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답게 살겠다

새로 태어난다는 건, 어제의 나를 조금 내려놓는 일

by bluepeace

나는 오래도록 ‘더 나답게 살겠다’는 말을 믿었다.

그 문장은 마치 주문처럼 단단했고, 내가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주는 무언가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지키려 했던 ‘나’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불분명하다는 걸.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차분하다, 고집이 있다,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한번 마음을 주면 오래간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나열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멈춰 서서 생각한다.

그 말들이 정말 나였을까.

아니면, 내가 나를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뿐이었을까.


기억은 늘 정확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유리한 장면은 선명하게 남겨두고,

부끄러운 선택은 희미하게 만든다.


그렇게 편집된 기억 위에

‘이게 나야’라는 설명을 덧씌운다.

그 설명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진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나는

어쩌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를 너무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원래 그렇다고,

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신


나는 아직 모른다고 말해본다.


그 문장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자유롭게 한다.


모른다는 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어제와 다르게 반응해도 괜찮고,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다.

내가 나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갱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태어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굳어버린 자기 해석을 조용히 내려놓는 일이다.


나는 늘 옳지 않았고,

늘 성숙하지도 않았고,

늘 일관되지도 않았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나는 조금 더 숨이 편해진다.



내 인생에도

여러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사람은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오래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어떤 사람은 나를 무너뜨린 뒤 사라졌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왜 이런 만남이 나에게 왔을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했다.

그들은 내 삶에 오래 남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는 걸.


누군가는 내가 믿고 있던 세계를 부수기 위해 왔고,

누군가는 나의 허영을 드러내기 위해 왔고,

누군가는 내가 감히 보지 않던 내 모습을 대신 보여주기 위해 왔다.


그들이 머물렀다면

나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편한 환경 안에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붙잡고 싶어 했지만

그들은 떠났다.


그 떠남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조금씩 이동시켰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인연을 끝까지 지키려 애쓰기보다

그 인연이 내게 남긴 질문을 오래 생각한다.


사람은 떠나도

질문은 남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내 안에서 자라

새로운 나를 만든다.


머물러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든 것을 지켜내려는 태도가

항상 성숙한 것은 아니라는 걸.


때로는 흘려보내는 선택이

더 단단한 나를 만든다.


진한 장면들은 남는다.

목소리, 표정, 그때의 공기까지.


하지만 사람은

계속 곁에 남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늦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빈 공간이 있어야

다른 가능성이 들어온다.


나는 매일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않는다.

대신 아주 조금씩 방향을 틀뿐이다.


그 작은 각도의 차이가

결국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어제의 나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를 의심해 본다.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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