음의 춤’ 도상의 확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질주하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반성을 아무리 하여도 구원의 손길이 내려오지 않자 이들은 두려움에 미치기라도 한 듯 적극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성별과 노소를 불문하고 묘지에 모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책 속에 종종 등장한다. 이 일화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림 속에서 죽음과 손잡은 이들은 성별과 신분을 막론하고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모습의 죽음과 춤을 춘다. 해골이나 썩은 시체로 대변되는 죽음은 신체 특징이 드러나기도 하나(우측 그림 가장 오른쪽 해골에게 가슴이 있는 것처럼), 이 묘사는 성적인 의도를 드러낸다고 말하기 어렵다. 신분과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했음을 ‘죽음의 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죽음의 춤, 마리엔 교회, 베를린, 1480-1500 / 2. 해골의 춤, 미카엘 볼게무트, 1493

평등했던 죽음의 의미는 르네상스에 접어들며 서서히 변화한다. 르-네상스, 다시 태어나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당대 화가들이 주요 그린 주제는 성경이 아닌 그리스, 로마의 신화나 역사였다. 성경의 재현이나 성인의 순교를 건조하게 그려낸 중세와 달리 ‘인간’에 집중한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은 점점 묘사가 세밀해졌고 성별 표현의 구분이 뚜렷해졌다. 여성과 남성 육체 표현 방식이 분리되면서 그림 내에서 성역할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성역할의 구분은 나아가 ‘영웅성’의 구분을 불러일으켰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다르게 묘사하고, 죽음의 의미 역시 달라지기 시작한다.

당대 그려진 여성의 죽음 중 ‘루크레티아’에 주목해보자. 루크레티아는 로마가 부패한 왕가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 혁명의 발화점을 만든 중요한 인물이다. 부패한 왕가의 일원에게 겁탈당하고 자신의 정조를 잃은 상실감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 수치에 자살을 한 그녀의 이야기로 혁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정말 ‘옛날’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그녀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그려지며 행위의 의미는 사라지고 성별만 남는다. 가슴을 드러내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뤼크레티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살 직전까지 갈등했을 복잡한 감정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루크레티아의 자살이 갖는 어떠한 영웅적 의미 역시 찾을 수 없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루크레티아와 다른 그림을 비교했을 때, ‘영웅’에서 흔히 연상하는 ‘영웅적 고뇌’, ‘저항’은 젠틸레스키의 그림 외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가슴을 무방비하게 드러낸 뤼크레티아는 무표정 하거나, 유혹하는 듯하거나(죽음을 앞두고 말이다!), 슬퍼한다. 아름다운 외모와 관능적인 몸, 강간이란 소재는 시각적 쾌락으로 소비될 뿐이다.

3. 루카스 크라나흐, 루크레티아, 16세기 / 4. 요스 반 클레브, 루크레티아, 1520-1525 / 5.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루크레티아, 1620-1621

그렇다면 비슷한 예시가 있어야 이해가 쉽겠다. 스토아 철학으로 유명한 세네카는 증기탕에 쪄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그는 물이 담긴 솥으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다. 그림 속의 세네카는 헐벗었지만 관능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병든 노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마지막까지 지혜를 배우려는 사람이 꼭 함께 등장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설교하는 그의 나신은 일종의 경건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6. 루벤스, 세네카의 죽음, 1612년경 / 7. 조르다노, 세네카의 죽음, 17세기

젊은 여성의 육체와 죽음을 연관시킨 예시를 또 들자면, ‘죽음과 소녀’ 도상이 있다. 해골로 표현되는 죽음과 생생한 육신을 가진 소녀가 함께 등장하고 대부분 젊은 여성이 죽음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다. 이 도상은 생의 덧없음을 주지시킨다는 점에서 메멘토 모리와 연관성을 갖기도 한다. 아래 두 그림을 보자. 이 그림들에서 해골은 특정 성의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판판한 몸의 형태와 짧은 머리, 두 인물의 관계성으로 보아 남성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뭉크나 실레의 작품에서 죽음이 남성 또는 작가 자신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니 아예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예외적으로 19세기 작가인 앙투안 조세프 비르츠는 그림 속 해골을 여성의 사후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죽음은 소녀를 능욕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기에 가능한 설정이므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8. 한스 그리엔 발둥, 죽음과 소녀, 16세기 / 9. 한스 그리엔 발둥, 죽음과 소녀, 16세기
10. 앙투안 조세프 비르츠, 두 여인(아름다운 로잔), 1843 / 11. Boxwood carving by Hans Schwarz, 1520년대

