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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결핍 세대를 위한 부모의 역할

사회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실수하고 회복하는 가운데 길러진다

‘내 아이만 그런가요?’라는 불안

요즘 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자녀의 친구 관계다. 성적이나 진로도 물론 중요하지만, 등굣길에 혼자 걷는 아이의 뒷모습이나, 놀이터에서 망설이는 모습은 부모의 마음을 훨씬 더 무겁게 한다. “내 아이만 그런가요?”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만든 조건의 결과다.

지금 교실을 채우고 있는 초등학생들은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며 관계를 충분히 연습할 기회를 놓친 세대다. 입학식 없이 학교생활을 시작했고, 비대면 수업 속에서 눈을 마주치거나 장난을 주고받는 경험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감정 표현이 서툴고, 장난의 선을 넘는 말에 쉽게 상처받으며, 갈등이 생겼을 때 화해나 조정보다 회피나 단절을 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특정 아이의 성격이나 노력 부족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관계 결핍의 시대를 통과한 아이들이 겪는 성장의 공백이다.


친구 수가 아닌 관계의 감도가 중요

많은 부모가 친구 수를 사회성의 지표로 삼는다. 친구가 많으면 안심하고, 단짝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친구 한 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아이일수록 더 쉽게 상처를 받고, 관계의 균형을 잃는다. 사회적 관계는 수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단짝이라는 개념 자체가 때로는 아이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어른의 눈에는 보기 좋아 보이는 ‘베프’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거절당할까 두려워 계속 맞춰야 하는 존재일 수 있다. 전학이나 반편성, 또는 다른 친구와의 어울림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일부라는 사실을 아이가 받아들이려면, 부모부터 ‘단짝이 꼭 필요하다’는 전제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갈등을 겪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의 수를 묻기보다, “오늘 어떤 일이 기분 좋았어?”, “친구랑 지내며 느낀 점은 뭐야?”와 같이 관계의 감도를 묻는 대화가 필요하다.


부모의 개입은 환경 조성까지만

아이가 친구와 잘 지내지 못하면 부모는 당장 개입하고 싶어진다. 생일파티를 열어 주거나, 집에 친구를 초대하거나, 간식이나 선물로 아이의 호감을 대신 사주려 한다. 때로는 교사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거나, 아이 대신 친구에게 사과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개입은 결국 아이로 하여금 관계의 주도권을 놓치게 만든다.

관계는 경험으로 익히는 삶의 기술이다. 어른이 먼저 개입해서 길을 닦아주는 순간, 아이는 넘어지며 배우는 기회를 잃는다. 사회성은 자연스러운 마찰과 조정, 오해와 화해의 과정을 거쳐서 자란다. 부모는 조명은 켜 주되 무대 위에는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역할은 아이의 몫이다. 생일 파티를 준비해 주는 것은 좋지만, 누구를 초대할지 결정하고, 갈등을 겪은 친구와 어떻게 지낼지는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기준을 갖도록 돕는 것

제가 부모 교육이나 교사 연수에서 자주 소개하는 전략은 ‘3L 관계 기준’이다. 이는 아이가 관계 속에서 스스로 거리를 조절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기준이다. 첫째는 'Light(가벼움)'이다. 친구를 만나고 난 후, 기분이 가볍고 편안해지는지, 아니면 무겁고 지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둘째는 'Learn(배움)'이다.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셋째는 'Limit(경계)'이다. 그 친구가 나의 감정선이나 시간, 생각의 경계를 반복해서 침범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아이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수동적인 관계의 피해자가 아니라, 관계를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반드시 개입해야 할 순간

물론 모든 갈등을 아이에게만 맡기라는 말은 아니다. 관계 안에서 조기에 개입해야 할 위기 신호는 분명히 있다. 한 달 이상 지속되는 우울감이나 등교 거부, 두통이나 복통 같은 반복적인 신체 증상, 특정 친구의 언어적 괴롭힘이나 집단 따돌림 등이 나타난다면, 부모는 즉각 반응해야 한다. 이럴 때는 담임교사와 먼저 소통하고, 필요하다면 학교 상담실이나 외부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다. 아이가 문제를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행동과 표정에서 보내는 신호를 부모가 민감하게 읽어주는 감각이 필요하다. 조기 개입은 간섭이 아니라 보호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회성 자극 루틴

사회성은 교과서로 배우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가정 안에서의 일상적 대화와 모델링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가 친구 관계에 대해 감정 중심의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관계 경험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아이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을 조절하는 감각을 배워간다.

작은 그룹의 놀이 환경을 마련해 주고, 활동 중심의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친구 문제를 과하게 캐묻지 않고, 아이가 관계를 맺고 풀어나갈 시간을 기다려주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 집이 ‘편안한 기지’가 되어야 한다. 밖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왔을 때, 부모의 품에서 감정이 회복되고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는 다시 내일의 관계를 시도할 수 있다.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세 가지 전략

첫째, 부모는 친구 관계를 성적처럼 관리하려는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친구는 많이 사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나와 맞는 사람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부모가 먼저 ‘단짝 신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둘째, 개입보다는 환경을 조성하고, 판단보다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 친구 관계를 대신 해결해 주기보다, 아이가 선택하고 실수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위기 신호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되, 일상의 갈등에는 성급히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친구 관계에서의 마찰은 성장의 일부다. 다만, 그 마찰이 아이의 일상생활을 무너뜨릴 정도로 반복되거나 심각하다면, 더 이상 혼자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회성은 완성이 아니라 연습

사회성은 시험처럼 외워서 푸는 문제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조정하고, 때로는 실패하면서 익혀가는 삶의 기술이다. 아이가 지금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잘 자라고 있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원은, 아이가 관계 속에서 실수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지지와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넌 괜찮은 아이야. 그리고 아직 배우는 중이야.”
이 말을 자주 들은 아이는 혼자가 아닌 길에서도 당당하게 걸어갈 힘을 갖게 된다.
사회성은 서둘러 완성할 필요가 없는, 평생 배우는 능력이니까.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https://youtu.be/X504Vbyl0xg?si=LByhgs2AhohHFxF7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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