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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의 [디지털과 유사한 아날로그 to 디지털]

E앙데팡당X아트렉처/윤수정, 김가영 기획자 & A모, 샤오화

by E 앙데팡당


인터뷰: 윤수정 김가영 전시 기획자
일시: 2019 7월 6일 토요일 2시-3시 05분
장소: 공간 형-카페 투포에이스클
인터뷰어: E앙데팡당(A모, 샤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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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유사한 아날로그 to 디지털] 비록 7월 28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 전시이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애매모호한 시간을 살아가는 90년대생의 시선은 유쾌하면서도 대단히 중요할 수도 있다. 꼬불꼬불한 전화선의 유선 전화기에서부터 5G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몸은 수많은 기억을 담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모두 익숙한 세대는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편지 같은 전시, <디지털과 유사한, 아날로그 투 디지털>의 두 기획자를 만났다.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김가영 기획자와 명료한 생각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윤수정 기획자와의 인터뷰,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해주시라!



A모: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영: 저는 김가영입니다. 16학번으로 미술사학과에 들어갔고 이전에는 같은 학교에서 방송영상학과를 나왔어요. 사회학과를 복수 전공했었고요. 그리고 석사 수료를 1년 전에 했는데, 아직 논문을 쓰고 있어서 수료생 신분입니다. 공부하면서 간간히 기회 있으면 글도 다른 곳에 써보고 전시도 열어보고, 그러고 있어요. 수정 기획과는 대학원 면접을 같이 본 사이이고 동기거든요, 전시를 저번에 같이 했고. 그때는 동기들끼리 만든 책모임에서 책을 읽고 전시를 했었어요. <서핑 인류>라고. 이번에 둘이 떨어져 나와 좋은 기회에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수정: 저는 윤수정이라고 하고, 저도 똑같이 미술사 석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민중미술 공부하고 있고요. 현재 석사 논문 준비 중이고, 학부는 경제학을 했어요. 지금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A모: 이번 전시가 <디지털과 유사한 아날로그 투 디지털>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잖아요. 전시 제목이 흥미로운데 간단히 전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가영: 디지털과 관련된 걸 하면 좋겠다 하는 두루뭉술한 아이디어가 수정 기획에게 있었어요. 기획 초반엔 저희 둘 다 디지털 미술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여서,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디지털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먼저 접근하게 되었죠. 우리가 읽고 본 것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요. 마침 주변에 저희의 기획과 맞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같이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시는 말 그대로 ‘디지털과 유사한’것인데요. 우리는 디지털로 달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아날로그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미술가들에게 그런 (우리와) 똑같은 감각이 작품에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전시를 해보자 이렇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세 명의 미술가와 함께 하는 전시여서, 이걸 세대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해요.

수정: 어떤 에피소드 중에, 아이가 책을 읽는데 확대를 하고 싶어서 (터치 스크린 확대하는 손 모양을 취하며) 이렇게 했대요. 그런 에피소드들을 듣고 그럼 그 아이들은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별로 없겠구나, 오히려 디지털에 가까운 사람들이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를 보면 아예 copy and paste도 잘 못하시거나 메일링 메커니즘을 이해를 못하시거나, 그런 식으로 디지털과 멀어 보인단 말이에요? 그걸 보며 80년대 생들도 갖고 있지만, 90년대 생들이 디지털 세대의 끝 세대, 아날로그 기억을 갖고 있는 거의 마지막 세대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구체화시키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가영: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전시들, 저도 많이는 못 봤지만. 디지털을 다루는 전시가 굉장히 많은데 거기에 (방향을) 같이 하면서, 좀 더 발을 빼서 완전히 디지털이지 못 한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A모: 맞아요, 올 해에 디지털과 관련된 전시가 많았잖아요. <불온한 데이터>나 <web retro> 같은 전시는 디지털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번 전시는 보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초점을 둔 것 같아요.

