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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e우먼 Mar 25. 2021

irony #02 탈선과 탈색

내 일상에서 발견한 아이러니한 순간들


공자는 마흔에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했고  

평범한 나는 마흔에 반백이 되었다.   


그것도 만 나이, 음력으로도 

빼도 박도 못하는 나이, 마흔.


미용실의 출입문은 나이 든 중년의 아줌마가 

회춘의 통로로 한 달에 한 번 씩 애용되던 곳이다. 

염모제의 성분이 친환경을 좇고 DNA 유전자가 100달러에 분석되는 세상, 여전히 탈모와 새치는 여직 마켓의 희망으로 비워져 있다. 


마흔 즈음에 염색을 그만둔 엄마의 마흔 이후의 사진첩은 딱 떨어지는 검은 머리 단발에서 쪽진 머리로 변해가며 '00동 흰머리 아줌마'로 불리며 엄마의 단골 가게에서 아빠의 외상이 가능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완벽히 빛나는 엄마의 흰머리는 뉴욕이 아닌 시골 동네에서 염색하는 아줌마들의 부러움의 대상도 되었다가 잔소리의 대상도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스물다섯 해를 지냈다. 


나는 주름 없이 팽팽한 이마에 흰머리가 내려앉은 엄마의 헤어 스타일이 사춘기 시절 조금 창피도 하였다.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 반장을 도맡던 터라 학부형 회의로 자주 학교의 호출이 잦았는데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검은 머리로 염색 좀 하고 오라고 야단을 했고 엄마는 꿋꿋이 흰머리를 한 데 묶어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입술과 눈에 그윽한 메이크업과 큼직한 보석 장식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학부형 회장급 포스를 발휘하고 나타났다. 


주관이 확실했던 엄마의 승리였다. 흰 머리카락이 자연스레 내려와 결국 머리 전체가 하얗게 덮인 엄마의 모습이 언젠가부터 부럽기도 했고 올곧은 그녀의 철학에 세뇌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뒤로는 반찬 주러 오시는 날 엄마와의 데이트에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을 이용해 자기의 멋으로 부릴 줄 아는 여자였다. 





이제부터가 내 이야기인데, 나는 서른 초반부터 흰머리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핀셋을 들고 하나 둘 뽑아내면 되는 수준이던 것이 발전해 마감 스트레스가 쌓이면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회사의 테라스에 모여 내 새치 뽑기를 할 만큼 사내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나를 중간에 두고 세네 명이 모여 머리를 헤집어 내 손에 새치를 쥐어주던 모습은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전지전능한 나무 아래서 사랑을 나누던 두 주인공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인다며 자주 배꼽을 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손 끝이 야무지던 친구의 선언이 있었다. 흰머리 하나에 십원씩 주었다면 200만 원어치 정도는 봉사해준 회사 디자이너 이 모 씨 왈, 

"이제 그만해야겠어. 뽑는 속도가 나는 걸 못 따라잡아. 이대로 뽑다가 슬기 씨, 대머리가 되겠어.

잡지에 기사를 쓰고 광고도 제작하는 작은 에이전시를 다녔던 그때, 왕래하던 유명 헤어 디자이너 친구는 내게 뽑지 말고 자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뽑는 게 제 맛이라던 새치 뽑기 동료는 잘라보자는 내 의견에 이제 그만 하라며 염색을 추천했고 나는 집에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새치 염색제를 셀프로 발라 헹구어 내는 방법으로 검은 머리로 한 달에 한 번 새치 염색을 하게 되었다.  

시집도 가야 하고 주말 틈틈이 선보 보아야 했던 당시, 올드미스였던 나는 그렇게라도 해서 내 젊음에 흠집이 날 만한 노화의 흔적을 가리며 반려자 찾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우연과 필연으로 점철된 결혼 원정기는 차치하고, 올해로 유부녀 5년 차에 접어 들었다.  

