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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e우먼 May 02. 2023

양면의 가능성

 스페인 한 달 살기 sustainable 01   

왜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오랜 고민에 대한 '방법'으로 한 달 살기를 택했다면, 목적지에서는 삶의 목표를 찾고 싶었다. 어째서 나와 주변에 스페인에 관련된 사람과 정보, 경험들이 이토록 가까이 와 있었을까? 거의 관심도 정보도 없던 스페인이 우리 곁에 끌어당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스페인에서 그 이유를 찾길 바라며 비행기에 올랐다. 


고민은 깊었지만 결정 후 출국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준비에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경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료와 숙박비는 일찍 알아볼수록 저렴해진다는 것이 상식이니 비용 절감에 대한 욕심은 일찍 감치 포기한 우리였다. 꼭 필요한 출국 절차만 마치고 떠나자는 미션 하나 만으로 고민할 것들의 무게가 확 줄었다.  


왜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오랜 고민에 대한 방법으로 스페인 한 달 살기를 결정한 다음, 그곳에서 찾고 싶던 일과 삶의 목적을 알아차리고 싶었다. 





엔진 켜기

탈출의 짜릿함과 복귀의 불안함이 공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무위' 틈틈이 먹고 살 '도식' 걱정이 여정 내내 불쑬 튀어나오는 것이 한 달 살기의 진심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로 하루를 보내면 다음날엔 어김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지'란 마음으로 무리한 일정을 구겨 넣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자주 느꼈다.   


떠나볼 사람과 필요한 이웃에게 들려주고 싶던 이야기들이 있다. 비록 프롤로그 한 편 쓰고 일주일을 보냈지만 기어이 일주일에 세 번은 노력해 보련다. 그러니 한 달 살이 기록은 다시 나아갈 나를 위한 엔진이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고 말 경험을 남기는 것이 곧 비워내는 과정이니까. 매일 반복하다 보면 그 끝에 툭 하고 끄집어낼 수 있는 무언가 하나 남아 발견하길 바란다.



태양이 쏟아지는 눈부신 바다라는 뜻의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 스페인 남부에 묵는 동안 거실 밖으로는 푸른 잔디 정원이 빛났고 매일 아침 침실 커튼을 열면 새파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평선이 펼쳐지던 곳.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아, 우리가 스페인에 있구나'하며 행복감을 느끼던 스페인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왔다.


낀 나라 랩소디

로마의 변방에서 무적함대로 세계를 제패했던 나라.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가 되기도 하고 고립된 독재 국가로 추락하기도 했던 나라 스페인. 유럽 서남쪽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한 스페인은 시대에 따른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반도국가 특유의 지리학적 위치 때문일까, 스페인은 우리와도 많이 닮았다. 열방의 강대국 사이에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수시로 질문받고 선택을 강요당하며 그들의 필요에 의해 같은 편도 되었다가 배신과 침략으로 부대끼는 사이, 특수한 능력이 길러졌다. 사물이나 현상의 앞뒤, 맥락을 통찰하는 양면성과 자신의 관점을 문화로 승화시키는 예술성이다.

위로는 피레네 산맥이 유럽과 경계를 긋고 바다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지척으로 연결되는 도시, 바르셀로나.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곧장 닿는 직항을 선택했다. 유럽을 잇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경계가 되기도 하는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한국으로 치면 부산 같은 곳이다. 1700년대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문 열고 산업혁명을 받아들인 개방형 도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통로도 되었다가 경계도 되는 스페인과 바르셀로나는 양면적이다. 예전 로마인들은 문에 앞뒤가 없다고 생각해서 도시나 집 대문에 두 개의 얼굴을 새겨 넣은 기록이 많다. 이 두 얼굴로부터 집의 시작과 끝, 모든 사물과 때(계절)의 시작과 끝을 경계하는 야누스(JANUS)가 왔다. 양면성을 가진 사람들을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야누스를 어원으로 한 1월(January)은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난해의 끝을 의미한다. 설렘과 후회가 공전하는 야누스.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 메타적 키워드는 나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일까.  



차이

평범한 동양인 가족으로 한 달을 살면서 가장 큰 생활의 변화는 길어진 식사시간. 한국에선 길어야 30분이던 식사 시간이 디저트까지 즐기며 나누는 동안 한 시간을 넘기고 그 덕에 우리는 테이블에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여정의 초반인 어느 날의 경험. 즐겁게 대화하는 우리 테이블에 자꾸 눈길을 주던 웨이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접시를 하나 슬쩍 빼가는가 하면, 대화 도중 끼어들어 다 먹었는지 물으며 접시를 치워가려는 행동에 기분이 무척 상했다. 후로도 웨이터는 우리 테이블을 주시하며 언제 끼어들지 수시로 감시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가라는 행동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다니, 접시가 모자란 건가? 아직 다 먹지도 못했는데. 우리가 동양인이라 무시하는 게 틀림없어. 여기 다시는 오지말자."



스페인에서는 차나 식사를 마친 그릇이나 치울 거리가 남아 있는 테이블을 실례로 여긴다. 주문을 받고 서빙을 마친 웨이터의 임무는 홀을 부지런히 돌며 접시를 회수하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일. 손님들이 보다 쾌적한 테이블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마인드가 우리와 정반대다. 한국에서 종업원이 그릇을 뺀다는 의미는 다음 사람을 위해 어서 자리를 비워주라는 암묵적적인 메시지인데... 이렇게나 다른 문화적 차이라니, 인정사정없는 식당 주인과 결벽증 앓는 야박한 웨이터라 원망했던 나의 작은 세상, 반성한다.    

빵 나누는 사이

24시간을 함께 여행하며 집안일까지 하다 보니 해가 지면 잠이 오고 아침에 눈이 떠졌다. 다른 언어 체계로 소통하지 못하니 사소한 불편은 씹어 삼켰고 이로 인해 마땅히 제공받을 서비스를 놓치기도 했다.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자유여행은 낯선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동하고 먹고 잠자며 소통하는지 인식할 수 있다. 예컨대 정보를 주로 책에서 찾는 나와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남편. 목적지로 이동할 때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따라가는 남편과 동네 사람들에게 빠른 길이나 더 나은 팁을 질문하는 나. 

이렇게 같은 목표를 정반대 방법으로 푸는 파트너와 함께하면 서로 비교해 보며 더 나은 기회나 제3의 선택지를 찾아낼 가능성이 많다. 단, 전혀 다른 관점으로 오해나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도 각오할 것. 그러니 새로운 환경에서는 우리 모두 작은 세상에서 살다 온 초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낯선 환경과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이 전혀 안 통할 수도 있고 당연시 했던 관행이 큰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모두가 처음이라는 마음을 가지면 정답이 없다는 결론도 나온다. 새로운 장소에서 방법과 수단을 놓고 갈등하거나 고민하는 모두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오해는 덮어두기보다 소통하며 좁혀가는 것이 현명하다. 잘 아는 것을 나누고 모르는 분야라면 상대를 믿고 골을 패스하는 것도 여정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다름'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불편함' 역시 운명 공동체의 여정에 필수로 등장하는 페르소나다. 그러니 여정은 계속돼야 한다. 그 불편함 속에 엄청난 기회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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