수정: 네, 일상적인 것에서 미술관에 들어갔다는 자체만으로 너무 (의미가) 확 떠버리니까 괴리감이 좀 왔던 것 같아요. 재미가 갑자기 반감되고. 그래서 제가 전시를 기획하거나 디지털 이야기를 하려면 좀 더 개인적으로 출발해야겠다. 우리 세대의 각 개인이 가지는 재미있는 감각 조형 요소라거나 시각적인 것들에서 출발하여 너무 큰 이야기로 가지 않도록. 그 안에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사회적이거나 보편적인 의미 말고, 개인적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답이 되었을까요?

A모: 그럼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가영: 한 가지라고 하기보다는.. 일단 90년대 생들이 꾸린다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는 것 같고요.

수정: 맞아요.

가영: 제일 연장자가 90년생이고 92, 93년생이어서. 젊은 세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술가들과 기획자들이 주는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공간이, 을지로에 이렇게 화이트 큐브가 있기 쉽지 않거든요.

A모: 맞아요, 이거 진짜 재미있는 것 같아요.

가영: 그래서 한 편으로는 어렵기도 해요. 너무 화이트고 너무 사각형 공간이어서. 저희가 공간 활용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공간을 주변 환경과 같이 보는 재미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수정: 저도 90년대생에 주목을 하고 싶은데. 미술계 안에서 90년대생이면 되게 약자잖아요. 우리는 정말 어린 축이고요. 권력적으로 약자인 연령층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시도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달라지는 것도 보이고. 그런 키워드를 관람객 분들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을까.


A모: 그러고 보니 생각나네요. 기성 작가분들의 작업이 무거운 경향이 좀 있잖아요, 연령층이 내려올수록 가벼워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재미있어요.
수정: 맞아요.


가영: 그리고 저희는 관객이 구입을 원하면 작품을 판매할 의향도 있어요. 그런데 원래 이 공간에서 그런 (매매) 활동을 시도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에는 굿즈 전도 많이 하고, 취미가 같은 공간도 있잖아요. 저희도 조금 더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싶어요.




A모: 전 이게 제일 궁금했는데, 기획 의도가 정해지면 작품도 찾고 작가도 섭외해야 하잖아요. 이걸 어떻게 추리고 섭외하셨는지 궁금하거든요. 특히 이름이 많이 알려진 기성 큐레이터가 아닌 이상에야 사람들이 조금 망설여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가영: 그래서 저희가 기획할 때는 같이 할 수 있는 작가가 있는지 먼저 서치를 하는 것도 있어요. 서치는 주변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네오룩’ 같은 것을 보며 서치를 하기도 하고.


수정: 맞아요, 이번에 그렇게 많이 했죠.


가영: 이번에는 젊은 작가전을 많이 다니다가 ‘우리랑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리스트에 넣기도 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맞춰가면서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엄청난 섭외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니까. 공간은 감사하게 전시 공모로 제공받았지만, 저희 사정이 아티스트 피 artist fee를 줄 수 있을 정도는 안돼요. 다른 건 다 저희 사비로 하는 거라서. 한재석 작가 같은 경우는 저번 전시도 같이 한 작가인데 이번 전시도 같이 하게 되었고요.


수정: 이 쪽으로 계속 관심이 있으면 지인들이 많이 생기기도 하고, 또 그렇게 섭외되는 경우도 생겨요. 그런데 절차상으로는 그렇죠, 기획을 먼저 하고 작가 섭외를 하는 게 정석인데 의외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기획을 구상한 다음에 한 다음에 작가 섭외를 시도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기획이 나오려면 많이 봐야 하잖아요. 잡지도 보고 SNS도 보고 뭐든 많이 보고 감각적으로 익히는 과정에서 애정이 생기는 작품도 생겨요. 약간 마음을 터 놓는 느낌. 그러면서 내가 애정이 생긴 작가들을 어떻게 전시의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기획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저는 기획하거나 아이디어를 생각할 때 혼자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나 현상, 이미지를 많이 본 후 기획을 구체화해요. 그다음에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죠. 기획을 하나 정한 후에 작가를 섭외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가영: 같이 가면서 아이디어 정리하고. 그렇게 가는 것 같아요.


