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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Jul 12. 2019

당신의 ‘언어’를 찾아서

[A모 06]


  우리는 언어로 소통한다. 관계에는 소통이 필수 불가결하므로 사회에 속한 인간이라면 언어의 습득과 응용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해당 사회의 분위기는 개인의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나아가 한 사회의 구조를 개인에게 각인시킨다. 이 과정에서 언어가 꼭 '말'만은 아니다. 눈짓 혹은 작은 제스처일 수도 있고, 노래나 그림, 영화 혹은 책이 될 수도 있다. 감각은 하나의 언어가 되어 인간의 삶에 개입한다.

 현대 사회에 도달하기 이전까지, 언어는 비교적 단순했다. 선과 악은 종교의 가호 아래 명료하게 나타났고, 따라야 할 교리는 권력과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계급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으며 이 언어의 차이는 나아가 행동과 사고방식을 결정했다.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선구자, 아니면 미친 사람이었다. 수많은 ‘정신병’을 양산해 낸 사회는 견고한 권력으로 보호받았다.  

  그러나 분명한 차별의 구조가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세계는 현대로 올수록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너진다는 게 나쁜 의미만은 아니다. 교리의 견고함이 무너지며 많은 사람의 행동반경이 넓어졌으며 각종 정신병의 정의가 무너지며 개인의 정체성이 존중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무너짐은 단순히 언어로 선포된다고 하여 유효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뭉쳐 그들의 언어로 말하며 투쟁하고 가시화될 때, 비로소 세상에 하나의 언어가 더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미술사에서 변화한 언어를 살펴보자. -ism으로 설명되는 여러 미술사조는 각 시대의 언어를 대변한다. 이들의 시작은 미친 사람인 경우도 있었지만 인정받은 몇몇은 역사에 남아 선구자가 된다. 클로드 모네를 주축으로 한 인상파 화가나 반 고흐 등이 그렇다. 인상파는 고전적 조형 언어에서 벗어나 ‘빛의 활용’이란 새로운 조형 언어를 선보인다. 고흐 역시 재현에 중점을 둔 기존 미술 언어가 아닌 두꺼운 마띠에르를 이용해 ‘감정의 표현’에 중점을 둔 언어를 사용했다. 현대의 작품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평면 회화, 물감의 틀을 깨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언어는 변하고 그 가치 역시 변화한다.  

Mona Hatoum, The Light at the End, 1989

  모나 하툼Mona Hatoum은 매체의 다양성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간의 감각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녀는 시각과 함께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작품에 활용하여 작품의 스펙터클을 강화한다. 예를 들어, <끝에 놓인 빛>은 시각 언어에 촉각을 가미한 작품이다. 수직으로 세워진 여섯 개의 조형물에 다가갈수록 관객은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이는 관객에게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조형물의 형태는 감옥을, 열기는 고문을 연상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감각의 조합은 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며, 다가갈수록 관객을 위협하는 열기가 위험한 유혹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Mona Hatoum, Corps étranger, 1994

  또한 다른 작품인 <낯선 몸>에서는 시각 효과에 소리를 결합하여 관객을 압도한다. 원통형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확대되어 바닥에 투사된 작가의 인체 내부 영상을 바라보고, 소리를 들으며 친숙한 몸의 형태가 아닌 낯선 존재로서의 몸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다. 하툼은 관객에게 해부학적이고 미화되지 않아 오히려 낯선 신체를 제시하여 위화감을 선사한다. 필자는 이 작품의 원통 외관을 하툼의 영역으로 보았는데, 이 관점에서 관객은 작가의 공간을 침범한 것이 된다. 하툼의 작품과 관객은 작품 제목처럼 각자의 ‘낯선 몸’이 되어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고, 관찰당한다. 이처럼 하툼은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참신한 조형 언어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매체가 다양해지며 미술은 보다 다양한 발화를 시도한다. 현실의 재현과 감정의 표현에서 나아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표현하는 것이다. 획일화된 가치가 있던 전통 사회에서 억압당한 다양성이 나타나며, 이러한 미술 작품은 수많은 이들의 언어를 대변한다. 개개인은 성 정체성, 젠더, 인종 등 서로 다른 고유한 이슈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개인을 설명하는 요소가 된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하나의 고정된 해석을 두지 않는다. 작가의 개성은 혼재된 정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좌)Red Room (Parents), 1994 (detail)                            우)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루이스 부르주아는 초기에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을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를 단순히 ‘여성의 신체를 이용한 작가’로 규정할 수는 없다. <붉은 방>에서는 어린 시절 가족 관계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을 대변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파괴>는 가부장제 해체를 외치며 가부장제에서 수호한 성차별,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고통받은 이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좌)니키 리, 힙합 프로젝트 (01), 2001   우)니키 리, 레즈비언 프로젝트 (11), 1997

  니키 리의 경우는 아예 <프로젝트> 작업을 통해 여러 집단의 일원으로 분장한다. 각각의 집단을 분석한 후 특징을 뽑아내 외형과 행동으로 분류되는 인간 집단의 유형을 사진 작업으로 나타낸다. 한 집단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했다 볼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 소수자로 등장한 집단을 가시화시켜 대중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은 다양한 정체성이 혼재하는 현대 사회를 직관적으로 나타냈다는 의의가 있다. 이처럼 미술은 하나의 시각 언어로 현대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거나 혹은 인정받지 못하던 개인들을 가시화시킨다.

   소외된 정체성을 가시화하여 사회가 소수자들을 주목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술은 사회에서 중요한 시각 언어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르네상스 미술과 인상주의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이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조형 언어를 취하는 것처럼, 언어는 정체되지 않고 시대를 반영하며 꾸준히 변화한다. 미술 작품으로 하여금 우리는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또는 전혀 몰랐던 세계를 하나의 미술 작품을 통해 알 수도 있다.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은, 이제까지 그랬듯 진화된 언어를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를 대변하며 살아나갈 것이다.  [A모]



도판 정보

/Mona Hatoum, The Light at the End, 1989, Metal frame and six electric heating elements, 166 x 142 x 5 cm. (65 1/4 x 56 x 2 in.), Installation view at The Showroom, London, © Mona Hatoum. Courtesy the artist (Photo: Edward Woodman).

/Mona Hatoum, <Corps étranger>, 1994, Video installation with cylindrical wooden structure, video projector and player, amplifier and four speakers, 350 x 300 x 300 cm, Installation view at Centre Pompidou, Paris, © Mona Hatoum. Courtesy Centre Pompidou, Mnam-CCI / Dist RMN-GP (Photo: Philippe Migeat). /Mona Hatoum, Corps étranger (detail), 1994, Video installation with cylindrical wooden structure, video projector and player, amplifier and four speakers, 350 x 300 x 300 cm, Installation view at Centre Pompidou, Paris, © Mona Hatoum. Courtesy Centre Pompidou, Mnam-CCI / Dist RMN-GP (Photo: Philippe Migeat).

/louise bourgeois, Red Room (Parents), 1994 (detail), Wood, metal, rubber, fabric, marble, glass and mirror, 247.7 x 426.7 x 424.2 cm, Private Collection,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Maximilian Geuter, © The Easton Foundation / VEGAP, Madrid

/louise bourgeois,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Photo: Rafael Lobato / © Louise Bourgeois)

/니키 리, 힙합 프로젝트 (01), 디지털 C 프린트, 75x101cm, 2001/ http://oneandj.com/blog/2017/09/13/니키-리

/니키 리, 레즈비언 프로젝트 (11), 디지털 C 프린트, 71.5x54cm, 1997/http://oneandj.com/blog/2017/09/13/니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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