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각자도생을 넘어 교육 공동체의 결속을 회복하려면
신학기는 늘 분주하다. 아이들은 교실을 바꾸고, 학부모는 새로운 담임을 만나며, 교직원들은 다시 이름을 외운다. 학교는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공간이지만, 그 출발선의 공기는 생각보다 차갑다. 신규 교사와 전입 교사, 행정직과 교육공무직, 상담 인력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한 학교에 모인다. 겉으로 보면 조직은 더욱 전문화되고 체계화된 듯 보인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서로 섞이지 않도록 나뉜 ‘계란판’과 닮은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각 직종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노력이 학교 전체의 결속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순간이 적지 않다.
학교 안에서 자주 들리는 말은 “이 업무는 누구의 일인가”이다.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보다 경계를 먼저 확인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조직은 점점 분절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학교 조직문화 연구에서도 교직원 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업무 경계의 불명확성과 소통 부족이 지적된 바 있다. 갈등의 뿌리는 사람의 성향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분절된 업무 방식은 더욱 고착되었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문화는 어느 순간 ‘관여하지 않음’으로 굳어졌다. 과거에는 선배 교사가 자연스럽게 조언을 건네고, 동료가 먼저 어려움을 살피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은 “괜히 참견하는 것 아닐까”라는 주저함이 앞선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협력과 존중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모둠 활동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고, 갈등을 대화로 풀라고 지도한다. 그러나 정작 교직원들의 관계가 분절되어 있다면 그 교육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기보다 관계를 본다. 교무실과 행정실이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지, 경력 교사가 신규 교사를 따뜻하게 맞이하는지,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함께 머리를 맞대는지를 아이들은 느낀다. 공동체의 온도는 교실 밖에서 먼저 결정된다.
각자도생의 문화는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냉기는 아이들에게도 전달된다. 신학기의 설렘이 긴장으로 바뀌는 이유는 단지 낯섦 때문만은 아니다. 관계의 밀도가 낮아진 조직에서 아이들도 안정감을 느끼기 어렵다.
관계 회복을 이야기하면서 구조를 외면할 수는 없다. 최근 학교의 역할은 크게 확장되었다. 돌봄, 정서 지원, 안전 관리, 각종 정책 사업이 더해지면서 업무는 세분화되었고 직종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업무는 늘어났지만 그에 맞는 조정 구조와 지원 체계는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다.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누가 맡을 것인가”가 먼저 쟁점이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방어적 태도를 낳는다.
권한은 제한되고 책임만 강조되는 구조에서는 결속보다 경계가 강화된다. 학교가 교육의 공동체라기보다 행정의 전달 창구처럼 기능할수록 구성원은 수동적으로 변한다. 이 분위기 속에서 신학기는 설렘보다 긴장과 부담으로 시작된다.
계란판 문화를 깨기 위해서는 감성적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적 토대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학교 자율성의 실질적 확대가 필요하다. 목적사업을 세분화해 일일이 집행하도록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은 학교가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업을 더할 때는 기존 사업을 정리하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를 더하면 하나를 줄이는 구조가 정착될 때 업무 갈등은 자연스럽게 완화된다.
둘째, 학교장의 조정 권한과 법적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인사와 업무 배치, 갈등 중재에 대한 실질적 권한이 보장되어야 조직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권한 없는 책임은 방어적 문화를 낳는다. 학교장이 구성원 간 갈등을 조정하고 역할을 재배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보고를 위한 보고, 형식적 자료 생산, 중복 점검은 교사의 수업 준비 시간과 동료 간 소통 시간을 잠식한다. 교사가 아이들을 바라볼 시간, 동료와 대화할 여유가 생겨야 공동체의 온기도 살아난다. 행정 지원 인력을 확충하고 업무를 재설계하는 일은 단순한 효율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조건이다.
넷째, 신규 교사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형식적인 업무 인계가 아니라 일정 기간 선배 교사가 실질적으로 돕는 구조를 마련하고, 그 역할에 대한 시간과 평가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선의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제도 속에 ‘돌봄’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보완 위에서야 비로소 ‘건강한 오지랖’이 작동할 수 있다.
제도가 바탕을 마련한다면, 문화는 그 위에서 피어난다. 건강한 오지랖은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간섭이 아니라, 동료의 어려움을 먼저 묻는 책임감이다.
신규 교사가 상담에 어려움을 겪을 때, 행정 업무에 막힐 때, “괜찮습니까”라는 한마디가 조직의 온도를 바꾼다. 건강한 오지랖은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이다.
계란판처럼 나뉜 칸 속에서 각자 안전하게 머무는 문화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협력을 가르치려면, 어른들부터 협력해야 한다.
신학기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각자도생의 관성을 유지할 것인지, 구조를 고치고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학교의 결속은 거창한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율성이 보장되고, 권한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며,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들고,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이 제도적으로 지지받을 때 공동체는 살아난다.
아이들의 협력은 어른들의 협력 위에 세워진다. 계란판을 깨는 힘은 제도와 관계가 함께 움직일 때 생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로를 향한 건강한 오지랖에서 비롯된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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