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 너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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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만 두고 나가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귀촌하자마자 만두가 찾아온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서로 으르렁거리던 것도 잠시, 고등어와 만두 둘이 서로 포개져 누운 채로 귀가한 나를 맞이하는 모습이 참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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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로 혼자 있는 고등어가 안쓰럽다고 다른 고양이를 들일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두는 아주 많은 약으로 억지로 버텼기 때문에 수명보다 훨씬 길게 살다 갔다는 걸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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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가 일순위를 차지한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등어는 점점 더 심약한 쫄보가 될 수 밖에 없었고 만두가 떠나서 많이 슬프지만 고등어만 두고 보면 이제야 좀 편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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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격막이 터지고 장기가 뒤엉켜 협착된 채로 자발적 숨길을 만들어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고등어는 사실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똑같이 아픈 고양이일 뿐인데 만두가 살아있는 동안 대부분을 양보하며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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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분리불안 증세는 더 심해진 것 같다. 사고를 당하자마자 엄마 고양이 이쁜이는 고등어를 그냥 내버려두기 시작했고 그 다음으로 만난 보호자가 나였으니, 엄마 대신으로 생각하는 내 사랑을 만두와 나눠 가져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어는 독립적 성격이 매력인 다른 건강한 고양이들에 비해 의존감이 높은 편이라 늘 애정결핍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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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착된 장기와 좁디좁은 숨길을 가진 고등어는 오늘도 크게 가슴을 부풀린 다음 다시 반대로 조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빠른 박자로 쪼개지는 가쁜 숨을 쉰다. 본능적으로 적게 먹어야 한다는 걸 알고 소식을 하기 때문에 오동통한 뱃살 같은 것도 평생 볼 수 없을 것이다. 배를 열어보는 것 자체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서 중성화수술은 이미 오래 전에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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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내가 실수로 잃어버리고 길에서 떠돌다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고등어의 장기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잔뜩 움츠린 쫄보 태세로 미세한 소리에 쉴 새 없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창밖의 또 다른 삶을 계속 궁금해하는 실내 생활만이 고등어에게 가능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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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에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가족의 경험을 하게 해준 만두. 둘은 서로 시기와 질투를 불공평한 셈법으로나마 나눠가지며 무심하게 사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곳으로 떠났기에 한편으로는 만두의 죽음을 또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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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고양이와 함께했던 두 번째 집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 고즈넉한 어둠이 편안했던 집 근처 해안도로 특유의 고요한 밤길을 걸으며 앞으로 그 풍경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만두가 묻혀있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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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가 내 품에서 제 생의 모든 미련을 쏟아내고 마지막 숨을 쉬던 순간은 아마 앞으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쉽지만 몇 장 남은 정면 사진들 중 하나를 그림으로 남기며 나는 샛노란 태양처럼 당당했던 만두의 건강한 얼굴을 종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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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앞에서는 반쪽만큼의 삶으로 지낼 수밖에 없던 고등어가 다시 온전한 하나의 모습으로 사는 지금 이 순간은 오로지 만두만이 전해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등어도,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만두를 사랑했다. 물론 만두는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닥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만두니까.
티비를 켜기가 무서울 정도로 이 땅 위에 살아가는 게 그저 깜깜하기만 했던 지난해 이태원참사 애도기간, 한참 지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너무 어렵고 망설여졌습니다. 2022년 11월의 첫날 만두를 그린 그림과 함께 기록하려고 썼다가 묵혀두고 다시 꺼낸 글입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겪은 분들께 누가 되는 글이 아니기만을 바랍니다. 무지개다리 너머의 모든 생과 아프게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생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지금 병마와 싸우고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힘겨운 분들의 소중한 생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