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의 끝에서 마주한 인공지능 통제 사회와 교육의 딜레마
질문도 필요 없는 인공지능의 등장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챗GPT의 기능 중 개인맞춤설정 기능을 사용해 보면서 그 예감은 더 또렷해졌다.
나의 기본적인 정보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그 정보에 맞는 답변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최근 피부에 문제가 있어 사진을 찍어 물어보았더니, 인공지능은 내가 사는 동네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 집 근처의 피부과를 추천해 주었다.
편리했다.
그러나 동시에 섬뜩했다.
이제 인공지능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궁금해할지를 먼저 예측하고 그 질문 목록을 나열한 뒤 “이것도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면, 질문은 인간의 고유한 사고의 시작이었는데, 그 질문마저 인공지능이 대신 만들어 주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개인 정보 동의의 정도에 따라 나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정교한 답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휴대전화의 소리 청취 기능, 위치 정보, 사용 기록은 이미 일상이 되었고, 여기에 VR 카메라가 장착된 클래스 안경과 같은 장치가 결합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의 시각 정보까지 동시에 인공지능이 습득하게 된다면, 인공지능은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나의 판단을 ‘보조하는 존재’를 넘어 ‘대신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과 통제당한다는 감각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맞닿아 있다.
지금은 분명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삶의 모든 판단 기준과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는 그 판단에 의존하거나 심지어 통제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들 속에서는 언제나 한두 명의 뛰어난 기업가나 과학자가 세상을 통제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런 이야기를 허구라고만 치부하기 어려운 장면을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상공을 날아다니는 드론이 시민들에게 질서 준수를 요구하며, 불응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통한 사회적 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는 가능하다는 사실보다, 그 가능성이 언제, 어떤 명분으로, 어떤 속도로 현실이 될 것인가이다.
특히 팔란티어와 같은 군사 인공지능 활용 기업의 등장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드론의 공격 표적을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판단하며 공격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최종 판단을 인간 군인이 내렸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규모 전투와 치열한 전쟁 상황 속에서, 그 ‘죽음의 버튼’을 인공지능이 대신 결정하게 되는 미래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가 동시에 몰아치는 시대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판단의 순간에, 도덕적이거나 민주적인 숙의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계산해 낸 가장 효율적인 결론이 선택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판단이 인간의 존엄을 고려하지 않은 비인간적인 결정이라면, 우리는 과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공포는 여기서 시작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험한 악은 생각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생각하지 않는 효율, 질문하지 않는 판단이 누적될 때, 사회는 서서히 인간성을 잃는다.
인공지능의 편리함 속에서 학부모로서, 교사로서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자녀가 교사보다 인공지능을 더 신뢰하고, 인공지능을 통해서만 배우려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부모로서, 교사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로서의 교사는 이미 인공지능과 경쟁할 수 없다.
그러나 질문을 만드는 힘, 가치의 충돌을 함께 고민하는 역할, 인간적인 망설임을 허용하는 공간은 여전히 인간 교사의 몫이어야 한다.
경제, 사회, 군사,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거대한 격변이 동시에 몰아치고 있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 습득이 아니라, 방향과 목적지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교육은 더 이상 ‘무엇을 아느냐’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를 묻는 일이 되어야 한다.
철학과 인문학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큰 위기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질문하지 않아도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이다.
질문을 잃은 사회는 방향을 잃고, 방향을 잃은 사회는 결국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미래를 통제해야 할 대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를 길러내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교육이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답을 줄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질문하는 힘을 남겨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2026. 1. 28.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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