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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Aug 30. 2019

옥인 콜렉티브가 날 울린 이유

E앙데팡당X아트렉처 / 보배

1. (왼) 진시우(44)작가, (오) 이정민(48)작가

 이 글은 여태 연재해 온 글들보다 더 주관적인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19년 8월 18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건조한 표정으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전시해설가의 계정에서 발견한 쎄한 텍스트 - ‘옥인 콜렉티브 부부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삼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여기 저기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옥인 콜렉티브 이정민, 진시우 부부(이하 작가 부부)의 부고 소식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작가 부부는 세상을 떠나기 전 가깝게 지내며 활동했던 분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메일을 보냈다. 메일 내용에 따르면 작년 겨울부터 옥인 콜렉티브의 내부적 문제가 불거졌으며, 예정된 전시도 다수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옥인 콜렉티브의 이름 정도만 알 뿐, 눈여겨 본 작품도 없고 작가와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며칠간 옥인 작가 부부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틈틈이 그들의 이름을 검색하여 찾아 본 뉴스와 추모 글들은 매번 나를 다시 울렸다. 옥인 콜렉티브의 소식에 나는 왜 슬픔을 넘어 절망했을까.

 내가 절망과 암울함을 느낀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예술 활동에 대한 제도적, 경제적 지원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이다. 옥인 콜렉티브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활동 결과물에 대한 좋은 평가 또한 받고 있는, 예술계에서는 나름 인정받고 성공한 작가 집단이다. ‘2018 올해의 작가’ 후보로 선정돼 ‘우리는 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는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올해의 작가상 2018>전시에 참여한 적 있으며, 같은 해 광주 비엔날레에 참여하여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과 언어를 끌어 온 작품을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비엔날레는 국내 최정상에 위치한 예술 기관, 행사이다. 예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어려웠다는 현실이 믿기 어렵다. 내가 상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예술계는 자본 편향이 심한듯하다.


2. 옥인 콜렉티브(이정민, 진시우), <통로와 비결정 지도>, 이예주 디자이너와 협업, 텍스트 인쇄물, 가변크기, 2018

 두 번째,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 활동을 펼쳐온 분들이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제기한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증명한 느낌이다. 이 느낌은 패배감이다.

 옥인 콜렉티브는 철거 중인 아파트에 남겨진 주민들과 함께 상영회, 전시, 콘서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기타 회사 콜트 콜텍에서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공연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재난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위험사회를 풍자하는 체조를 만드는 증 기존의 틀을 벗어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문제에 개입¹해 왔다. 애초 옥인 콜렉티브가 만들어진 계기가 인왕산 자락의 옥인 아파트 강제 철거였다. 젠트리피케이션²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하던 2009년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야기들을 시각화하는 작업들을 계속해왔다. 그렇기에 이 소식이 더 슬프고 비참하다. 사회의 문제점을 건드리는 작업을 하다 보니 대중에게는 관심과 응원을 받았을지라도 정작 예술가의 예술을 지원하는 권력에게는 배제당한 것인가 싶어 너무나 씁쓸하다.

3. 옥인 콜렉티브,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 2009-2010

 마지막 메일 끝에 그들은 “바보 같겠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들은 진실로 작가였으며 예술이 전부였던 것이다.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서 예술가인 작가 부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유일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4.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을 검토 중인 진시우, 이정민 부부

 죽음으로써 옥인 콜렉티브가 재조명되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나도 똑같이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예술가의 창작의 고통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줄 수는 없을까?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최소 생계가 유지되는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데, 예술은 지난 몇 백년 동안 자본과 은밀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래서인지 자본과 권력을 따라가는 자만이 살아남는 잔혹한 생태계를 가진 것 같다. 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싶은 나는 개인적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는 이런 연유로 작업 활동이나 삶을 포기하는 작가들이 또 생기지 않도록 정말 잘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균열Ⅱ>전에 전시된 옥인 콜렉티브의 영상 작품 <서울 데카당스³>를 꼼꼼히 감상하는 것으로 작은 추모를 했다. 이정민, 진시우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세요.

5. 옥인 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8min, 2013

¹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 전 옥인콜렉티브 소개,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1808070001073, 접속일 2019.8.22.

²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44365&cid=40942&categoryId=31637, 접속일 2019.8.29.).

³ <서울 데카당스(2013)>는 북한 계정의 글을 리트윗하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박정근의 트위터 아이디이다. 옥인 콜렉티브는 이 작품에서 박정근의 2심 승소를 위해 연기 지도자를 섭외하여 최후진술서를 읽는 연습을 하게 했다.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http://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do?menuId=2010000000&wrkMngNo=NM-07495, 접속일 2019.8.30.)


이미지 출처

1. 국립현대미술관

2. https://m.blog.naver.com/indiink/221436510989 ,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okincollective.tumblr.com 참고

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47&aid=0002237619

4. http://www.mmca.go.kr/pr/blogDetail.do?bId=201809030000111 

5.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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