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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의 양자역학—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법

감정의 파동 속에서 스위치를 쥐고 있는 사람은 결국 ‘나’다

마음의 바다는 늘 여러 층위로 흔들린다

사람을 떠올릴 때, 그 모습은 단순한 한 장면이 아니다.
그 사람과 함께 지나온 시간, 쌓인 말들, 지나가듯 스친 표정,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사정까지—
그 모든 것이 바닷물처럼 서로 섞이며 마음에 하나의 결을 만든다.

우리는 이 복잡한 파동을 간단한 언어로 뭉뚱그려 말한다.
“좋아.” “별로야.” “괜찮아.”
하지만 이런 말들은 내가 느낀 파동의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기에 언제나 너무 작다.”
실제로 마음은 넓고 깊은데 말은 좁고 얕다.
말은 단순하지만, 우리는 복잡하다.
그래서 오해는 늘 말의 바깥에서 생기고, 이해는 말의 너머에서 피어난다.


감정은 중첩되고, 말하는 순간 하나로 붕괴된다

나는 요즘 인간의 감정이 양자역학과 참 닮았다고 느낀다.
서로 다른 감정들이 중첩된 채로 마음속에 존재한다.
고마움과 미안함, 애정과 서운함, 희망과 피로—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웅크리고 있다가
말하는 순간, 단 하나의 감정 상태로 고정된다.

마치 슈뢰딩거의 상자를 여는 순간,
수많은 가능성이 하나의 고정된 결과로 바뀌어버리는 것처럼.

그래서 힘들 때는 말이 위험하다.
순간의 짜증 한 마디가
내 안에 있던 감사, 애정, 배려, 책임감…
그 모든 결을 단숨에 덮어버린다.

가장 위험한 건 그 감정이 마치 ‘진짜 나’인 것처럼 굳어져 버리는 순간이다.

칼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당신이 무의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운명처럼 당신을 이끈다.”

말은 무의식을 밖으로 꺼내는 통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섬세해야 한다.


몸이 흔들리면 마음의 결도 함께 흔들린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마음은 훨씬 약해진다.
요즘 감기 기운이 오래가고, 체력이 쉽게 떨어진다.
잠이 부족하면 괜히 서운해지고, 소화가 안 되면 작은 말에도 마음이 붕 뜨고 흔들린다.

이럴 때 힘든 일이 하나만 와도 감정은 물감 번지듯 번져나간다.
분노의 색이 퍼지기 시작하면
감정의 바다는 순식간에 탁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나는 종종 감당하기가 어렵다.

“왜 내가 이걸 해야 하지?”
이 생각이 한 번 움트면,
그동안 겨우 유지하던 균형감이 무너진다.
그리고 부정의 파동이 내 하루 전체를 뒤덮는다.

나는 이 순간을
‘안감정의 쓰나미’라고 부른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은 더 쉽게 잠겨버린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는 늘 사건의 연속이다.
학생 문제, 학부모의 고민, 교사의 고충, 민원, 행정, 일정—
이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상태에서 하루를 건너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탓’이라는 단어가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이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감정의 구조는 급격하게 무너진다.
긍정적 에너지는 증발해버리고
부정적 감정이 내 모든 감각을 장악한다.

책 《화해》에서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상대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라. 그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탓의 구조’였다.


중간자의 자리는 늘 흔들린다

나는 지금 인생의 정확한 중간 지점에 서 있다.
10대 후반의 자녀가 있고,
나이가 든 부모님을 돌봐야 하고,
직장에서는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메신저이자 완충재이자 조정자 역할을 한다.

누구도 완벽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리가 바로 중간의 자리다.
양쪽의 기대와 요구가 동시에 향한다.
그래서 중간자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흔들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흔들린 채로 무너지지 않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할 뿐.


마음을 가꾸지 않으면 감정의 파동은 나를 쉽게 삼킨다

마음이 거칠면 작은 말에도 쉽게 딱딱해진다.
마음이 헐거우면 작은 피로에도 금방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명경지수 같은 고요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괴팍하지 않은 마음,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는 마음
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결국
직장인으로서,
부모로서,
한 사람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이자 균형이다.


달려온 시간, 그리고 찾아온 ‘고요한 혼란’

교육청 시절,
늦게 퇴근하고,
압박과 부담 속에서 일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어떻게 견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마음의 여백이 없어서 오히려 버텼다.
여유라는 건 때로는
사람을 흐트러지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교감이 된 지금,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되니
내 마음엔 예상치 못한 여백이 생겼다.

그리고 그 여백에
이상하게도
불안, 기대, 혼란, 피로, 성찰, 고독이 동시에 들어온다.

‘고요한 혼란’이라고나 할까.
물결이 잦아든 것 같은데
마음 바닥에서는 은근한 파동이 계속 치는 느낌.

이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스위치를 다시 쥐는 일

일요일 늦은 밤,
조용히 방 안에 앉아 지난 한 주를 떠올린다.

사람은 누구나 양자역학적인 존재다.
마음은 흔들리고,
감정은 중첩되고,
말은 그 모든 가능성을 하나로 결정짓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스위치를 켜고 끄는 사람도
결국 ‘나’다.

말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가
나를 만들어간다.

감정이 나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나는 감정의 파동 위에서
조금 더 균형 있게 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정하는 작은 스위치 하나가
분노가 아니라
감사 쪽을 향하기를,
피로가 아니라
회복을 향하기를,
혼란이 아니라
성장을 향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렇게 적어본다

“사람은 평생 자신을 관찰해야 한다.
그 과정이 곧 성장이기 때문이다.” — 에픽테토스

나는 오늘도 나를 들여다본다.
흔들리는 마음, 파동치는 감정,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나의 의지를.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내 마음의 스위치는
항상 내 손 안에 있다.


2025. 11. 23.(일)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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