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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peace Jul 25. 2024

토라

나비처럼 날아 자유롭지만 불안한 프시케

 코시국이 바꿔버린 세상


 죽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고통만 끝내고 싶었을 뿐이다. 푸른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창 밖의 허공은 분명 바다보다 더 깊고 웅장했으며 몸을 던지기만 하면 훨훨 날아 자유의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 같은 확신만 짙어가고 적막 속에 아무도 나란 존재를 애타게 그리워할 것 같지도 않은 이 세상은 점점 멀어져 가고 어둠의 파도 소리만 메아리처럼 돌고 돌아 나를 기다리며 손짓한다. 바다가 집어삼키는 것 아니고 내가 바다에 다가간다. 아주 행복하기 위해 영영 간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그곳으로 헤엄쳐 가려는 찰나,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미동도 없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진공 상태의 4차원 공간처럼 기이하고 알 수 없는 무엇이 온몸을 감싼다. 우주 에너지 같은 힘에 이끌려 다다른 곳은 꿈을 꾸는 건 아닌데 현실도 아니다. 주변에 누가 없는지 마구 찾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지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갑자기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취가 풀리듯 몸의 기운이 내 몸뚱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발 누구라도 이 상황을 설명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이곳에서 무얼 가장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얼 할 수 있는지 집중해 봐.


프시케를 강하게

  "너는 날개가 없어. 그러면서 마치 날기라도 하듯 무책임하게 너의 몸을 허공에 내던지려고만 했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것 같니?"

  어디선가 처음 들어보는 음성도 아니고 마음속의 생각도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머릿속에 맴도는 망상과도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헝클어진 뇌 안을 비워내고 무언가 다시 차곡차곡 잘 정돈된 사물함처럼 뭐라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만 돌아왔다. 무얼 하고 싶다는 욕심은 아직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네가 무언가 하고 싶을 때 그건 욕심이 아니야. 단순히 너의 시간을 네가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뿐이지. 너 스스로를 너무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가두려 하지 말고 진정 네가 원하는 게 무언지 네 인생을 살아. 너의 삶의 결정권자는 너야. 왜 굳이 타인의 감정에 의존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타인의 감정에 의존하지 않아. 그냥 늘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것뿐이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나는 알 수 없었어. 그리고 세상은 늘 내게 불공평했어. 아니 사실 불공평하다기보다 내가 손을 내밀만큼 나는 그렇게 적극적이고 싶지도 않았어. 두렵고 모든 게 힘들어. 어떡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네가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줄게. 너는 아직 숨 쉬고 있어.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상상하면 돼. 공간도 아니고 시간도 아니야. 시공간을 초월한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뿐이야. 미래는 너의 선택에 의해 움직이지만 네가 원하는 대로 또는 예상한 대로 모든 시간이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란다. 명심해. 그러니까 너의 선택이 곧 너의 미래로 이어진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야. 세상이 너에게 앗아갔던 너의 프시케를 되돌려주려는 것뿐이야."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사라지거나 다시 원래의 내 시간 속으로 아니 내 기억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호한 이 순간이 악몽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의식만이 내 것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엇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도대체 나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 이 허상은 정체가 무어란 말인가.




불사의 약

  "푸쉬케?"  나는 되물었다.

푸시케라는 여신이 있다는 건 어느 책에서 읽어본 적 있지만 도대체 나에게 돌려준다는 푸쉬케가 그 푸쉬케 인지 무언지 도무지 헷갈려서 알 수가 없었다.


 "너의 영혼을 세상의 찌꺼기로부터 다시 새롭게 정화시켜 주려는 거야. 선택할 시간도 없이 세상은 너에게 많은 분별력을 잃도록 했지. 너는 빼앗긴 너의 모든 것을 되찾으려 하지도 않았어. 왜냐하면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까지 빼앗겨 버렸으니까..."


 "누가? 누가 그걸 빼앗았다는 건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좀 쉽게 설명해 주면 안 되겠니?"


 "아름다운 길을 걸으면 향기도 느낄 수 있고, 걷는 두 발은 자유롭고 불안한 마음도 안 들겠지. 하지만 세상은 온갖 아름다운 것부터 냄새나는 쓰레기까지 한데 뒤엉켜 있어. 그런데 굳이 생명력을 갖출 필요도 없는 부적절한 것들이 만만하고 순한 양 같은 너희를 못살게 굴지. 너 같은 순진한 애 하나 엉뚱한 곳에 보내버린다고 해서 값진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짓을 벌여. 왜냐하면 그 의롭지 않은 존재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약 올리고 시궁창에 빠뜨리고 선한 인간이 괴로워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굉장히 즐거워한단다. 마치 자기들이 절대신보다 강한 힘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 내가 운이 없어서 꽃길이라도 걸어야 하는데 재수가 없어서 시궁창에 빠지기라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진짜는 네 안에 있어. 너는 네 진짜 모습을 전혀 만나보지도 못하고 영영 돌아오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건 옳은 판단이 아니야. 그리고 그 길은 너의 길도 아니지. 지혜 없음을 탓하는 것도 아니야. 네가 빼앗긴 기쁨을 되돌려 주려고 하는 거야. 진짜 네 모습을 발견하고 나면 아마 모든 세상이 달라질 거야. 그러니까 잊지 마. 네가 통과해야 할 문이 있어. 이 문을 지날 때 기준이 보일 거야. 기준점을 따라서 그곳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돼. 알았지? 다른 판단은 무시해.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것만 명심해. 그러면 너는 우선 큰 고비는 넘어갈 수 있단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해하려 해도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만 들고 모호할 뿐이었다. 어차피 나는 아무 기대도 없었고 미래를 꿈꾸지도 않았으니 대충 들은 대로 뭐라도 해봐야지 싶었다.

하지만 뭔가에 홀린 듯 바다처럼 고요한 허공에 내 몸을 내던질 때와는 또 다른 형태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불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걱정들은 언제나 내게 있는 요소였지만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은 공포에 가까웠다.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지 마. 영원의 열쇠는 네 손에 있어. 너에게 온전히 집중할 때 그 불사의 약이 보일 거야. 이후엔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일 거야."



미쉬파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도 두렵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기만 해. 죽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냥 땅속으로 꺼지는 듯한 무거운 내 영혼이 스스로 감당 안될 정도로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말로 설명하는 것도 힘들어."

 

 "내가 말했지. 네가 통과해야 하는 그것은 너의 몫이 아니야. 그저 열심히 너의 역할을 하면 그만이야. 네 손에 있지만 네 것이 아니야. 참된 기준을 잃어버리고 산 시간을 돌려주려는 거야. 다른 생각은 하지 마."


대화가 깊어질수록 깊은 잠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최면상태로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환각인지 꿈인지 아니면 진짜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의 시간인 것이지 점점 피곤해졌다.


 "마음은 심장이야. 치열하게 버티던 네 목숨이 갈기갈기 찢어지듯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만은 없어. 심장은 조용하지 않지. 1분도 쉬지 않고 늘 생명을 위해 요동치고 쉼 없이 달려. 일시적인 고통이 너를 망가뜨리게 놔둘 수도 없어. 그러니까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참된 기준을 찾아야 해."


아무 확신도 들지 않는 모호함 속에 한 가지 확실한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열정으로 고동치는 힘찬 소리가 나를 찾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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