이제 조금 더 근대로 가보자. 18세기, 산업 혁명이 시작되며 사회 역시 변화한다.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과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단순 노동을 할 노동자의 수요가 높아졌고, 여성과 어린아이들까지 노동자로 일하며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공장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전반적인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이 퇴근 후 즐길 서비스 업종이 발달한다. 술집과 카바레에서 일하는 종업원과 무희가 이 시기 등장하였으며, 여성 성 노동자가 늘어나 매춘굴을 조성한다. 여성의 직업군이 늘어나긴 했지만 명확한 위계가 존재했다. 가정에서 일하는 직군인 유모, 가정부가 가장 좋은 취급을 받았고 그다음이 종업원과 무희 등 가정을 벗어난 장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가장 최하위에서 멸시까지 받은 직종이 바로 여성 성 노동자들로, 사회는 이들을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하였다. 성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말해주듯이 당시 여성들을 괴롭힌 가장 큰 무기는 ‘성’적 타락이었다. 당시 실제로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강에 투신하는 여성이 있었고, 이는 여성과 익사를 성적 타락과 연관 짓는 기존의 낙인을 강화시켰다. 또한 이 소수의 사례를 언론이 과장 보도하여 여성들의 행동반경을 억제하고 사회 진출을 억압하고자 하였다.

12-14. 어거스트 에그, 과거와 현재 연작 1,2,3, 1858,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 소장

중산층 여성이 성적 타락으로 인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에그의 연작이나,

<화려한 집안과 인물들의 옷차림은 당대 중산층 가정을 연상시킨다. 왼쪽 구석에서 아이들은 불안하게 오른쪽을 보고 있으며, 공들여 쌓은 카드 탑은 무너진다. 남편은 의자에 앉아 권위적으로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에 비해 아내는 바닥에 붙은 듯 굴욕적으로 용서를 빈다. 쓰러진 여성의 왼쪽으로 떨어져 있는 과일은 부인의 성적인 타락, 불륜을 의미한다. 불륜으로 버림받은 여인은 뒤늦은 반성을 하지만 처참한 모습으로 다리 밑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처지가 된다.>

15. 조지 프레데릭 왓츠, 익사로 발견, 1848-1850 / 16. 바실리 그레고리비치 파로브, 물에 빠진 여인, 1867

익사한 여인을 그려 성적 타락과 죽음을 연관시켰다. 특히 왼쪽 왓츠의 그림은 토마스 후드 Thomas Hood의 시 <탄식의 다리>와도 연관이 있다. 시에 등장하는 여성은 임신을 했으나 가족이 그녀를 외면했고, 결국 강에 투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Make no deep scrutiny Into her mutiny Rash and undutiful:
Past all dishonour, Death has left on her Only the beautiful.
Sisterly, brotherly, Fatherly, motherly Feelings had changed:
Love, by harsh evidence, Thrown from its eminence;
Even God's providence / Seeming estranged.”

이러한 시대상황과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여성의 ‘타락’을 ‘성적인 타락’으로 규정하였다는 점이다. 19세기 죽음을 다룬 책에서 인용하자면, ‘남성적 죽음의 동기는 ‘패배한 전쟁’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영웅적 자살과 유사한 차원으로 취급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경우에 있어서 전쟁은 가혹하고 감내할 수 없는 자연이나 경제의 힘에 대항한 것이지만 말이다. 여성의 죽음은 사랑의 실패나 순결의 상실 탓이었다. 후자는 그래서 치욕이자 병으로 간주되었다’. 2) 이렇듯 전반적인 사회상이 변화하여도 여성에게 요구하는 순결과 순종의 덕목이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사회는 ‘순결을 상실한 여성’에게 죽음까지 요구하였음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나아가 문학에서 여성의 죽음은 유약함, 정신적 불안으로 인한 죽음으로 많이 묘사되었다. <햄릿>의 오필리아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데, 오필리아가 그려진 방식을 보자.

