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톤먼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스쳐지나간 듯한 장면에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관통하는 대사가 나왔다.
영화 초반은 같은 내용을 브라이오니의 시각에서 한 번, 그리고 어른들의 시각에서 또 한 번 전개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인다. 윙윙거리는 벌레 소리와 타자기 소리는 긴장감을 높인다. 영화가 시작되고 주인공 로비가 잡혀갈 때까지 떼어 내어 단편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영화 초반의 배경이 되는 집 인테리어에서는 1935년 특유의 휘황찬란한 미의 기준을 엿볼 수 있어 눈이 즐겁다. 지금 유행하는, 흔히 '(감성)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미적 기준과는 180도 달라 왠지 모를 해방감도 느껴진다.
13살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증언이 스스로 충분히 타당성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증언은 추측에 불과했다. 브라이오니의 잘못된 증언으로 터너는 전쟁터로 가게 되고, '이후 세실리아는 로비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간호사로 일하게 되고, 로비 또한 세실리아를 다시 만난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데…' 영화는 이후, 세실리아에게 돌아가기 위한 로비와 로비를 기다리는 세실리아의 여정을 보여주는 흐름으로 바뀌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때부터는 다소 진부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전쟁'은 관객이 긴장감을 한시도 놓치 못하게 하는 좋은 영화적 장치였다. 부대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로비와 두 둉료들은 이탈하게 되었지만 '세실리아에게 반드시 돌아가야 해'라는 생각에 몰두한 로비를 선두로, 영국 본토로 이송을 기다리는 부대를 찾게된다. 하지만 독일 공군이 영국 본토로 돌아가기 위한 수송선들을 다 부숴버려, 30만명이 넘는 군인들이 부대에 남겨진 상황이었다. 카메라는 로비를 비추다가, 곧 부대에 남겨진 다른 군인들을 비춘다. 나는 그 때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적어도 로비의 잘못도, 세실리아의 잘못도, 브라이오니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라고. 로비, 세실리아, 브라이오니는 2차 세계대전 시대를 겪어야만 했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동시에 지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2020년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자"라고. 청춘이라고 하는 22살에, 방 안에 갇혀 지내게 되어 억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22살의 삶과 전혀 다르지만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느껴서일까. 이후 영화는 브라이오니의 '어톤먼트(속죄)'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후 끝맺음까지 영화는 깔끔했다. 하지만 내게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기에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않겠다. 다만 브라이오니에게 향한 많은 질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브라이오니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타가 아니였을까.
로라가 얼마전에 햄릿을 봤다며 폴 마샬을 유혹하하자 폴 마샬이 로라에게 했던 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 만나지 못한 채 결국 죽는다. 영화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햄릿의 다음 대사.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