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한 달 살기
WHY
왜(WHY) 떠나야 할지 대해 5년 간 틈틈이 고민했다. 일 중독자였던 내가 품었던 아지랑이 같은 바람이 막연했다면 이번엔 달랐다. 아이는 혼자 먹고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3년 간 일했던 사무실의 임대 계약이 만료되었으며 남편은 때마침 이직을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속도로 많은 것을 접하게 되는 주의력결핍 세상에서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일은 귀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적인 삶에 있어 몰입은 위험을 수반한다.
하나에 집중하며 깊어지는 동안 나머지에는 블라인드가 쳐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눈이 머는 것이다.
잘 보기 위해 떠나야 했다. 나와 가족 모두에게 멈출 용기와 주위의 환기가 필요했다.
환기란, 창문을 열고 주변 공기를 정화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겐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며, 얼마간 문을 열어둘지 환기를 마친 다음 언제 닫을 예정인지를 생각해볼 시간이 주어졌다.
'창'을 삶의 배경에 비유해 본다면, 한 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너른 유리창으로 화사한 자연광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벽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큰 통창이되, 인적이 드문 곳이어야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여닫기 편한 섹션으로 나누어진 나무 프레임이 좋겠고 창문 너머에는 첨단도시보다 진짜 숲과 자연이 펼쳐지길 바랐다. 이곳으로 연결되는 길은 좁고 어둡지만 눈부신 빛이 한 걸음씩 인도하는 길이 어울리겠지. 긴 여정 동안 두려움과 허기진 사람들과 나눠 먹을 플레이팅과 무릎에 앉히고 먹일 아기가 있는 가정이 좋겠다. 조형미 있는 센터피스와 축복받을 만한 이벤트, 갤러리처럼 감상할 수 있는 볼거리가 있어야 왔던 길에 대한 보상이 되겠지. 잘 먹었으면 운동을 해야 할 텐데 내겐 균형과 스트레칭이 필요하니 요가가 맞겠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잘 알려진 랜드마크를 만난다면 그 앞에서 차 한 잔의 여유도 갖고 싶고...
세상을 향해 독립을 외치고 난 이상, 스스로 드라이버를 쥐고 바람과 각도를 조준해야 한다. 타수를 줄이기 위해 볼을 목표 방향으로 최대한 멀리 보내는 것이 좋다.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한 이 과정은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용기를 낸 주인공들을 위해 집중해서 수행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공을 찾으러 가는 길은 팀워크로 관계 맺은 사람들과 신호와 열을 지켜 함께 이동할 것이다. 이내 그 결실을 한 바구니 수확해 배 터지게 먹고 장에도 내다 팔길 바란다.
왜 떠나고 싶은가, 언제 떠나야 할지 5년에 걸친 오랜 고민은 신기하게도 한 달 전 잘라 붙인 내 DCT보드속에 모두 실려 있었다. 조각보처럼 붙인 꿈들이 나와 우리에게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야
NOT EASY
'쉽지 않다'는 것에 기준을 무얼까.
누구보다 열심히 일 할 나이 40대. 그것도 맞벌이 부부가 갑자기 한 달 살기를 현실에서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월급쟁이일 경우, 한 달 동안 연차를 낸다는 보고가 쉽지 않고 자영업자의 경우, 한 달 동안 가게문을 닫거나 임시 휴업 통보가 쉽지 않을 일이다.
더구나 교육 과정에 있는 아이가 있다면 이 세 가지 쳇바퀴를 동시에 멈추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내가, 우리 가족이 함께 해냈고 다시 돌아와 이렇게 여정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HOW
5년 전 삶의 급 커브길에서 바리바리 짊어진 짐을 떨구어 버렸던 끔찍한 경험을 감안, 이번엔 정말 간소해야 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분리할 것은 분리해 두고.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었으니 디테일한 일정 또한 생략했지만 생략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했다.
3년 간 입주했던 사무실에서 짐을 빼기 전, 운영장으로 있는 커뮤니티 전체 회원 분들께 조심스레 메시지를 띄웠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잘 쉬고 오라는 말씀을 전해주었고 답정너식 통보였음에도 축복을 보내주셨기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휴직 중인 남편은 여러 인크루팅 사이트에서 로그아웃했다. 마음의 평온을 찾으며 비전이 맞는 기업을 탐색할 마음가짐과 아이 유치원 선생님께는 출국과 귀국 일정이 적힌 현장체험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꿈처럼 현실로 실행하기 쉽지 않던 수년간의 바람과 달리 우리 안식월을 세상에 전달할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WHERE
안식월을 갖기로 한 다음 유치원에 제출할 신청서에 나라와 체험을 채워 넣을 곳이 필요했는데 그때 읽고 있던 책에서 스페인과 가톨릭 미술사에 대한 것. 책머리말에 돈키호테와 산초를 빗댄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아, 이거다'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의 스페인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말인데 스페인이란 내게 탱고(틀렸다, 플라멩코인데), 가우디로 먹고사는 나라, 혹은 패스트 패션으로 디자인을 찍어내는 패션공업 국가. 올리브가 잘 자라는 날씨 좋은 곳 정도였다. 스페인만은 아니라던 남편의 대체 가능한 취향은 결국 우리를 스페인으로 이끌었고 여정동안 스페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우리는 스페인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스페인이 우리 곁에 와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