17.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1852

극 중에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오는 오필리아는 죽음까지 아름답게 묘사된다. 물에 빠진 시체가 분홍빛 입술과 약한 홍조를 띨 수 있을까? 앞서 인용한 책에서 몇 구절을 더 빌려보자. ‘그러나 여성의 몸은 자살의 미술사 전체에 걸쳐서 보호받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나 전시는 미술사가에게 다른 의미가 있다. 사이비 클레오파트라나 루크레티아의 알몸 혹은 반라 신은 사실상 ‘가상’의 관객인 남성을 위하여 다시 그려진 죽은 여자의 초상이며, 일상 속 여성의 구현으로부터 두 차례나 물러난 것이다. (중략) 루크레티아나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이미지들은 남성 관객을 위한 협박 혹은 위안의 역할을 하지만, 여성 관객을 곤경에 빠뜨린다. 도운에 따르면, 서사화된 여성 관객에게는, ‘이미지가 압도한다-그녀는 이미지다’.3) 이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 여성의 신체나 죽음을 우리가 얼마나 본 적 있던가? 여성의 몸은 온전하도록 ‘보호’ 받았고, 죽음조차 판타지로 꾸며지고 소비된다. 죽음까지 아름답게 소비된 오필리아, 이는 현대 사회의 2차 창작물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여성의 자살이 성적인 타락, 정신적 나약함으로 여겨지며 수동적으로 그려진 데에 비해 여성이 살인을 저지른 경우, 혹은 살인에 동기를 부여한 경우엔 성적 관능성이 한층 더 짙게 부여되었다. 이 역시 변화된 사회상과 연관이 있다 보는 시각이 많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단순 노동직 여성뿐 아니라 전문직 여성이 하나 둘 등장한다. 이들은 여성인권의 열악함을 말하며 개선을 위한 사회 운동을 시작했고 남성들은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위협감에 불안에 떤다.

18. 프란츠 본 스투크, 유디트, 1926-27 / 19. 오브리 비어즐리, 살로메에 붙인 삽화, 1894 / 20. 구스타브 클림트, 유디트, 1901

이러한 사회상에 등장하는 ‘팜므파탈’ 도상은 아주 재미있다. 이브, 살로메, 유디트 등으로 대표되는 이 유형의 여성들은 성적으로 아주 매력적이고 관능적인 동시에 남성을 실패로 이끈다. 재미있는 이유는 이 유형의 등장인물은 위협적인 여성이 되는 동시에, 관능성을 (주로 남성) 화가에게 부여받아 성적 대상화가 같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가슴을 내놓고 아름다운 얼굴로 유혹하는 여성이 사실은 살인자였다니, 꽤 재미있는 판타지 아닌가?

사실 나는 당시 남성 관객들이 이 그림을 보며 공포를 느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 시기 남성 관객이 비너스나 오달리스크에 투영한 성적 욕망을 유디트, 이브, 살로메 등에 투영한 것뿐이다. 이들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관능적인 모습을 뽐내는 ‘새로운 유혹적인 여성상’으로, 여전히 남성 관객의 시각적 쾌락을 위해 등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유디트에 대한 해석이다. 유디트는 구약성서 외전인 ‘유디트기’의 주인공으로, 고향 베틀리아에 아시리스 군대가 쳐들어오자 적군 기지에 들어가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영웅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팜므파탈 도상에서 그녀의 용기나 영웅적 면모는 사라진 채 관능적인 몸과 유혹적이고 나른한 시선으로 대체된다. 행위는 지워지고, 섹슈얼리티는 증가한다.