수정: 그렇지. 기획자가 신이 아니에요. 하하
(일동 웃음)



A모: 그럼 사람들과 컨텍을 많이 할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수정: 이야기? 까인 적도 있었죠.


가영: 까인 이야기가 있죠. 하하


A모: 이런 거 너무 궁금하잖아요!


가영: 이 전시를 같이 하고 싶은 분이 계셨어요. 우리 기획 의도랑 그분이 몇 년 동안 이어나간 작품이 잘 맞았어요. 그리고 수정 기획이 전시를 보고 왔는데, 좋았던 거예요. 그런데 아티스트 피 없이 하기에는 인지도와 경력이 벌써 꽤 있는 작가분이셨어요. 그래도 좀 무모하게 이런 기획을 하고 있는데 같이 하실 수 있냐, 솔직하게 아티스트 피는 드리기 어렵다 밝히고 부탁을 드렸는데 거절을 당했죠.
수정: 후회하실 거야. 하하
가영: 후회? 안 하실 것 같은데. 하하. 거절하신 이유가 기획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으니까요.
A모: 아쉬우셨겠어요.

가영: 훌륭하신 분이었어요. 한 편으론 아쉽지만 운명이죠 뭐. 어쩔 수 없죠.
수정: 맞아요.




A모: 두 분 다 미술 쪽과 관계가 없는 학사를 하신 거잖아요. 학사랑 연결이 안 되고 아예 다른 진로를 선택하셨는데, 어떤 동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수정: 저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문화 경제학 시간이 있어가지고 그때 미술 시장을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아주 나이브하게, 미술 시장을 배웠으니까 옥션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하하하. 그런데 어이쿠, 석사를 해서 전문성을 키워야겠더라고요.
가영: 석사를 꼭 하지 않아도 갈 수 있지 않나요?
수정: 갈 수는 있는데, 석사가 있어야겠구나 싶어서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 진로는 이 쪽을 가고 싶은데. 은행이나 이런 덴 안 맞을 것 같고. 그래서 고민 끝에 미술사 대학원을 준비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A모: 그럼 수정 기획자님은 시작은 옥션이었는데 지금은 기획으로 바꾸신 건가요?
수정: 그런데 전시 기획자를 직업으로 보면, 함정이에요. 왜냐하면 직업은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는 건데, 기획은 돈을 벌기 힘들어요. 오히려 쓰게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 저는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직업적으로 돈을 벌고, 전시 기획은 내 정체성 실현, 자아실현으로 보고 있어요. (전시 기획은) 직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가영: 그래도 독립으로 병행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수정: 네, 병행하는 경우도 있죠.
가영: 그러다 나중에 큰 사업을 딸 수 있으면 이제 돈을 벌 수 있겠죠.
수정: 그럼 직업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하하


A모: 이건 좀 사담인데, <불온한 데이터> 전 어떻게 보셨어요? 전 조금 거창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스케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수정: 저는 어려웠어요. 저는 원래 ‘나’에서 출발하는 걸 좋아해서. 하하.
가영: 저는 아직 전시를 못 봤는데. 그 ‘불온한’이 어떤 ‘겁’을 가지고 해서 불온한 건가? 전체적인 맥락이 (데이터에 대한)‘우려’에요?
A모: 사실 저도, 작가마다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전체 전시가 말하는 기조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불온한지 모르겠어요.
수정: ‘불온한’이 붙었으니까 전시장에 처음 들어가면 아, 데이터를 이렇게 쓰면 위험하다는 건가? 생각이 들어요.
가영: 그러게요, 느낌은 그런데.
수정: 그런데 다른 방으로 들어가면 또 (위험한 뉘앙스가) 아니에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잘 못 느낀 걸 수도 있고.
A모: 아니면 제가 과학을 잘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수정: 저는 오히려 옆에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이 좋았어요.
A모: 저도 사진만 봤는데. 이런저런 평가가 많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작가가 가진 생각이 매력적이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또 한편은 사회 운동가가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가영: 제 친구도 그랬어요. 이게 무슨 힘이 있을까, 그 그림들이 과연 사회적 발언으로서 가지는 힘이 있을까.

