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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Sep 16. 2019

화가와 미술사가의 줄타기, 한국 단색화

E앙데팡당X아트렉처 / A모

 한국의 단색화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부자 그림’으로 대표된다. 한국 단색화가 부유한 뒷배경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반기를 들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단색화의 시작은 서구 모더니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조셉 앨버스나 프랭크 스텔라로 대표되는 미니멀 회화와, 보다 정신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한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의 단색화가 있다. 1960년대 초부터 미국에 확산된 미니멀 회화 추상은 회화가 가지는 형태와 의미를 모두 벗어던진 채 본질적인 물질성을 강조한다. 관객은 프랭크 스텔라의 <인도의 여황제>를 보며 그림 속에서 ‘인도’, ‘여자’ 혹은 ‘황제’를 나타내는 구상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물감이 칠해진 표면과 특이한 형태의 캔버스뿐. 하나하나 계산되어 붓질의 흔적도 없이 깨끗한 표면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걸 보고 무엇을 느끼란 말인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 비현실적인 회화 작품이 주는 경이와 신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관객의 당황과 혼란을 의도했다. 미니멀 회화는 잭슨 폴록 등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림 안에 붓질과 마띠에르 등으로 나타나는 작가의 감정 표현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이들은 감정의 우연성을 배재하고 회화에 내용을 담는 것을 거부하며 철저히 계산적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해낸다. 또한 회화의 본질은 캔버스와 물감이 만들어내는 평면성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캔버스 평면 그 자체를 관객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표현만 구현해내고 있다. 스텔라의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유명한 말이 이들의 회화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따라서 미니멀 회화에 나타난 단색화는 내용과 표현이 없는 ‘표면’ 그 자체의 회화라 정리할 수 있겠다.

프랑크 스텔라, Empress of india, 1965

 로스코와 뉴먼으로 대표되는 추상 표현주의계 회화는 보다 감정적이다. 이들은 추상 표현주의에 더 가까운 사람들로, 미니멀 회화보다 이른 시기인 40-50년대에 주로 등장한다. 이들의 추상 작업은 구상 표현 없이 추상적인 색과 선으로 이루어진 화면이기에 언뜻 미니멀 회화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로스코는 색을 얇게 겹쳐 바르거나 명확하지 않은 색 간의 경계선을 통해 인간의 예민한 감정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로스코의 작업을 바라보며 감정적 동요, 나아가 종교적 체험까지 하였다고 간증한다. 또한 뉴먼은 그림을 가르는 얇은 선을 통해 극과 극을 매개하는 존재를 표현해내는 등 보다 철학적이고 작가의 주관적 해석이 많이 들어간 작품을 제작한다. 따라서 미니멀리즘과 달리 추상 표현주의에서 나타난 단색화는 작가의 주관적 해석과 철학적 견해가 표현된 회화로 정의할 수 있다.

좌)마크 로스코 우)바넷 뉴먼

 서구의 두 추상 회화는 언뜻 비슷한 모습인 듯 하나 작가의 의도와 의미가 매우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어떠한가?


 미술사가들은 1960년대 말 박서보가 묘법을 사용한 추상 회화를 발표하면서 한국 단색화가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 단색화는 백색을 비롯한 무채색이 주류를 이룬다. 색을 제외하고 단색화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가 반복성이다. 많은 작가들이 적은 재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유화와 연필을 사용한 박서보 화백, 화선지에 반복적으로 구멍을 뚫은 권영우 화백 등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적은 재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둘째, 자연스레 재료의 물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연필이 긁어낸 유화의 질감이나, 질긴 화선지를 뚫으며 생기는 거친 구멍은 이들이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는지 관객이 쉽게 추측하게 만든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작가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셋째, 정신성이다. 많은 연구와 인내가 필요한 작업을 하며 작가가 재료와 동화되고, 지루한 반복 행위를 통한 일종의 인내, 수양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했다.


 서구 회화에 분리되어 나타난 두 특성이 한국 단색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미니멀리즘의 평면성, 재료의 물성이 나타나는 동시에 일종의 정신적 특징도 등장한 것에서 미루어 보아 서구 회화가 한국 단색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미니멀 회화는 1960년대 초반 시작하여 65, 66년도에 많이 그려졌고 동시에 여러 잡지, 뉴스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다. 많은 미술사가는 서구 회화가 한국 회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소개된 시기나 외적 특징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를 포함하여, 한국 단색화가 독립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작가 개개인이 개인적인 계기를 시작으로 단색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언급했기 때문이다.

박서보, 묘법(描法), 1977

 한국 단색화의 원인을 밝히려는 까닭은 이 결과에 따라 단색화가 지니는 의의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현 한국 화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백색 단색화 미학의 근원이 서구의 영향인지, 자주적 발전인지 정의하는 건 한국 화단이 서구 미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평가할 기준이 될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작가와 미술사가의 팽팽한 대립을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일 테다.


박서보, 묘법(描法).(Écriture No.01-77, 1977, 르몽드지에 연필과 유채, 33.5x50㎝,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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