마지막으로 20세기로 넘어가 보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초현실주의 시대는 어떤 작품으로 죽음을 해석할 수 있을까? 초현실주의는 연통관 이론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간단하게 ‘극과 극은 통한다’로 이해할 수 있다. 서로 극단에 있는 것들은 연통관을 통해 상호 연결되어있다는 이론이다. 이 시기에 들어 극과 극, 즉 생과 사의 연결지점을 한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이 많이 등장한다. 생과 사, 무언가 생각나는가? 1편에서 다루었던 죽음과 소녀 모티프가 이 시기 재등장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낭비하는 여인>의 경우, 전통적으로 죽음과 소녀를 그리는 방식은 아니지만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과 생생한 여성의 육체를 한 인체에 나타냈다는 점에서 ‘죽음과 소녀’ 모티프의 차용이라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의 머리에 신체가 들어간 <강간>은 그림 자체만으로 죽음을 연상하긴 어렵지만, 제목인 <강간>과 함께 감상하였을 때 제목의 가학적인 행위가 연상이 된다. 또한 얼굴을 덮은 신체는 눈, 코, 입 등 개인성을 드러내는 부분을 가리고 있다. 숨을 쉬어야 하는 얼굴에 몸을 집어넣어 호흡을 막는 상황에서 ‘죽음’을 연결 지을 수 있다. 개인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인 얼굴 대신 익명적이고 섹슈얼리티가 다분한 가슴과 둔부 부분만을 잘라 넣어 그림 속 여성의 개인성을 소멸시킨다.

폴 델보의 <대화>역시 죽음과 소녀 모티프를 차용한 것인데, 여기서 해골로 나타나는 죽음은 소녀와 대화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죽음이 소녀를 강압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닌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이론인 연통관 이론과 상통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두 등장인물이 같은 포즈를 취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여기서도 조제프 비르츠의 <두 여인>처럼 한 인물의 타나토스와 에로스를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현대적인 배경에 어울리지 않게 고대 여신의 모습처럼 반나체로 등장하는 소녀와 해골은 배경과도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피 흘리는 장미들>에 나타난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잘린 신체와 갈린 배에서 분출하듯 나오는 장미는 내장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꽃은 여성의 성적 욕망이자 쾌락의 극치로 해석되며, 억압된 성적 욕망이 쏟아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4) 배가 갈라져 내장이 쏟아지는 상황인 여성은 그 와중에도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며 아름다운 몸의 형태를 내보이고 있다. 게다가 하늘을 향한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바람에 날리는 금발머리는 흡사 광고모델, 혹은 마네킹과 같은 모습이다. 죽음과 여성을 결합시켰지만 죽음의 공포나 처참함은 사라진 채 여성의 섹슈얼리티만 강하게 남으며, 쏟아지는 내장은 꽃으로 포장되어 여성의 신체를 장식하는 듯 보인다. 달리는 그림에 사디즘과 매조키즘적 요소를 종종 반영한다. 이 그림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한데, 배가 찢어진 고통에 고개를 젖히며 하늘을 보는 인물의 행동은- 쏟아지는 꽃의 의미를 고려하며 함께 보면-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마조히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은밀하게 드러난 오른쪽의 그림자는 실체 없이 드러나 이 은밀한 상황을 관음 하는 듯 보인다.

마지막으로 볼 작품은 <피는 꿀보다 달콤하다>이다. 여기에서 역시 잘린 여성의 신체는 개인성을 상실한 채 널브러져 있고, 강조된 가슴과 신체 곡선은 절단된 신체와 대조되는 생기를 띤다. 이는 앞에 위치한 썩은 동물 사체와 대비되며 생명체가 아닌 것 같은 느낌까지 준다. 달리는 여성의 육체에서 나오는 액체에 성적인 의도를 담았고, 여기서 잘린 목과 팔의 단면으로부터 분출되어 고인 피는 성적 욕망을 의미한다.5) 에로스-젊은 여성의 육체-를 타나토스-잘린 신체 부위들-와 연결시킨 후 거기에서 다시 성적 욕망이란 에로스적 요소를 표현했지만, 그 욕망의 주체는 누구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여성 관객들이 여기에 고인 피를 보며 여성의 욕망이라 해석할 수 있을까?