수정: 샤오화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샤오화: 저는 아직 못 봐서.. 모르겠어요.

수정: 그럼 샤오화님은 브런치에 어떤 주제로 쓰세요?

샤오화: 저는 아무래도 사학과여서 미술사에서도 역사에 초점이 맞춰진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처음 쓴 건 르네상스 미술사.

수정, 가영: 오- 멋있어요. 궁금하네요.

샤오화: 수업에서 많이 착안해서 쓰는데, 기술의 부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게 부흥하게 된 계기가 이탈리아 상인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글을 썼어요.

수정: A모님은 뭘 쓰나요?

A모: 저는.. 다양한 걸 씁니다. 하하

가영: 역 인터뷰하는데? 하하

수정: 인터뷰 너무 권력적이야, 안돼!

(일동 웃음)

A모: 제가 쓴 건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고, 중세부터 이어진 여성과 남성의 죽음을 바라보는 방향? 오필리아 보고 느낀 걸 계기로 썼어요. 하하



A모: 다시 돌아가서! 전시 기획을 하거나 필드에서 일을 하며 학교에서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되셨나요?

가영: 음.. 그렇죠. 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다 하면 미술사를 배울 것 같은데 사실 미술사를 배운다기보다는 잘 읽고, 보는 눈을 길러요. 또 글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지만 과장되지 않게 쓰는 법도 배우고요. 이런 건 확실히 엄청난 도움이 되었죠. 그리고 보는 것에 두려움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19세기 미술에 관심이 있고 러시아라는 다른 지역을 공부하고 있는데, 제 전공이 이번 전시 기획과는 괴리감이 크잖아요? 그래서 기획을 할 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응용한다기보다는 기본적인 자세, 방법을 상기하며 활용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사 전공 타이틀이 이런 활동에 베이스가 되기도 하죠, 사실.


수정: 저도 보는 방식을 배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미술사를 배운다고 좋은 전시 기획을 하는 건 아니겠죠. 제가 많이 하는 비유중에 하나인데, 미술사나 방법을 배운다는 건 안경 같은 거라서 그걸 썼다, 벗었다 하는 거거든요. 페미니즘도 그 시각을, 안경을 쓰는 거예요. 사회사적 방법도 그런 안경을 쓰는 거죠, 그럼 그렇게 세상이 보이잖아요. 어떤 안경을 썼을 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진 않아요. 보는 방식을 장착을 하고 기획은 내가 하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런데 타학교 타과는 또 다른 시각의 안경을 쓸 수 있겠죠.


가영: 안경 비유!


수정: 미술사를 공부한 후 기획을 하면 좋은 게 있어요. 미술사에서 시기적으로 달라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우니까 아주 미시적인 시기들도 파악이 되고요. 작가 한 명을 볼 때도 작가가 (시기적으로) 변화하는 걸 남들보다 잘 캐치할 순 있겠죠. 만약 오브제나 드로잉 작업만 하던 사람이 최근 들어 페인팅을 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가영: 미술사가 아무래도 역사이기 때문에 항상 시대를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의미를 찾고 만들어 낼 수 있죠. 우리가 그걸 잘하고 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나름의 시도는 하고 있고. 그냥 이 그림이 눈에 보기 좋아서 건다가 아닌 시대적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 볼 수 있게 돼요.


수정: 시대적 산물이다.


가영: 기획도 하나의 작품 같은 거잖아요. 그런 걸 염두에 두면서 의미를 배할 수 있게 되죠.




