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에서 교감으로, 나는 왜 지금 회의감을 말하게 되었는가
교육청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늘 ‘더 잘하려’ 애썼다.
지시받은 사업을 수행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부서를 돋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결과가 보이는 사업을 기획하고, 대외적으로 성과가 드러나는 연수와 토론회를 추진했다.
그것이 조직에 기여하는 일이고, 교육행정의 선순환이라 믿었다.
그러다 어느덧 신설 조직에서의 마지막 해, 나는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엮고 농사짓는 마음으로 일했다.
씨를 뿌리고, 예산과 인력을 요청하고, 각종 회의와 문서를 정리하며,
마지막 수확을 앞두고 연수와 발표회를 열었다.
겉보기에 그 농사는 풍성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농사를 돌아보며 묻는다.
그 일이 정말 '교육'이었는가?
학교에 돌아온 순간,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그간 내가 밤을 새우며 쏟았던 힘과 시간들이
정말 학생과 교사를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학교는 단 몇십만 원의 예산이 없어
학생의 배움과 활동을 멈춰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원이 필요한 학급에는 사람이 없었고,
사업보다 교사의 고통과 학생의 위기가 더 급박했다.
교육청의 성과 중심 사업은 현장에서 무게감이 달랐다.
행정의 우선순위와 학교의 절실함은 늘 어긋나 있었고,
그 사이에서 교사는 점점 외로워지고 있었다.
교육청은 매일 목표와 성과를 쓰는 공간이었다.
보고서에는 숫자와 달성이 우선이었고,
보도자료에는 자화자찬의 문장이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겸손히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이 가진 ‘이름’을 부른다.
학생은 줄었지만, 귀해졌다.
교사는 줄었지만, 더 많은 것을 책임지고 있다.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의 아이들이 하루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교사는 지금도 수업이라는 전쟁터에서
협력강사도, 실질적 인력도 없이 각개전투를 벌인다.
위기 학급은 교사의 몫으로만 남고,
교육청이 추진하는 화려한 사업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행정의 언어는 여전히 교육의 언어를 앞선다.
문제는, 이 간극이 교사들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교사들은 각종 단체와 노조에 기대어
울분을, 슬픔을, 지친 마음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그 목소리는
공식 행정조직과 교육 정책 안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중앙의 정책과 현장의 온도차는
교육을 평가와 홍보의 대상이 되게 만들고 있다.
교육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홍보보다 수업,
성과보다 학생,
보고보다 배움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학교는 너무 많은 ‘교육 외적인 것들’로 무거워졌다.
교실은 아직도 교사 혼자 지켜내야 하는 공간이고,
교육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피어나야 한다.
나는 지금 교감이다.
하지만 교감이기 전에,
누군가의 스승이었고
또 누군가의 제자였던 사람이다.
추운 아침 교문 앞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작은 인사를 건네며
그 아이들이 학교에서의 기억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경험과 회의, 그리고 지금의 다짐을 담아
오늘도 글을 쓴다.
어쩌면, 이 글이 나의 다음 교육을 위한 ‘돌파구’가 되어줄지도 모르기에.
교육청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학교에 오니 더 선명해졌다.
성과가 아닌, 존재 자체로 중요한
아이들, 교사들, 그리고 교육.
그것이 지금 내가 지키고 싶은
'진짜 교육'이다.
별의별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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