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고치고 달라진 점

by biking

우울증을 고친 후 달라진 점이 많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면의 변화가 크다. 내면이 달라졌으니 환경도 점차적으로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감정 통제가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쉽게 상처 받았다. 상황이나 타인의 말에 쉽게 휩쓸렸다. 그런데 지금은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상사의 비난을 나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감정적으로 혼란이 오고, 결국 그 감정의 끝에는 무의식적으로 '난 잘못된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감정에 매몰됐기 때문에 그랬던 듯하다. 그런데 그 감정에 매몰됐던 이유는 타인의 말이나 내가 처한 상황을 확대 해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일에 대해 비판한다면 그건 일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일에 대한 비판과 나 자신에 대한 분리가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비판을 들으면 기분은 안 좋지만, 그렇다고 내 시간 전부를 그 감정에 쏟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비판한다면 일부분 맞는 것일 수도 있고, 틀린 것일 수도 있다. 100% 틀린 것도, 100% 맞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말은 말일뿐이고 상황은 상황일 뿐, 나 자신은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비판적으로 들렸던 말조차도 나를 비판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다. 아무 의미 없이 한 말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감정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때 아주 없지는 않다. 전처럼 깊고 오래, 자주 떨어지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그런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도 사람이니까, 힘들 땐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정도로만 생각한다. 를 더 아껴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감정을 인정한다


타인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인정해준다. 과거에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다. 특히 상사와 맞지 않을 때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맞지 않다고 해도 힘들지 않다. 그들도 한 명의 인간이니까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내가 손해보지 않으면서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다. 인의 행복을 존중하고 내 감정이 통제가 되면, 일단 대화가 원활해진다. 껄끄러운 이야기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다.


인간관계와 관련해 내가 정한 원칙은 상대방이 상식선에서 행동하는가 아닌가이다. 문제는 그 상식이란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기준에 맞춰서 판단한다. 나는 살면서 옹졸하다거나, 비상식적이라거나, 못됐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다 한두 번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상황의 맥락을 흩뜨릴 정도로 판단력이 흐리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나의 판단과 상식을 믿으면 되는 것이다.


사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상대방의 행동에도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닐 때가 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넘길 만한 일도 많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즐겁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개인 시간이 많아지면서 취미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 역시도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나의 취미생활은 좀 다른 차원에서의 의미를 갖는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았다는 뜻이다. 우울증이 있을 때는 나는 왜 잘하는 게 없는지 늘 괴로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 흥미가 없고, 흥미가 없으니 취미도 없었던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나는 요리를 무척이나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고, 누구한테 만들어줘 본 적도 없다. 게다가 주변에 요리를 잘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적당한 실력 정도로는 끼어들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 정말로 우연히 지인들에게 인정받을 기회가 생겼는데, 그 후부터 매주 요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점점 늘어서 이제는 제법 쓸만한 요리도 나오고 있다.


또,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돌이켜보니 나름 잘 그렸던 것 같다. 초등 1~고등학생 때까지는 애니메이션을 그리면 항상 반 친구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심심해서 그렸을 뿐인데 소문이 나고 친구들이 복사 후 사인을 받아가곤 했다(그것도 꽤). 그때는 그런 장점들이 전혀 장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에 그림을 보내본 적도 없고 수상한 적도 없으며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실력을 다시 살려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직업)이 내가 잘하고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야를 업으로 삼아 평생의 밥벌이로 삼아왔으니 이렇게 고생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내게 재능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 분야가 이렇게 여러 개 있는 줄 알았더라면 어쩌면 다른 진로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찾아보면 더 많을 테니까.


아직 내가 누군지 탐색하는 과정에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갈수록 나 자신과의 소통이 즐거워지고 세상과의 소통은 쉬워진다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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