A모: 전시기획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있을까요?

가영: 전시기획은, 전시기획자는 감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동시대인한테 공감이 되는 감각을 잘 캐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수정: 근데 우리는 아직 졸업생도 아니에요. 그냥 하는 말이에요. (웃음)


가영: 맞아요. 그냥 하는 말이에요. (웃음)


샤오화: 지금 인터뷰와 관련된 것은 아니고 저도 그냥 지금 혼란스러워서 묻고 싶은 건데, 설치미술 같은 것, 진짜 만드는 것 말고 그냥 물품을 놓는다던지, 얼마 전에 타이베이 시립미술관에 갔을 때 본 것 중에 전구를 쭉 놓고 가운데를 길처럼 (전구를) 부신 작품이 있었는데, 그게 작가는 의미를 가지고 한 것이겠지만 저는 아직은 이게 예술인가, 그냥 갖다 놓은 것은 아닌가. 이게 아직도 헷갈리는 거예요.


A모: 그니까 약간 작가의 노동력 없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

샤오화: 물론 제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제가 느끼기에는.

A모: 고민도 어쨌든 작가의 노력이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가영: 그냥 시각 차이라서 뭐가 맞고 틀리다는 없죠. 보기 나름이죠. 그걸 미술이라고 할 수도 있고 미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근데 미술이 아니라고 할 거면 합당한 근거를 대서 자신 있게 아니라고 하면 되는 거고.


수정: 제 생각에 그게 미술이 되는 이유는 그 작품에선 오브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술의 개념이 중요해지는 거니까.


가영: 비판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 미술관에 놓였으니까. 권력에 의해서라고 볼 수도 있죠. 이제는 정말 보기 나름인 것 같아요.



A모: 그럼 기획을 하며 가장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면요?

수정: 섭외력도 있어야 하고, 기획력도 있어야 하고.


가영: 가장 먼저 자신인 것 같아요. 어쨌든 기획도 자기 것을 말하는 거니까. 그게 좀 어설프더라도 괜찮아요. 우린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라 어설플 수밖에 없어요. 그다음은 역시 감각인 것 같아요.


수정: 어디서 읽었는데, 예술을 만들고, 가만히 있는 것에 틈을 내고 그 틈에 무엇인가를 심으려는 노력이래요. 그 말이 맞아요.


가영: 진짜 예술가들이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보기에는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정: 가장 빨라.


가영: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 용기, 부지런함, 호기심. (웃음)


수정: 그리고 돈도 필요하죠. (웃음)


가영: 추진력도 필요해요.


A모: 어렵네요. 대단하신 분들.


가영: 아니에요. 일단 용기와 추진력이 있으면 돼요. 저는 추진력이 진짜 없는 편이라 수정 기획이 추진을 하면 따라가는 편이지만요. (웃음) 우리가 사실 경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라 다듬어진 정답을 제시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근데 지금 하면서 느끼는 것은 대강 이런 게 필요한 것 같다. 처음은 무조건 용기.

수정: 포기만 안 하면 돼요.

가영: 약간 재미처럼? 우리는 일단 이걸 직업으로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A모: 이번 전시를 하면서, 새롭게 얻어가거나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수정: 아, 그런데 반응이 오는 게 느껴져요. 저는 이번 전시가 첫 번째가 아니거든요. 몇 번 계속하고, 가영 기획도 발전하고 저도 발전한 부분이 있겠죠? 그럼 그 부분에서 조금씩 조금씩 쉬워지는 게 있어요. 옛날엔 엄청 오래 걸렸던 전시 구성이 좀 쉽게 된다던가. 그리고 지켜보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가영: 이게 프리랜서라면 프리랜서니까요. 제 기획을 전시하는 데에 용기도 더 생기고.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보이는지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수정: 맞아요. 멋지게 보이는 법을 알게 되죠.


가영: 또 배운 점? 배운 점이라고 하면….

A모: 수정 기획님의 추진력?

