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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계절, 글은 멈췄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 나는 왜 더 이상 쓰지 못하는가?

글은 상처를 통해 피어난다

헤밍웨이, 울프, 카프카, 플로베르.
우리가 사랑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을 떠올릴 때, 그들의 문장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삶의 그림자다. 신경쇠약, 조울증, 히스테리, 편집증 그들은 정신적 병을 품은 사람들이었고, 그 병은 치명적인 결함이자 동시에 놀라운 동력이었다.

고통이 문장을 만들고, 상처가 언어를 길러냈다.
사람이 자신의 정신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붕괴의 한복판에서 간신히 남긴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그 공포를 견디기 위해, 그 절망을 붙들기 위해, 작가들은 펜을 들었다.


인생의 절정, 글은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의 나는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살고 있다.
크게 염려할 일이 없고, 일정한 수입과 평온한 가정, 건강까지 차곡차곡 쌓여간다. 예전보다 스트레스는 줄었고, 운동도 시작했다. 세끼 밥도 잘 챙겨먹고, 잠도 잘 잔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풍요 속에 있었다.
글이 사라졌다.

컴퓨터를 켜는 것이 힘들고, 한 줄을 쓰는 데 마음이 무겁다.
말하고 싶은 것이 없고, 세상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마음이 편해지니, 세상도 예뻐 보이고, 사람도 미워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다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루틴이 사라진 자리에서

예전에는 글을 쓰기 위한 작은 의식이 있었다.
산책을 하고, 조용한 새벽에 커피를 한 잔 내리고, 누군가의 글을 읽고, 생각의 파편을 모아내는 시간들.

그런데 요즘엔 루틴이 무너졌다.
나의 글쓰기 장소도, 시간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무관심이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도, 세상에 대한 연민도 점점 흐려졌다.

나는 노력했고, 버텼고, 이 자리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다른 이들의 나태함을, 세상의 무책임을 조용히 판단하면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무뎌졌다.


목마름 없는 자는 쓸 수 없다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목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갈망이 없다. 궁금하지 않다. 분노도, 슬픔도 멀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내 일상은 고요하다 못해 따분하다.
뉴스를 봐도,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여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른들의 말 한마디, 기사 한 줄에도 눈물을 흘렸던 내가, 이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

이대로 괜찮을까?
내 안의 목마름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나는 간절히 원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분노할 줄 알았고, 사랑할 줄 알았고, 궁금해할 줄 알았던 때.
그 시절, 나는 세상을 진심으로 알고 싶었고,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 열망이 내게 글을 쥐어줬고, 나의 언어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바라보는 눈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슬퍼하고, 애틋하기 때문에 분노하며,
한 줄의 문장 속에 나의 심장을 담아야 할 시간이다.


마무리하며

글은 삶의 고통을 정제해 쓴다.
행복은 글을 멈추게 하고, 안온함은 무관심을 낳는다.

그러나 우리는 글을 통해 다시 길을 낼 수 있다.
내면의 상처를 지나, 세상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글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기를.


2025. 10.5.(일)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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