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리더의 시작은 서당개부터
눈에 바다를,
심장에 시를,
영혼에 영원을 품은 사람들이 있지.
John J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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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의 타로 상담 파업 선언이 있기 훨씬 전부터, 나는 그녀의 다양한 상담 도구들을 어깨 너머로 기웃거리며 홀로 나만의 공부를 했다. 한두 과목은 흥미로웠지만 학교 수업은 늘 따분했고, 선후배동기 할 것 없이 연애 고민만이 흘러넘치는 와중에 좁디 좁은 동아리 세상 안에서도 사랑의 화살표가 마구 어긋나던 그 시절, 연애감정 따위 믿을 게 못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내게는 그만한 수업 땡땡이 구실이 없었다.
시간과 마음을 충분히 들인 다음 바짝 돈을 긁어모아 세상 소중한 애장품을 주문하듯 신중하게 타로 물품들을 사모으는 룸메이트를 따라가기에는 난 너무 가난했다. 몰래 몰래 친구의 물건들을 가져갔다가 열심히 공부한 뒤 되돌려놓기를 반복하는 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던 아지트는 아무도 없는 동아리방 낡은 다방소파 아니면 학교 뒷산 전망대로 가는 길목의 무덤가였다. 두 장소 모두 혼자 있을 때 가장 아늑한 곳이었다.
룸메이트가 새로 들인지 얼마 안된 러시안 집시카드 덱을 이제나 저제나 눈독 들이던 중에 어느 날 몰래 들고 나올 기회가 마침 생겼다. 라이더웨이트 타로 덱과 집시카드 덱을 챙기고 소주 한 병과 싸구려 어포를 사들고는 자취방을 나섰다. 따뜻한 가을볕이 내리쬐는 전망대 아래 무덤가 가장 높은 둔덕 잔디에 기대 누워, 흡사 전공책에 코를 박은 채 묵묵히 공부하다가 도서관 마감 시간에야 밖으로 나서는 모범생처럼 머릿속에서 수없이 형광펜 밑줄을 그으며 미친 듯이 타로를 공부했다.
어떤 일이 코앞에 닥쳐있고 꼭 해결해야만 할 때일지라도 맹렬히 돌진하는 ‘딴짓’만큼 즐거운 건 없다.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성경책을 훑어보다가도 특정 구절 문장이 맘에 들면 또 하나의 시집이나 소설책으로 여기고 파고들던 한때의 나로 돌아간 것 마냥 집중력이 높을 수밖에 없는 즐거운 딴짓의 순간들이었다.
러시안 집시카드는 타로와는 전혀 다른 체계의 카드였다. 어떻게 섞고 순서를 정하느냐에 따라 서로 대구를 이루는 이미지의 수가 결정되는 퍼즐 같은 구조였다. 타로처럼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스프레드 순서에 따라 해석을 연결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신년 운세를 점치던 화투패나 카드놀이에 가까웠고, 해설을 따로 외울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규칙에 맞게 섞어서 일정한 모양으로 펼친 카드를 뒤집어 하나의 대구로 합쳐지는 이미지에 해당하는 해설을 찾아 내용을 읽고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면 되었다. 난이도가 낮은 만큼 배움의 즐거움은 컸다. 본격적인 타로 공부 문턱을 낮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초보 상담가인 나를 찾아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사람들의 경계를 즐겁게 풀어주는 에피타이저 도구로써 무척 훌륭한 기능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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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의 파업 선언은 무엇보다 확고해서 이 친구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나처럼 학교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도 산더미고 이것저것 취미생활도 수두룩한데, 큰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1:1 상담은 언젠가 한 번은 진짜로 때려치울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고 했다. 십대 초반부터 시작했으니 그만큼 상담 이력이 오래된 친구의 심정이 이해되면서도 이제 막 타로 리딩의 세계를 접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재밌는 걸 왜 그만두지? 좀 쉬었다가도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타로 공부는 그 어느 전공과목 수업보다도 순조로웠고, 어리바리한 얼굴로 러시안 집시카드 해설서를 내담자와 사이좋게 펼쳐가며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허허 웃던 초보 상담 시절을 훌쩍 뛰어넘는 데는 생각보다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 만난 물고기의 반짝이는 비늘처럼 모든 게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내게도 금방 비슷한 시련이 찾아왔다.
주야장천 연애 고민을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듣고 애써 흘려보내야 하는 수많은 비밀들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사랑을 하는 모든 이의 얼굴은 행복하게 웃는 모습보다는 미간을 찡그린 채 수없이 지진을 일으키는 불안한 눈동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의 마음을 의심하며 누군가의 가슴을 쥐어뜯는 가학과 자학이 난무하는 폭력교실에 다름 아니었다.
룸메이트의 타로 상담은 적절히 맺고 끊는 기술이 일품인 제3자로서의 영역을 칼같이 지켰지만, 나의 상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크기로 내담자의 감정을 공유하며 거절 따위는 모르고 살아온 심약한 내 성정을 담보로, 위태로운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더구나 나는 어떤 감정이나 일을 시작하면 그걸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조차도 훌쩍 넘기고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절벽을 마주하고 나서야 진짜 마무리를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한입 가득 물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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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는 사주역학자였다. 울며불며 서로의 인생을 나누고 응원하는 진짜 친구이자 정 많고 활발한 성격의 아줌마였다. 틈틈이 힘겨운 인생을 한탄하러 찾아오는 엄마에게 아줌마는 끈기있게 에두른 말로 진짜 위로를 건네는 좋은 상담가였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줌마는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 성심을 다해 내담자를 맞이하는 동시에 본인과 잘 맞는 제자를 찾아다녔다. 하루는 아줌마가 무척 진지한 목소리로 엄마 없이 나만 따로 불러 앉히더니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OO야, 나랑 공부 좀 같이 해보지 않을래? 네가 딱인데. 분명 잘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언젠가 너도 나처럼 이 길을 시작하게 될 거야."
그 후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들었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고 무심코 그 말을 넘겼다. 한참 후에야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무지막지한 욕지거리와 함께 전광석화 같은 등싸대기가 날아왔다. 죽고 못사는 친구사이인 아줌마와 한동안 진짜로 의절했을 만큼 단호한 의사 표시였다.
나는 엄마 말을 끝까지 들어야 했을까?
워낙에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타로 리딩을 해온 오랜 시간 동안 만난 수많은 이야기와 인간 군상들을 떠올리자니...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는 데 능하지 않고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미지의 바람 앞에 선 작은 촛불처럼 심약한 나 자신부터 오롯이 잘 보듬어준 다음에, 그때 타로를 시작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