머리 이야기로 돌아와, 혼인 신고를 한 다음 날 줄곧 꿈꾸었던 어린 시절 외화 <컬리 수> 포스터를 들고 미용실을 찾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컬리수 스타일을 꿈꾸던 내가 받은 최종 결과물은 케니 지, 메두사라는 새로운 별명. 

볼륨 헤어는 흰머리와 검은 머리의 경계가 눈에 덜 띄는 착시효과를 준다. 컬이 시작되는 두피 가까운 머리칼이 빛이 반사되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티가 많이 안 난다. 그렇게 내 새치 염색은 한 달 반의 간격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4년 차 접어드는 작은 광고 에이전시를 운영했는데 업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불안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잠들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뭐든지 한다면 일단 해보는 패기로 강남에 법인 사업체까지 올린 나는 흰머리가 뒤덮인 체 두문불출하며 1년 동안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2019년 어느 날, 사무실 컴퓨터 6대가 서버를 통해 랜섬웨어에 감염됐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달미(수지)의 스타트업 사무실 컴퓨터 서버가 랜섬웨어에 감염된 장면이 나왔다. 컴퓨터가 느려지는 것, 자꾸 다운되는 증상, 파일이 하나 둘 잠기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남편과 나는 우리의 상황과 똑같았던 그 날을 떠올렸다. 

극 중에서 도산(남주혁)은 달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사무실로 날아가 순식간에 감염 경로를 차단하고 회사와 프로젝트를 지켜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서울대 박사님도 이미 감염된 파일은 되살리지 못했고 하나라도 건져보려 우왕좌왕하던 사이 일 년이 넘게 준비한 테라 용량의 수많은 프로젝트와 자료 조사, 각종 논문 자료들이 자물쇠로 잠겨 버렸다. 


파일을 풀고 싶으면 건 당 한 화로 약 30만 원을 입금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며 팀원들과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장 난 기차는 일단 멈추고 승객을 하자시키고 정비를 받아야 한다. 

나와 회사를 위해 5년 이 넘게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의 꿈을 응원하며 차례로 떠나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족쇄가 풀린지도 모르는 서커스단의 코끼리 마냥 할 일 없는 사무실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일은 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귀가 후 드레스 룸에서에 일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전신 거울에 웬 초로 하게 행색의 병색이 완연한 여자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새빨간 눈동자에서는 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양 볼은 빼쯕하게 말라비틀어진, 안색은 말할 것 없이 초췌해 그 자리에서 나는 옷을 껴 입는 것도 멈출 수밖에 없았다.  거울 속 그녀는 내 행동을 따라 하며 내 두 눈을 마주 보며 아주 슬픈 눈으로 거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한 참을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나였다. 

슬프게도 나였다. 

.

.

.

.

.

.

거울 속 그녀와 마주한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장 난 기차의 기관사였던 내가 나를 정비하는 것은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우두 카니 선, 세상에 지쳐 당장이라도 눈물을 펑펑 쏟을 것 같은 그녀를 안고 화장실로 가 세수를 시켰다. 

아이와 남편이 깰까 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시동도 못 거는 벤츠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대로는 절대 안 되었다. 그 어떤 일을 해도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거울 속에서 한 없이 슬프게 말을 걸던 그녀와 이별을 해야 했다. 


다음 날 단골 미용실을 예약하고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그녀를 보내고 잃어버린 나를 불러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을 요량으로 병원 대신 미용실을 찾았다  


"새치 염색 말고 탈색을 해 주세요."

내 파격적인 주문에 원장님의 눈이 커다래 졌다. 

중학교 때 학주의 눈을 피해 아빠의 맥주와 식염수로 머리를 감아 붉은빛이 도는 머리색은 질풍노도의 시절 내가 한 탈선이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탈선을 감행해야 했다. 이 노선을 타고 질주하다가는 마주오는 다른 기차들에 정면으로 들이받고 마감하거나 알 수 없는 고장으로 인생 전체가 멈추어 버릴 게 뻔했다.  


귀 밑 3센티 정도의 단발머리로 싹둑 자르고 모발 전체의 색을 세 번에 걸쳐 뱄다. 


