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엄마가 상담을 받았다. "어떻게 50년간 이렇게 무딘 감정으로 살았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게 대단하네" "8남매 중 여섯째. 아들도 아니고, 장녀도 아닌... 살아남기 위해서 착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겠네. 감정에 무딜 수밖에 없었겠어."
엄마는 상담사님의 그 말이 정말 위로되었나 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한테 말했던 걸 아빠한테 말하고, 다 같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또 말한다. 새로운 변화가 반갑지만 한편으론 밉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착한 사람이면서 정작 가족들한테는 제일 못되게 굴었잖아.'란 말이 속에서 끓고 있다. 부글부글. 아빠의 표정을 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나? 가장 큰 피해자인 오빠는 이미 방에 들어가고 없다.
지난주 일요일, 부랴부랴 기말과제를 제출한 뒤 밤늦게 종강했다. '후련하다, 기쁘다'란 감정보다 너무 지치고 소진된 느낌. 허전했다. 그 마음을 달래려 본가에 있는 가족들에게 페이스톡을 걸었다. '고생했어'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아뿔싸. 그날이었다. 엄마가 이유 없이 히스테리 부리는 그날. 감정을 꾹꾹 누르는 사람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감정의 응어리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날이랄까?
우린 가족 단톡방에서 그룹 페이스톡 중이었는데 오빠는 아예 들어오지 않았고 엄마는 뒤늦게 들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내가 아픈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쉬어야겠어서 먼저 끊을게'라는 싸늘한 말을 남기고 페이스톡을 끊었다. 미주알고주알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던 아빠와 나는, 엄마의 등장(그리고 빠른 퇴장)으로 어쩔 줄 몰라하며 잠깐의 정적 속에서 서로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엄마가 걱정되네. 당장 내일 울산에 가봐야 하나?" "걱정 마. 엄마 괜찮을 거야."란 말을 끝으로 아빠와 나의 대화도 끊겼다.
예전엔 그래도 가벼운 농담이라도 던지며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던 아빠였는데, 그날은 아빠도 지쳐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25년 넘게 계속되는 히스테리에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전화를 끊고 어찌나 서럽던지. 가족들 중 나만 변하면 뭐 하냐고! 회피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발버둥 치는 와중 엄마의 히스테리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날 밤은 그 느낌이 유난히 뾰족하게 느껴졌고 오랜만에 내가 안쓰러워 울었다.
언제나 그렇듯 한 바탕 울고 나면 괜찮아지기에. "20년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던 회피를 한 순간에 딱! 끊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내 오만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또, 한 번에 변할 순 없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단 걸 안다. 이제 나는 엄마가 히스테리 부릴 때면 고통받는 내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 또, 그렇기에 엄마를 보듬어줄 수 있다. 이제는 엄마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그때는 왜 기분이 안 좋았어?' '무슨 일 있었어?' 물어볼 수 있다. 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모른다.
슬며시 '왜 딸인 내가 엄마를 보듬어줘야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나. 엄마의 새로운 내딛음을 축하하며 때때로 울컥 드는 미운 마음을 잘 달래며 엄마의 작고도 큰 변화를 기다려보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내가 다정한 아빠로부터 배운 사랑의 모양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