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남자의 밤은 지루하다 03

〈같이 걷는 사람〉

by bluepeace

그 남자와는 달리

이 사람은 처음부터 나와 함께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놓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보폭을 맞추는 사람이었다.


그 역시 나와의 잠자리를 원했다.

그 사실을 숨기지도, 포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원색적일 만큼 솔직했고

그래서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욕망을

나에게서 떼어내지 않았다.


걷는 동안

그는 나를 바라봤고

대답을 기다렸고

내 말 끝에 자연스럽게 웃었다.

눈을 마주치는 걸 피하지 않았고

이야기의 중간에

불필요한 확인을 끼워 넣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괜찮은지, 좋은지, 문제는 없는지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숨소리 하나,

이마에 맺힌 땀방울까지도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는 게

나 자신에게도 낯설었다.


그가 좋아하는 말투,

그가 자주 쓰는 표현,

그가 좋아하는 음식과

무심하게 고른 노래들까지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 내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욕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우리는

서로에게 놀랐다.

이토록 경계 없이 마음이 열릴 수 있다는 것에,

이토록 깊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할 수 있다는 것에.


그는 말했다.

자기도 놀랐다고.

나 역시 솔직히 대답했다.

나도 처음이라고.


이런 식의 믿음은

계획하지 않아도 생겨났고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우울을 안고 있었다.

가끔은 하루를 버티는 일만으로도

숨이 가빴고

서로에게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

조급해하지 않았고

상처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은 어때?”

그 질문 하나면

다시 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안다.

2026년의 우리는

지금보다 더 깊어질 거라는 걸.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이미 이렇게

서로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답이었다.


매 순간

잘하고 싶다.

상처 주지 않고 싶고

어설프게 소중함을 쓰지 않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걷는다.

손을 잡지 않아도

이미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기에.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전해지고 있는 관계.

그것이

내가 이제야 알게 된

사랑의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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