수정: 가영 기획의 보는 방식?(웃음)




A모: 이런 얘기 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거나 전시가 있다면?

수정: 저 있어요.

A모: 오 역시 추진력.

수정: 저는 노인에 대해서 해보려고요. 노년, 늙음, 노인 이런 거.


가영: 저는 사실 전시기획을 아예 직업으로 해도 될 지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있어요. 공부를 더 할 생각도 있고요.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개인적인 관심으로는 자연물을 좋아해요. 뭔가 많은 자연물을 전시 공간으로 끌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요.


수정: 그리고 저는 또 있어요. 앞서 언급도 했지만 요즘은 정말 뭐든지 가벼워지잖아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대요. 슈퍼 라이트 세대. 모든 게 다 가벼워지는. 그래서 회화도 캔버스에서 요즘엔 종이에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A모: 수채화 뭐 이렇게요?

수정: 네, 가볍고 잘 휘발되는 것, 밀도 없는 것.


가영: 만약 이런 거 하면 저는 그 작품을 팔아보고 싶어요. (웃음)

A모: 공부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하

수정: 가영 기획이 사업가 기질이 있어요.

가영: 현대인이 전시에 가장 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소비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웃음)




A모: 이번 전시를 오시는 관람객이 벌써 계신데, 벌써 두 분을 봤습니다. 혹시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던가.

가영: 잔잔한 기획이 되고 싶어요. 공감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재미있게 보면서.


수정: 재미있게. 너무 무겁지 않게.


가영: 시간이 아깝지 않게.


수정: 친구들에게 많이 소문을 내주세요. 인스타에도 올리고. 하하




A모: 미술사학은, 유학을 필요로 하잖아요. 한국 미술사가 아니고서야 유학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을 많이 받아가지고 이 질문을 넣었거든요. 금전적인 문제나 이런 걸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들을 해주세요.

수정: 사실 저도 국내파여가지고, 응원은 제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웃음)


가영: 미술사학도 어쨌든 사학이니까, 자료를 국내에서 못 구하는데 내가 꼭 이 자료를 구하고 싶으면 보러 가야죠. 근데 사정이 안되면 자신의 관심을 사정에 맞출 수 있어요. 국내에 자료가 충분히 확보되어있는 분야를 하면 되니까. 하지만 유학을 꼭 가고자 한다면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저도 금전이 없는 경우인데.


수정: 금전 있어. 금전 있는 편이에요. (웃음)


가영: 아 금전 없어.

수정: 있는 편이야~ 정말. (웃음)

가영: 나는 없어. 우리 집에는 있을 수 있어도 나는 진짜로 없어. 진짜 없어! (웃음)

(일동 웃음)


수정: 살 길은 찾으면 있어요.

가영: 인문학만 지원하는 개인 장학재단, 국비 장학, 국가 초청 장학 등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수정: 그리고 유학 안 갔다 온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가서 자료를 직접 보고 연구하는 건 좋지만 해외 학위가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술사는 생각보다 1차 자료가 엄청 중요해서, 연구 자료를 구하러 해외에 가는 사람들은 꽤 있어요.


A모: 마지막 질문. 다음 혹은 최종 목표라는 것이 있을까요.

수정: 건물주? (웃음)

A모: 좋네요, 하하

수정: 저는 직업하고 제 정체성이 일치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A모: 일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특별한데요.

수정: 저는 직업은 공무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수정: 저는 일 따로, 전시기획 따로 하는 것도 좋아요. 일은 일대로 하고 정체성은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요. 일치되고 싶지 않아요.


가영: 저는 조금 반대 성향이에요. 노동과 제 정체성이 일치되면 좋겠어요. 제가 필요한 자리에서 저만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면 해요. 제가 흥미로워하는 게 직업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으로는 그게 번역이 될 수도 있고 연구가 될 수도 있고. 아, 그런데 우선 가장 근접한 목표는 석사논문 쓰는 거.


수정: 저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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