주름진 눈가와 두툼해진 턱선에 마이너스만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지금 모습 그대로 나를 대표하는 사진




마흔이란 숫자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지난날, 자만심과 아집에 둘러 쌓여 나 만이 정답이고 전문가이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첨탑을 피사의 사탑급으로 쌓던 나. 누군가의 잣대에 딱 들어맞는 일을 해결하는 단 사람이 되고자 내 색 없이 남이 좋아하는 것에만 맞추어 살 던 병든 그녀는 이제 없다. 


11장의 카드를 통해 내 퍼스널 컬러를 찾아볼 수 있는 진단 카드


전 사업의 후반기에 준비하며 베타 테스트를 마친 맞춤형 컬러 기반의 인물 사진 서비스. 우리는 그 일을 통해 비전을 꿈꾸었다. 특허 출원도 하고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바로 그때 멈추어 버린 기차가 작년부터 천천히 칙칙폭폭 노선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혼자 탑승하게 된 나는 역삼동에 위치한 벤처타운에서 여성창업가들을 위한 프로젝트로 다시, 일어나 걷고 있다. 잘 나가던 시절의 추억에 파묻혀 이미 지나간 것들을 수시로 들춰보던 내가 이 곳에 입주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탈색한 단발머리로 가장 친한 사진가를 찾아 내 사진을 촬영한 일이었다. 빨간 배경의 인물 사진을 '슬기로운e우먼'이라는 모든 채널에 걸고 시작하는 여성들과 함께 책을 읽고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가는 과정을 코칭하며 대표 사진을 디렉팅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원데이 시프트, 가치스쿨로 여러분을 만났던 자리


타고난 내 색을 가리고자 염색을 해 왔던 과거와 달리 탈색은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내게 도움이 된다. 어딜 가나 튀어 보인다는 단점도 있지만 남편은 그게 좋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나를 찾기도 쉽고 경계를 타고 솟아나는 흰 머리카락이 탈색모인지, 검은 머리인지 잘 구분이 안가 오히려 세 달에 한 번 꼴로 미용실을 찾는 경제적 이점도 있다. 


까진 아줌마가 아니라, 나를 내려놓음 즉, 고집과 아집을 뺀 순수한 내 모습 자체로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모인다. 태생이 노랗고 까무잡잡한 피부라 파스텔 계열의 옷은 꿈도 꾸지 못했던 옷장에 하나 둘 화사한 컬러의 옷들이 자리하는 기쁨도 느낀다. 그렇게 나는 내 모습 그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해왔던 일을 천천히 해나가고 있다. 이제 막 사부작 거리는 내게 여전히 불안전한 생각과 두려움도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하고 명상을 통해 공포와 두려움, 욕심과 좋지 않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크다.


감사하게도 내 이야기를 매체를 통해 알릴 수 있었던 프라임경제 기사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하던 일로 가고자 했던 목표 지점과 같다. 차이는 반대 방향으로 수많은 길을 내고 닦아가면서 현실에서 궤가 맞춰지는 방식이다.  빠르게 바뀌는 것들, 나에게 소음이 되는 것들과 거리를 두고 내 템포대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감사로 여기며 산다. 

새벽 서너 시쯤 잠에 들어 아침 11시에 일어나던 내가, 밤 11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 반에 눈을 뜨는 생활로 바뀌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감사일기를 쓰며 좋은 책으로 시작하는 하루 

기적이다.   


재작년, 그때 회사의 서버가 랜섬웨어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라는 인생 기차가 제 속도로 달릴 수 있었을까? 밑바닥을 쳐 보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따스한 위로를 건넬 수 있었을까? 

랜섬웨어에 감염된 날로부터 탈색머리를 갖게 된 날, 내 안의 지친 내가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주어진 소중한 삶에서 행복하다 여기는 것들을 함께 나누며 꼭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요즘이 나는 좋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아이러니는 이렇게 탈선을 상징하는 탈색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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