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탐욕의 끝

욕망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서울의 봄 영화 감상 후기

실화를 바탕으로 긴장감 있는 영화를 보며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과 역사책으로 알고 있던 짧은 역사적 사건의 결과를

한편의 영화로 그 날 밤의 역사를 생생하게 엿볼수 있었다.

고비고비때 마다 승패(?) 혹은 변곡점이 되었던 지점들은 결국은 '사람'이었고. '사람의 마음'이었다.

목숨을 건자와 목숨을 걸지 않은자
돌아갈데가 없는 자와 돌아갈데가 있는자
누리던 권력을 뺏기는 자와 크게 영향이 없는 자

역사의 흐름을 거대한 수레바퀴에 비유한다.
나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바다의 크고 작은 물결과 파도,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눈물나도록 안타까운 장면들도 그리고 영웅적인 개인의 모습 속에서
감동을 받고 탄식과 아쉬움이 흐르지만,

큰 역사적 맥락 속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적인 효과가 가미된 영화를 보며,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라는 것을 알기에 결과도 잘알고 있지만,

사람의 탐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역사적 분기점에 개인은 그시대의 욕망을 투영한다.


영화 속 전두광의 대사처럼
"사람들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 주길 바란다."
라는 말을 되내이게 된다.

판단에 대한 모호성과 결과에 대한 두려움
지시에 따를 때 생기는 책임의 전가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의 결여

군인이라는 신분의 한계
명령과 지휘체계
그리고 비공식 명령과 지휘 체계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냐고 중요하다.
하나회에 들어가며 하는 선서의 말들

사명이라는 것은 말과 글로 완성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든다.

스스로 하나회의 정체성을 갖고 있던 군인들의
모습 속에서 "왜 그랬을까?" 를 생각해보았다.

사회에 나오면 외로운 존재,
의지할 곳이 없는 각각의 개인이 된다.

하지만, 개인들은 종교, 지연, 학연 다양한 형태로 심리적 집단을 만든다.

개개인의 영웅적인 모습의 군인들과 대비되는
집단을 이루고, 서로가 이익을 공유하고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집단의 힘은 결국은
역사적 흐름의 무게의 추를 그들에게 끌고 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
철문을 열고 있는 부하를 그대로 차로 치고

문을 부시고 나가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그들, 집단의 욕망을 반추할 수 있었다.

마지막 극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위기에 처한 순간 도망치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해타산으로 모인 집단 속 의리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영화의 위기때 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화장실을 배경으로 대사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람의 원초적인 욕망이 결국은
사건을 만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결국 난세는 사람들이 만든다.

영웅적인 개인으로는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는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현실, 과거의 우리 모습에서
지금의 사회와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과연 과거의 '서울의 봄'과 '지금의 서울'은
바뀐게 있을까?

권력자에게 판단을 미루는 모습
이해관계로 집단을 만들고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

과거의 노골적이고 거친 사람의 욕망은
세련되고 겉으로 꾸며진 욕망으로 대체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은 경험으로 축적되고
사람의 집단지성의 자양분이 된다.

극적인 사건으로 사회는 한번에 바뀔수는 없다.
시간이 걸리고, 공동의 인식이 바뀌고

개인의 시행착오처럼, 사회도 국가도 아픔 속에서
그리고 후회 속에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어려운 점도 결국은 함께 경험으로
으로 고민으로, 행동으로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봄, ​
지금 서울은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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