중세시대부터 20세기 초현실주의까지, 간략하게 죽음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거기에 사용된 요소들은 중세나 현재나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한정된 연령대의 육체와 섹슈얼리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죽음에 대한 그림이라는 게 무색하게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죽음이 덮친 여성의 몸은 실제 죽음의 리얼리티로부터 ‘보호되며’ 남성 관객의 시선을 위해 포장되어 나타난다. 죽음까지 아름답고 섹슈얼리티로 포장된 여성들의 몸을 보며 여성 관객들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마지막은 짧은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이미지가 압도한다-그녀는 이미지다’.6)



<각주>

1) 페스트는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기승을 부렸다. 14-16세기 <죽음의 춤>을 다룬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페스트와 죽음의 춤 도상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2) 론 브라운(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194p

3) 론 브라운(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228-229p

4) 학위 논문) 변경주(2018), 『초현실주의 회화에 나타난 죽음 모티프의 의미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5) 학위 논문) 변경주(2018), 『초현실주의 회화에 나타난 죽음 모티프의 의미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6) 론 브라운(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229p



<참고문헌>

진중권(1992), 『춤추는 죽음 1』, 세종서적.

진중권(1997), 『춤추는 죽음 2』, 세종서적.

엔리코 데 파스칼레 Enrico De Pascale(2010), 『죽음과 부활 그림으로 읽기』, 예경.

론 브라운 Ron M. Brown(2003), 『자살의 미술사』, 다지리.

Thomas Hood, 『The Bridge of Sighs』, 『Bartleby.com』, 1919, https://www.bartleby.com/101/654.html, 접속일 2019. 07. 25


<도판>

1. 죽음의 춤, 1480-1500, 베를린 마리엔 교회

2. 미카엘 볼게무트, 해골의 춤, 1493

3.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루크레티아, 16세기, 87.6x58.3cm, Neue Residenz Bamberg

4. 요스 반 클레브, 루크레티아, 1520-1525, 76x54cm, Kunsthistorisches Museum

5.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루크레티아, 1620-1621, 캔버스에 유채, 54x51cm, Palazzo Cattaneo-Adorno

6. 루벤스, 세네카의 죽음, 1612년경, 목판에 유채, 185x154.7cm, Alte Pinakothek

7. 조르다노, 세네카의 죽음, 1684-1685, 캔버스에 유채, 155x188cm, 루브르 미술관 소장

8. 한스 그리엔 발둥, 죽음과 소녀, 16세기, Kunstmuseum Basel

9. 한스 그리엔 발둥, 죽음과 소녀, 16세기, 목판에 템페라, 31.1x18.7cm, Kunstmuseum Basel

10. 앙투안 조세프 비르츠, 두 여인(아름다운 로잔), 1843

11. Boxwood carving by Hans Schwarz, 1520년대

12. 어거스트 에그, 과거와 현재 연작 1, 1858, 캔버스에 유채, 63.5x76.2cm, 테이트 브리튼 소장

13. 어거스트 에그, 과거와 현재 연작2, 1858, 캔버스에 유채, 63.5x76.2cm, 테이트 브리튼 소장

14. 어거스트 에그, 과거와 현재 연작 3, 1858, 캔버스에 유채, 63.5x76.2cm, 테이트 브리튼 소장

15. 조지 프레데릭 왓츠, 익사로 발견, 1848-1850, Watts Gallery

16. 바실리 그레고리비치 파로브, 물에 빠진 여인A drowned Woman, 1867, 캔버스에 유채, 68x108cm

17.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1852, 캔버스에 유채, 76.2x111.8cm, 테이트 브리튼 소장

18. 프란츠 본 스투크,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927, 캔버스에 유채, 82x74cm

19. 오브리 비어즐리, 살로메에 붙인 삽화, 1894

20. 구스타브 클림트, 유디트, 1901, 캔버스에 유채, 84x42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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