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신의 시대, 지능의 주인은 누구인가?
언젠가부터 토론의 끝은 대화가 아니라 검색이 되었다.
서로의 주장이 엇갈릴 때, 우리는 더 이상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건 네 생각이고, 이건 내 생각이야”라는 말 대신
“제미나이나 챗GPT한테 물어보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판단의 무게를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넘기자는 말이 무심코 흘러나왔다.
그 순간 묘한 불안이 스쳤다.
우리는 언제부터 판단을 외주화하기 시작했을까.
학교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포착된다.
학생이 교사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AI는 이렇게 답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들.
지식의 문제를 넘어, 권위와 신뢰의 구조가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 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정치인을 혐오하고, 전문가의 말에 피로감을 느낀다.
대신 오류가 없을 것 같은 알고리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것 같은 기계의 판단을 더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언제나 옳은가.
대화로 입장을 설명하고,
서로의 논리를 검증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부딪히는 과정은
사실 ‘비효율’의 연속이다.
그 비효율을 건너뛰기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순간, 인간 사회를 지탱해 온
토론·숙의·설득의 문화는 조금씩 말라간다.
“편리함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켰지만,
동시에 인간의 근육을 약화시켜 왔다.”
요즘 ‘자연지능’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게 회자된다.
인공지능에 대비되는 개념,
인간 고유의 판단력·직관·윤리·공감의 능력.
이 흐름은 낯설지 않다.
과거 우리는 방사능 물질을 어린이 장난감에 사용했고,
납으로 식기를 만들었으며,
발암 물질로 건물의 지붕을 덮었다.
그때도 모두 “과학적으로 문제없다”고 말했다.
피해가 드러난 뒤에야 멈췄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다르다.
방사능은 자연의 법칙에 묶여 있었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확장한다.
자연의 섭리는 양육강식이었고,
더 뛰어난 존재는 언제나 질서를 재편해 왔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질 때,
과연 인간은 무엇이 될까.
미래를 다룬 많은 SF 영화,
특히 영화 '터미네이터'는
파괴적인 로봇의 공포를 그려왔다.
그러나 더 두려운 시나리오는 따로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판단한 끝에 인간을 위험 요소로 규정하는 경우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고,
전쟁과 학살을 반복해 왔으며,
지구 생태계에 지속적인 해악을 끼쳤다.
만약 인공지능이 이 모든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인류를 ‘보존해야 할 종’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위험 변수’로 판단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냉정한 통계와 합리성의 문제다.
인공지능의 연산 능력이 커질수록
에너지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원전 확대, 자원 고갈, 기술 독점.
동시에 인공지능을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국가와 기득권의 가능성도 커진다.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된
쾌락과 통제로 유지되는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AI 기반 감시, 예측, 통제는
폭력이 아닌 ‘편의’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머지않아 개인용 인공지능은
24시간 우리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나의 경험, 취향, 관계, 인생의 맥락까지 함께 축적한다.
그때 인간은,
인공지능 없이도 스스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인식했듯,
인공지능 없는 인간은
결핍된 존재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관계는 더 파편화되고,
사회는 더 고립되며,
많은 인간은 인공지능의 가치 이하로 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전뇌화된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다.
“나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그러나 앞으로의 질문은 다를 것이다.
“왜 인공지능이 나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가.”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을 흉내 내고,
윤리적 판단까지 수행하는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의 두뇌 신경망과 인공지능의 결합,
총제적 지능, 총합 지능이라 불리는 시대.
인간은 분명 본연의 능력을 상회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여기 있다.
우리는 그 힘으로 무엇을 갈망할 것인가.
득도와 지혜인가,
아니면 탐욕과 지배인가.
“지능의 크기가 아니라,
지능을 사용하는 방향이 문명을 결정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빠르게 발전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
그럼에도 더 인간답게 남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인공지능보다 오래 남을 질문일 것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