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은 왜 ‘동네 북’이 되었는가?

책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지원은 제자리인 교감이라는 자리의 역설

학교 조직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교장과 교사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학교를 움직이는 동력은 그 사이에 서 있는 ‘중간관리자’에게서 나온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는 학교에 교장과 교감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법 문장만 보면 간결하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오늘날 학교 현장의 거의 모든 복합적 과제가 응축되어 있다. 최근 교육계 안팎에서 “교감이 가장 힘든 자리”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유는 단순한 개인적 하소연이 아니다. 학교의 기능이 팽창하는 속도와 중간관리자의 역할 설계가 맞지 않으면서 구조적 긴장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장되는 학교의 역할, 집중되는 교감의 책임

코로나19 이후 학교는 학습 공간을 넘어 돌봄, 심리·정서 지원, 위기 대응, 지역 연계 플랫폼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기초학력 보장, 학생맞춤통합지원,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 자살예방 위기관리, 교육복지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각각의 정책은 필요성과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책이 늘어날수록 학교 내부의 조정 기능은 더욱 복잡해진다.

학교폭력예방법,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관련 법령이 촘촘해지면서 학교의 의사결정은 점점 더 법적 판단을 동반한다. 위원회 중심 구조도 확대되어 학교폭력대책심의, 교원성과상여금, 위기관리, 교육복지, 인사자문 등 다양한 기구가 상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교감은 다수 위원회의 실무 책임자이자 조정자로 기능한다. 교장은 최종 책임자이지만, 실제 합의를 설계하고 문서를 정리하며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은 교감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민원 대응이 더해진다. 학부모 상담과 갈등 조정은 학교 운영의 필수 영역이지만, 감정이 격화된 상황에서 1차로 마주 앉는 사람 역시 대개 교감이다. 교권 보호 체계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감정 노동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교원단체의 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교감 개인의 인내심 문제가 아니라, 학교 조직 내 갈등 조정 기능이 중간관리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역량 없이 책임부터’라는 설계의 한계

어떤 조직이든 책임을 강화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역량과 지원 체계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 우리 역시 신규 교감 자격연수와 직무연수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무 중심의 체계적 훈련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갈등 중재, 위기 커뮤니케이션, 법률적 판단, 조직 리더십에 대한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이 아닌 단기 연수로는 실제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학교라는 조직은 기업과 달리 공공성과 교육성을 동시에 지닌다. 결정 하나가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전문성, 학부모의 신뢰에 직결된다. 이러한 고난도의 조정 기능을 요구하면서도 표준화된 매뉴얼과 실시간 지원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중간관리자는 개인 역량에 의존해 위기를 버텨야 한다. 이는 조직 차원에서도 위험하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학교의 안정성이 좌우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간관리자 기피 현상, 조직의 신호

최근 일부 지역에서 관리직 기피나 명예퇴직 증가 사례가 보도되면서, 승진 구조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교감 수당과 책임 간의 불균형 문제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물론 보수 문제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책임의 범위가 확대되는 만큼 역할과 권한, 지원 체계가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업 조직 이론에서도 중간관리자는 전략을 실행으로 연결하는 핵심 축으로 본다. 이 축이 약화되면 조직은 위에서 내려온 정책을 현장에 안착시키지 못하고, 아래에서 올라온 문제를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감이 소진되면 교사는 직접 외부 갈등을 감당해야 하고, 교장은 미시적 실무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된다. 결국 교육 활동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


교감의 역할을 ‘행정 관리자’에서 ‘교육 조력자’로

교감의 본질적 역할은 행정 처리자가 아니라 교육 조력자다. 교장의 교육 철학을 현장에서 구현하고,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며, 학생의 안전과 성장을 균형 있게 지원하는 자리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몇 가지 구조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관리자 역량 개발 체계를 장기화하고 단계화해야 한다. 단기 연수에서 벗어나 실제 사례 기반 시뮬레이션, 법률 자문 연계, 갈등 중재 훈련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체계가 요구된다. 이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공공 조직의 위험 관리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둘째, 교육지원청 차원의 ‘즉시 개입형 지원팀’을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민원과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학교가 요청하면 일정 시간 내에 법률·상담·행정 전문가가 함께 대응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학교의 체면 문제가 아니라, 학생과 교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공적 시스템의 문제다.

셋째, 표준화된 디지털 매뉴얼과 사례 공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는 지역 네트워크와 개인적 인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보 격차를 낳고, 초임 관리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 교육부 차원의 통합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업무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넷째, 책임과 권한의 균형을 법·제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과 관련 시행령, 각종 지침에서 교감의 역할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고, 필요하다면 권한 위임 범위와 지원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교감의 문제는 결국 ‘학교의 문제’다

이 글은 특정 직위의 고충을 과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학교를 둘러싼 구조적 변화를 직시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교감이 흔들린다는 것은 학교 조직의 허리가 약해졌다는 신호다. 허리가 약하면 상체도, 하체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교감도 교원이다. 교사와 같은 교육적 소명을 공유하며, 다만 역할이 다를 뿐이다. 중간관리자가 건강해야 교사가 보호되고, 교사가 보호되어야 학생의 배움이 지켜진다.

학교를 혁신하겠다는 수많은 정책이 성공하려면, 그 정책을 현장에서 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 교감을 ‘알아서 버틸 자리’로 두는 한, 학교는 점점 더 피로해질 것이다.

학교의 허리를 다시 세우는 일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교육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이제는 책임을 요구하기 전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중간관리자가 바로 설 때, 교실도 다시 단단해질 수 있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https://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21805


#교감 #학교관리자 #중간관리자 #교육칼럼 #공교육 #학교행정 #교육정책 #초등교육 #중등교육 #교장교감 #교감의역할 #학교위기 #교육현실 #교권보호 #학교폭력 #학생맞춤통합지원 #학교위원회 #학교운영 #교육개혁 #교육행정 #학교민원 #학부모민원 #악성민원 #위기관리 #교육리더십 #학교조직 #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학교지원단 #교육지원청 #교육부정책 #학교현장 #교사와관리자 #교육책임 #행정과교육 #교육담론 #학교자치 #교원인사 #위원회과다 #교육조직 #학교구조 #교육시스템 #학교업무과중 #교감수당 #승진기피 #명예퇴직 #교직사회 #교육전문직 #학교리더 #학교운영위원회 #교육거버넌스 #교육행정개선 #학교정책 #현장중심교육 #교육현안 #교육문제 #학교갈등 #갈등조정 #학교리더십위기 #중간관리자의삶 #교감고충 #학교허리 #학교지속가능성 #교육행정개혁 #교육지원체계 #교육책임구조 #공교육위기 #학교조직문화 #교육자 #학교운영체계 #교육행정사각지대 #학교실무 #교감연수 #관리자연수 #교육행정전문성 #교육현장목소리 #학교리더역량 #정책과현장 #교육행정비판 #교육행정지원 #학교업무분장 #학교현실 #교직사회문제 #학교행정과부하 #교육공론장 #교육이슈 #교육논쟁 #학교행정혁신 #교감처우개선 #교육조직재설계 #교육책임과권한 #학교민주주의 #공교육강화 #학교안전 #교감리더십

매거진의 이전글학교는 왜 숨이 막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